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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린이맘 Jul 25. 2022

몽당연필이 될 필요는 없어

희생에 대하여

오늘 아침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연필을 깎았다. 계속 깎아야지 생각했는데 차마 깎지 못하고 뭉툭한 연필을 쓰다 어젯밤에 자고 일어나면 바로 연필부터 깎겠다고 계획했다고 한다. 연필깎이를 돌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연필이 뭐라고. 잠도 다 깨지 않은 상태에서 연필깎이를 찾아 연필을 깎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잔망스럽기까지 하다. 하루의 시작을 연필깎이로 시작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과 그 계획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다 잠에 들었을 남편을 생각하니 짐짓 부질없이 하찮게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을 거두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러고 보니 연필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다. 일을 할 때는 늘 연필을 손에 쥐고 다녔다. 연필이 손에 없으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을 다닐 때나 공무원 시험공부를 할 때는 샤프를 썼는데 직장에 들어와서 연필로 바꾸었다. 내가 존경하는 직장 선배가 있었는데 회의를 할 때 연필을 쓰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쓱쓱 연필로 줄을 긋거나 적을 때의 소리가 나의 귀와 마음을 간지럽히곤 했다. 일을 잘하는 선배이기도 했으니 그 사람을 닮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날 퇴근하고 서점에 있는 문방구로 가 연필을 고르는 데에 한참이나 공을 들였다. 


다음날 새로 산 연필을 깎는데 이상하게 마음의 안정감이 찾아들었다. 사뭇 비장해지는 마음도 함께. 항상 출근하면 탕비실로 가 커피부터 타서 자리에 와 앉았는데 연필을 쓰고 나서부터는 연필을 깎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뾰족하게 깎인 연필을 볼 때면 마음에 햇살이 쨍하고 비추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뭉툭해진 연필을 보며 뿌듯함과 동시에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일의 시작과 끝에는 늘 연필이 있었다. 


연필을 쥐었을 때의 감각. 연필로 무언가 쓸 때의 사각사각 소리. 연필깎이에 연필을 넣고 돌릴 때 팔의 움직임마저 좋다. 연필과 연필보호캡을 구경하는 일도 쏠쏠한 재미이다. 연필심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캡을 쓰는데 연필이 짧아지면 보호캡을 뒤에 꽂아 작아진 연필을 계속 쓸 수도 있으니 안 살 이유가 없다. 연필과 세트로 나온 보호캡이 있으면 같이 구매하기도 한다. 연필은 그다지 비싸지도 않으니 사 모으는 재미도 있다. 스케치를 하려고 산 미술용 연필,  사무실용 연필, 책 속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 그을 때 쓰는 연필, 업무 다이어리에 쓰는 연필, 책을 샀는데 굿즈로 받은 캐릭터 연필, 애정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연필. 용도에 따라 쓰는 연필도 다르고 쓰기 아까워 보관해둔 연필도 꽤 여럿 있다. 샤프보다 정교하지 않고 깎아 써야하는 약간의 수고로움도 있어야 하지만 투박한 멋이 있는 연필에 정이 들어버렸다.


요즘 남편은 일본어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연필로 단어를 쓰고 외운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아주고 밤잠을 자면 우리 부부는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남편은 공부를 하고 나는 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어둡고 조용한 밤에 사각사각 들리는 연필소리가 꽤나 반갑다. 남편에게 왜 연필로 공부하냐고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니 불편하게 공부를 해야 쉽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쓰며 힘들게 쓴 단어가 더 잘 외워진다고.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 법. 남편의 말을 듣고 공부에 대한 열의가 이 정도였던가 새삼 놀란다. 연필로 눌러쓴 연습장을 보니 어찌나 꾹꾹 세게 썼는지 뒷장이 오돌토돌 튀어나와있다. 연습장을 넘기며 그간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꽤나 멋스러워 다시 들춰보기를 여러 번. 무언가 한 가지에 몰두하는 남편이 부러움과 동시에 퇴근 후 공부할 기력이 남아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다. 


하루 종일 나는 아이와 부대끼며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닦아주고 돌보면서 심적인 여유가 사라졌다. 단순히 먹이고 재우기만 했던 신생아 시절과는 달리 점점 커가며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 해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달래다 잠이 들면 옆에서 그대로 뻗어버릴 때가 부지기수. 간신히 나의 시간을 찾기 위해 커피로 정신을 깨우고 책을 읽고 노트북을 켜 글을 쓰는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다. 


서랍 한 쪽에 모아둔 몽당연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린 것은 깎고 또 깎으며 한없이 작아진 연필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일지 모르겠다. 마치 엄마의 희생이 없으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말이 은연중 내 마음 속에서 작용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뭉클해진다. 희생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없지만 희생의 크기와 정도에 너무 목을 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연필심이 꼭 뾰족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뭉툭해지더라도 충분히 더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다 도저히 나오지 않으면 연필깎이로 깎으면 되는 것처럼. 오늘도 아이에게 충실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몽당연필이 되지 못함에 서글퍼하기보다 조금은 부족해도 그런 대로 충분한 엄마라고. 꼭 몽당연필이 될 필요는 없다고. 


그동안 아껴둔 연필을 서랍에서 꺼낸다. 나의 이름이 새겨진 연필. 얼마 만에 손에 쥐어보는 연필인지…. 여전히 좋다. 연필을 깎으며 모나있던 마음도 함께 가다듬는다. 오늘은 연필로 내가 좋아하는 책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한번 써봐야겠다.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서. 그리고 퇴근한 남편에게 깎은 연필을 수줍게 내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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