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행> - 정해성 감독
네 덕에 삶이 뭔지 알게 됐어. 나는 행복해질 거야. 침대에서 편히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레옹>의 이 대사를 통해 레옹은 마틸다가 자신을 구원하여 편안함에 이르게 해주었음을 시인한다. 레옹이 죽은 뒤에도 마틸다는 마치 그가 듣고 있는 것처럼 그가 아끼던 화초에게 말을 건다. 레옹과 마틸다의 동행은 레옹이 죽은 순간에 끝난 것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와 함께하여 외롭지 않았던 순간의 기억이 마틸다와 함께한다. 그래서 마틸다는 다시 혼자가 되었음에도 예전만큼 외롭지는 않다.
<동행>의 남자와 아이는 레옹과 마틸다를 떠올리게 한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남자는 돈을 구하기 위해 아이를 납치한다. 그러나 이 아이 역시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남자는 아이와 잠시 동행한다.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낸 이들은 서로에게서 묘한 위로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곧 남자는 아이를 떼어내고, 아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다만 <레옹>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 동행은 시한부였다는 것이다. 레옹과 마틸다는 함께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들은 언제까지고 동행할 수 없었다. 남자가 아이를 떠나보낸 것은 아이와 함께 한다는 책임감을 안기에 그가 너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기매매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있는 자신의 곁에 두는 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리 없다. 다시 혼자가 되면 예전과 같은 외로움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동행을 포기한 것은, 잠시나마 고독함에서 자신을 건져내준 이에게 이기적으로 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함께한 이틀은 너무 짧았기 때문에, 제목이 말하는 동행이란 물리적으로 서로의 곁을 지킨 시간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별하여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혹독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이 그들과 동행한다. 남자가 다시 혼자가 되어 외로움의 구렁텅이로 되돌아가더라도 그 기억을 껴안으며 온기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또 아이가 또다른 동행을 찾기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