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명퇴하고 뭐라도 배워볼까 해서 왔어요.”
“코로나라서 카페 폐업하고, 쇼핑몰이라도 할까 해서 왔어요.”
“엄마가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취업은 하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상담받고 싶어서요.”
“자격증이라도 따보려고 왔어요.”
“네... 뭐... 할 줄 아는 건 없고... 손주가 있는데 숙제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왔어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나를 찾는다. 쭈뼛거리며 입을 여는 그들은, 처음 만날 때는 대부분 낯빛이 어둡다.
나는 직업상담사로 일하며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했다. 방문 또는 전화상담, 진로나 직업상담, 그리고 국비지원받는 방법 등 상담 방법과 목적은 다양하다. 내담자들에게 공통점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에게서 힘을 얻고, 사명감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그들이 시간을 내어 찾으러 오는 걸음을 헛걸음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담자 대부분은 자존감이 떨어져 있거나 두려움이 많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해본 적이 없어서요.’이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서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내담자에게 그 점을 말씀드리고, 가벼운 대화로 긴장을 풀며 상담을 시작한다. 그리고 내담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기존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일이 적합할지 대화를 이어간다. 이후 적절한 교육과정을 추천하고, 교육과정 이수 후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지, 얼마 정도 버는지, 취업률은 어떤지 충분히 인지시켜 드린다. 그리고 무엇이든 내담자가 직접 선택하고 움직이게 한다.
나는 좋은 상담이란 ‘공감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내담자의 상황에 알맞은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담자가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유난히 고민이 많고 두려움이 많아 보이는 20대 남성이 찾아왔다. 두려움이 많거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내담자의 경우 상담이 길어지곤 한다. 이날도 50여 분 가까이 상담을 했다. 모든 내담자들의 마음을 100% 알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큰 응원의 말이 필요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을 경청해 보니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 본인도 모르고 있던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하여 작은 실패에도 견디기 힘들 멘탈이었다. 진심을 담아 그가 듣고 싶을지 모르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해주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시도하는데 의미가 있어요!! 잘할 수 있어요.”
"매일 얼굴 봅시다^^ 일단 나와보세요. 흥미가 생길 거예요."
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는 상담을 마친 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올게요.” 하고 웃으며 돌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직장동료분이 한마디 했다.
“보영 씨! 천직이야, 천직! 사람들이 인생 상담받고 가는 것 같아. 옆에서 듣는 나도 위로가 되네.”
다른 동료들도 내 상담은 묘하게 끌리는 면이 있다며, 천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그저 진심을 다했을 뿐이다. 내담자가 교육과정에 만족하고, 배우러 오는 길이 즐겁기를 바랐다. 공감 능력과 감성이 풍부한 나에게 적합한 일이긴 했다. 잘 맞았다. 나의 노력으로 텅 빈 강의실이 사람들로 채워지고, 어느새 강의실이 부족해 한 층을 더 확장했을 땐 성취감도 컸다. 매출도 해마다 몇 배씩 올랐다.
하지만 센터가 커지면서 민원이 늘고 행정업무도 많아졌다. 쌓여가는 업무에 점점 버거워졌다. 사람들의 앞길을 응원해 주는 일이 보람됐지만, 사람들과 회사 업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니 점점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퇴근 후 맥주 한 캔으로 마음을 다독이는 날이 늘어갔다. 회사에선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서, 집에 오면 말하기가 싫었다. 지쳐서였다. 퇴근길에 아이를 픽업해 육아전쟁으로 출근하고,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시작되었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 마음이 헛헛했다. 남들 마음은 잘 다독이면서, 정작 나의 마음은 내팽개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걸 배워볼까?'
고민 끝에, 20대 때부터 눈여겨보던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배우는 시간만큼은 조용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어릴 땐 끔찍이도 싫어하던 책을 자발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장 찾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진짜 나를 찾는 시간’이 절실하다고 느낀 것이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회사 앞 커피숍이나 샐러드 가게에 갔다. 단 한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 '어디에 소속된 누구 씨'도 아니었다. 인간 장보영이 될 수 있었다. 누구의 인생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이 아니었다. 조용히 눈과 손으로 텍스트에만 집중하는 고요한 시간이 좋았다.
마치 우주 속에 떠다니는 모든 별들이, 나의 눈과 손에 모여 반짝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느낀 이 감정과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앨범처럼 남기기 위해 사진만 업로드를 하다가, 점점 나의 감정을 담은 글과 작품을 함께 올렸다. 위로가 된다고 내 SNS에 고정적으로 방문해 주는 인스타그램 친구분들이 고마웠다. 내 글씨를 봐주러 오는 사람이 생기다니 신기했다. 단, 한두 명 일지라도 내가 알고 있는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때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투잡, 쓰리잡을 뛰던 나.
세상에 돈이 중요하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있어.
오롯이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는걸.
- 나를 되찾기로 결심한 23년 어느 날 오후 -
그 당시 썼던 캘리그래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