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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모르는 인간이 지닌 '틀'

틀을 이해한다면 삶은 여유로워진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틀을 구축한다. 그런 틀은 가치관, 철학, 신념, 개성, 전문성 등으로 불린다.



그것은 오직 '자신만의 믿음'으로 구축된다.



지금부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동의하고, 누군가는 부정한다. 어떤 이는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런 3명의 유형이 등장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믿음'으로 구축한 틀 덕분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는 동안에서는 글쓴이의 생각이 담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은 좀 다르다. 독자의 숨겨진 틀을 파헤치는 삽 같은 도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틀이란 무엇인가?

앞서 틀이란 '자신만의 믿음'이라고 설명했다. 종교로 이해하면 쉽다. 내 주변에는 절을 다니는 사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길을 걷다 보면 흔히 말하는 사이비도 존재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종교가 있거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나도 종교가 없다.



'그럼 종교가 없으면 믿음이 없는가?' 반증할 수 있다.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이건 또 다른 종교의 역할을 한다. 다르게 해석하면 난 자신을 믿는다. 아마 종교가 없다는 사람도 비슷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믿지 않는다는 믿음 혹은 자신을 믿는다는 믿음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무엇이든 믿기 마련이다. 그런 믿음에는 인과관계(원인과 결과)에 따라 원인을 파헤치게 된다.



예로 한 지인 중 한 명은 아버지가 목사님이라고 한다. 이 지인이 말하길,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그다지 건강하진 않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어 건강한 사람은 자신을 믿는다고 말해줬다. 그렇다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전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WHY

왜 믿음과 종교에 있어 건강이 주제로 등장할까를 살펴봐야 한다.



예로 난 교회를 가본 적도 있고, 명상 센터를 다녀본 적도 있고, 절에 가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본 적도 있다. 많은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자신의 뿌리가 조금은 흔들려 이 집단에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이번 연도 초반에 커뮤니티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약 6기까지 운영했었다.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대부분 '자신의 의지'가 부족하기에 집단의 힘을 빌려 나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집단이 속한 종교의 믿음을 이어받아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작은 생존 본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 그럼 그런 틀은 무엇인가? 오직 종교만으로는 틀을 정의하긴 어렵다. 그럼 틀을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패션이다.



옷을 입는 사람이 사용하는 컬러, 배치에 따라 많은 결과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근원의 뿌리는 틀에서 발생한다. 어떤 생각의 뿌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로 어머니가 화려한 컬러를 주로 입는다면 자식은 2가지 가치관을 발견하게 된다.


1) 화려한 컬러는 익숙해.
2) 화려한 컬러는 별로야.


그렇게 누군가의 틀로 인해, 자신만의 틀이 생성된다. 이 과정을 머릿속에 상상했다면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


A) 틀은 상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B) 기존의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왜냐하면 자식은 부모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틀을 세운 게 아니라 찾았다는 표현이 가깝다. 왜 앞서 설명한 대로 구축한 게 아니라, 찾았다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찾는 건 순수한 과정이고, 구축하는 건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정은 흙이고, 구축은 도자기가 된다.



이런 틀은 모양도 재각각이며, 틀 안에 담긴 내용물조차 다르다. 예로 물컵을 떠올리면 쉽다. 물컵의 모양도 다 다르니, 들어가는 양도 다르다. 하지만 이 안에 넣는 액체는 물 말고도 여러 가지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틀의 충돌은 연인 관계에서 발견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싸우는 남녀의 관계를 상상해 보자. 아마 연애를 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유사하게 떠오르는 게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1. 상대의 잘못이라서

2. 자신의 잘못이라서

3. 그냥 안 맞는 게 이유라서



상황에 따라 이유에 대한 나열은 수 없이 할 수 있지만, 굳이 집요하게 따지진 말고, 위 예시에서 골라보자.



잘못이라는 것도 개개인에 따라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예민한 사람과 예민하지 않은 사람만 비교해도 쉽다.



더군다나 나는 판사가 아니니, 잘못의 크기를 주제로 삼고 싶지 않다. 당신의 잘못이건, 타인의 잘못이건, 안 맞건 어떤 결론이 나와도 결국 자신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게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왜 싸웠을까?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재미있어진다. 자신이 화를 냈다고 가정해 보면 왜 화가 났을까? 매우 단순하다. 화가 난 행동을 했으니까. 근데 이 진실에는 나름의 거짓도 존재한다. 화가 난 행동을 한 대상을 오직 순수하게 바라봐야 한다.



무슨 말이냐면 누적된 이미지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새롭게 만난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했음에도 화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행위를 고집하다 보면 또 자신의 틀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훈련을 통해 반복되면 자신이라는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관찰하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 이상의 포용의 문제는 포용력의 크기 문제니까 관찰과는 별개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있다. '나이가 먹어서 변했나 봐' 이런 명제다.


• 과연 틀은 변화하는 것일까?

• 아니면 뒤늦게 발견한 것일까?


자, 이 글을 처음 시작했을 때 했던 내용이 반복된다. 틀의 구축은 시간과 경험이다. 틀을 찾는 과정을 통해 구축하게 된다.



그럼 '나이 = 시간+경험'은 변화에 있어 당연한 이치다. 안 익은 바나나는 점차 숙성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이 이유도 간단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순수하게 바라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고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게 가능하려면 이 모든 현상은 과정에 속한다는 걸 인지하면 쉽다. 오직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왜 그랬는가 질문하게 된다면 정답은 햄버거 세트 속 감자튀김처럼 함께 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틀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틀이란 순수한 존재를 인식하기엔 정보 홍수 속에서 허우적 거린다. 스스로 헤엄쳐 원하는 오아시스로 갈 필요가 있다.



틀의 성질

틀은 신기하게도 굳는 현상이 있다. 도화지에 칠한 물감도 시간이 지나면 흐르긴커녕,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틀은 시간이 지나면 굳어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믿음으로부터 배신당하는 순간 찾아오는 상실감을 떠올려보라. 그것이 틀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견고한 바위처럼 더욱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부서지지도 않는다. 연상되어 떠오르는 인간이 있는가? 난 고집 불통인 인간이 떠오른다.



나이란 시간이 지나면 점차 틀이 바위처럼 굳어버려 깨지지도 않게 된다. 고로 틀은 그대로 자리 잡는다. 이게 과연 좋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어떤 틀이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다. 성질의 특성이 다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결국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만드는 법칙의 근원은 물 같은 유연성이다.



'틀을 찾으면 굳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자신이 가진 순수한 틀을 발견해 내는 과정은 죽을 때까지 이루기 어렵다. 왜 잘 나가는 사람도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할까? 승리 경험이 많지만 전쟁에 나가는 리더도 대부분 끊임없는 공부를 해왔다. 이런 지혜에는 뜻이 있다.



쭉 틀에 글을 써봤다.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많이 느낀 게 있다. 과거 기억에 살고, 자신만이 맞다는 믿음은 확률적으로 젊은 사람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으면 틀의 굳는 현상에 의해, 믿음을 깬다는 게 어려워진다. 그게 무너진다면 자아가 붕괴되는 충격적인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별 것도 아니다. 자신이 맞다는 생각에서 왜 맞다고 생각하는가? 질문하는 힘으로부터 틀이란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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