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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슬립 Jul 20. 2022

잠이 든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

영화〈스텝 브라더스>(2008) 속 몽유병 이야기


Editor's note

슬립X라이브러리는 우리 일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영화 〈스텝 브라더스>(2008) 속 몽유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진 출처 : 영화 〈스텝 브라더스>(2008) 공식 예고편

어느 날 아침, 낸시와 로버트는 아수라장이 된 부엌을 보고 경악합니다. 커피 가루며 온갖 식자재, 냅킨 등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컵과 그릇들은 누가 던지기라도 한 듯 많이도 깨져 있었죠.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로버트는 처음엔 열려 있던 창문으로 너구리라도 들어왔던 건 아닌지 의심합니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어 보곤 고개를 갸웃했죠.


“낸시, 이거 당신 핸드백 아냐?”

“맞아요. 브레넌 짓이에요. 몽유병이 있는데 늘 내 핸드백을 냉장고에 넣죠.”


그 말에 로버트는 확신합니다. 부엌을 뒤집어 놓은 범인은 너구리가 아닌 브레넌과 데일이었다는 걸요. 로버트는 낸시에게 말합니다. “데일도 몽유병이 있어. 오븐 안을 한 번 열어봐.” 낸시가 오븐을 열자 그 안엔 소파 쿠션들이 잔뜩 쳐박혀 있었습니다. 오븐에 쿠션을 넣어 놓는 건 데일의 몽유병 습관이었거든요.


낸시의 아들 브레넌(윌 페럴 배역), 로버트의 아들 데일(존 C. 라일리 배역)은 낸시와 로버트가 재혼하면서 가족이 된 Step brothers(이복형제)입니다. 애덤 멕케이 감독의 영화 〈스텝 브라더스〉(2008)의 두 주인공이죠. 그간 〈돈 룩 업〉 〈바이스〉 〈빅 쇼트〉 등 여러 작품들을 통해 블랙 코미디 영화계의 물건으로 거듭난 애덤 멕케이는 일찍이 〈스텝 브라더스〉를 통해서도 숨길 수 없는 유머 감각을 자랑합니다. 그는 브레넌과 데일을 ‘덤 앤 더머’ 못지않은 환상의 콤비로 그려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냅니다.

사진 출처 : 영화 〈스텝 브라더스>(2008) 공식 예고편

브레넌과 데일은 각각 39세, 40세 백수로, 몸만 어른이었지 하는 짓이나 행동은 열 살짜리 애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마저 못 견뎠던 두 사람은 처음엔 매일 부딪히기 일쑤였죠. 브레넌이 데일이 아끼던 드럼을 더럽게 다루며 약올렸던 날, 그들은 머리가 터지도록 치고받고 싸우기에 이릅니다. 낸시와 로버트는 그들의 자식들이 얼른 집에서 독립하고 취직도 하길 간절히 바라죠.


브레넌과 데일은 그렇게 날마다 다투길 반복했지만, 사실 둘은 비슷한 점을 많이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철 없이 해맑고 대책 없이 구는 점은 물론, 둘 다 몽유병을 갖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었죠.


어느 날,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던 두 사람은 갑자기 무언가에 씌인 듯 실눈을 뜨곤 방을 나갑니다.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알아듣기 힘든 말을 지껄이기도 하면서요. 그들은 그 상태로 부엌에 가더니 냉장고에서 주스도 꺼내 마시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사방으로 집어던지기도 합니다. 둘 다 분명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죠. 몸짓은 한없이 부자연스럽고 둔탁해 보였고요.


이는 실제 몽유병 증상을 잘 재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눈을 거의 감고 있었다는 점만 뺀다면요. 몽유병은 ‘수면보행증(Sleepwalking)’으로도 불리는 수면 각성장애 중 하나로, 비렘(NREM) 수면 단계에서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레넌과 데일이 보여주었듯이 몽유병이 있는 사람은 수면 도중 갑자기 일어나 돌아다니거나 중얼중얼 말을 하기도 합니다. 몽유병은 대체로 5살에서 10살 어린이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보통 총 수면 시간 중 초반 3분의 1 시점 안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집이나 방 안을 걸어다니거나 서랍 열기, 잠긴 문 열기 등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조용히 하거나 흥분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요. 보통은 말로 하는 명령에 반응하지 않고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몽유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음주나 수면 박탈,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때도 있으며, 호르몬의 변화, 수면제나 항히스타민제 등 일부 약물 복용에 의해서도 발현될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기에 몽유병을 예방하려면 평소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안락한 수면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스텝 브라더스〉에서 몽유병 장면은 ‘부엌 신’ 이후에도 한 번 더 나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브레넌과 데일은 낸시와 로버트의 침실에 들어와선 트리 아래 놓여 있던 선물 더미와 트리를 통째로 침대에 집어 던지며 또 한 번 난장판을 만듭니다.


화가 난 로버트는 둘을 깨우려고 하지만, 낸시는 남편을 급하게 막아섭니다.


“몽유병 환자는 깨우면 안 돼요. 당사자나 남들이 크게 다칠 수 있어요!”


낸시의 말을 듣지 않은 로버트는 결국 몽유병 상태의 두 아들에게 무참히 공격받습니다. 브레넌과 데일에게 들려 가 계단 아래로 내동댕이쳐지죠. 실제로도 몽유병 증상이 진행 중인 사람들을 깨우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눈앞에 대고 손을 아무리 휘저어도, 몸을 흔들어 봐도 그들은 자극을 단박에 감지하지 못하죠. 게다가 겨우 깨웠다고 해도 몽유병 환자들은 간밤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 못 한다고 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브레넌과 데일은 서로가 쿵짝이 잘 맞는 파트너임을 확인합니다. 그렇게 둘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낸시와 로버트는 두 골치 아픈 자식들 때문에 이내 폭발합니다. 형제끼리는 사이가 좋아졌지만 그들의 계속된 만행으로 부부 사이엔 금이 가기 시작했죠. 결국 낸시와 로버트는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자식들에게 통보합니다. 둘 다 한 달 내로 직업을 구해 이 집에서 독립하라고 말입니다.


‘스텝 브라더스’는 각자의 길을 찾아갑니다.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입고 일자리를 찾아 나섭니다. 멀쩡한 사회인처럼 구는 화면 속 브레넌과 데일은 어색해보이기만 했습니다. 그건 그들이 원한 삶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다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로 작은 공연을 함께하게 됩니다. 브레넌은 안드레아 보첼리 뺨치게 ‘Por ti volare’를 불렀고, 데일은 그 노래에 드럼으로 반주를 넣어 줬죠. 그들은 마음 깊숙이 잠 자고 있던 자신들의 진심을 깨닫습니다. 그와 동시에 두 아들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은 로버트와 낸시도 삶에서 잊고 있던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는 재결합하죠. 이복형제의 ‘공공의 적’이었던 브레넌의 얄미운 동생도 형들에게 마음을 열고요. 이 무대를 계기로 조금은 허무할 정도로 영화 속 모든 갈등이 눈 녹듯 해결됩니다.


사진 출처 : 영화 〈스텝 브라더스>(2008) 공식 예고편

어쨌든 브레넌과 데일은 자신들의 대책 없고 무모한 성향을 장점으로 뒤바꿔 사업에도 성공합니다. 그들의 노래방 사업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죠. 영화가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은 전처럼 다시 바보처럼 행복해합니다. 성숙함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철 들기를 거부하는 두 바보의 이야기, 〈스텝 브라더스〉였습니다.



몽유병(수면보행증) 관련 의학 정보는 아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웹사이트에서 참고했습니다.

http://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category=DIS&medid=AA0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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