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은 내것이 아니었다
“아빠. 저 미술 할래요.”
“쓸데없는 소리! 그림쟁이로 돈 얼마나 버는데? 그 유명한 홍대 미대 나와도 돈 잘 버는 사람 흔치 않다. 학교 공부나 해.”
중2 때였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미술을 좋아했고, 화구통을 메고 다니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홀어머니에 장남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먹고사는 것을 책임지느라 일생이 편치 않았다고 하셨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며 원하던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에 생활비가 문제였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수중에 남은 돈으로 생활하느라 가계부를 꼼꼼히 써야 했다.
그런데, 학원비도 비싼 미술 학원이라니.
“차라리 취업이라도 잘 되게 워드라도 배워! 나중에 먹고살려면 남자든 여자든 기술을 배워야 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내가 찾은 타협점은 컴퓨터 학원이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왕 선택한 것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무작정 공부를 하면서도, 자격증 시험에 척척 붙었다. 자신감과 성취감이 생기고, ‘하면 된다’는 생각도 생겼다. 덕분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컴퓨터 관련 공부를 놓지 않았고,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
미술의 꿈을 접고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개발에 사용되는 언어들만 배우고, 점점 깊어지는 수업에 흥미를 잃어갔다. 자꾸만 다른 학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멀티미디어 학과였다. 광고, 디자인 등 눈에 보이는 활동적이고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했었다. 다시금 꿈을 펼쳐보려고 2학년 때 아버지에게 야심 차게 편입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 아버지였다.
“쓸데없는 소리. 졸업이나 해. 무슨 편입이야, 편입은! 취업하려면 졸업장은 있어야 해. 딴생각하지 말고 졸업이나 해!”
강경한 아버지의 말에, 이번에도 혼자 타협을 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쉬운 대로 웹디자이너가 되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들어간 첫 직장은 IT업종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중소기업이었다. 아버지는 그 회사에 웹디자이너가 있으니, 그 밑에서 일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흔히 말하는 낙하산이었다. 아버지는 회사 대표님에게 한마디 남겼다고 하셨다.
“우리 딸 최대한 굴려 먹고 시킬 수 있는 거 다 시켜요. 빡쎄게 굴리셔도 됩니다.”라고 말이다.
사회 첫 발을 내디딘 면접자리였다. 회사 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황당했다. 이번에도 백 프로 내키진 않았지만, 웹디자인 실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웬걸, 제대로 걸렸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사수가 퇴사를 했다.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들은 사실 ‘퇴사를 위한 인수인계’였던 것이다. 업무에 적응할 새도 없이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기한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 밤샘 작업과 새벽 퇴근이 일상이 되었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 씻고, 옷만 갈아입고 또 다시 출근을 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우울감이 심하게 몰려왔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피폐해졌다. 몸이 힘드니 사람이 극단적으로만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죽어야 이 삶이 끝날까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왜 나를 이렇게 힘든 곳에 보내셨지? 심지어 힘든 일을 시키라고 부탁까지 하시다니. 자식들 고생할까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 아닌가?’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내가 주워 온 자식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내 삶인데,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항심도 생겼다. 내 생각으로, 내 힘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속에서 무언가 불타올라 부글부글 끓어대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제 제가 알아서 해요. 제발, 제발! 저 좀 놔두세요.”
사표를 던졌다. 삶도, 꿈도, 직장도 아바타처럼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내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때부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선택, 그리고 모든 것은 나의 책임으로 살기 시작했다.
주도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이후로 사는 게 재밌어졌다. 도전 그리고 성공과 실패로 온전히 내가 그리는 세상들이 펼쳐졌다. 스스로 선택한 고난과 역경은 또 다른 성공을 위한 자양분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진정 '허투루'가 없는 꽉 찬 삶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사는 삶이 아닌
진짜 내 삶을 찾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