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의 심리학 – 불편한 이야기는 보통 지루한 법
누가 봐도 뻔한 구조조정의 비극, 노동자끼리의 지나친 경쟁의식 같은 이야기는 빼고, 다른 리뷰를 봐도 언급되지 않는 부분들을 써 봅니다. 아래 내용들은 박찬욱 감독 본인의 영화해설에서도 언급되지 않아서 그냥 제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1. 주요 인물들은 왜 하필 '제지업'에 종사하게 설정되었을까?
내가 보기에 주인공의 직업이 ‘종이’와 관련된 일이라는 점은 분명히 문명에 대한 은유다. 종이는 곧 문명의 토대이자 화폐의 상징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문명의 기반에 대한 여러 은유들이 제시된다고 느꼈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종이 위 글씨들의 이미지, 조폐공사가 언급되며 두 노동자가 대립했던 것, 그 사건을 활용해 진실을 덮는 것 등등..
2. 시체가 묻힌 마당과 첼로를 켜는 아이 – 문명의 토대는 무엇일까?
시체가 묻힌 마당 위에 지어진 집, 그 집 안에서 첼로를 켜는 아이의 모습 또한 강렬한 은유로 읽힌다. 죽음 위에 세워진 집은 우리가 향유하는 예술과 문화와 일상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라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인신공양의 문명 속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비추는 것이다. 첼로의 우아한 선율은 그 죽음 위에서 피어나는 문명의 아름다움이자 잔인함으로 다가온다.
3. 마지막 장면: 제지기계와 첼로 – 생명을 갈아 생산되는 우아한 예술의 아이러니
마지막 장면에서 목재를 분쇄하는 제지기계의 소음과 첼로의 연주가 교차된다. 기계의 리듬은 마치 산업문명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지고, 그 위를 덮는 첼로의 선율은 문명이 만들어낸 우아함,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이 교차는 어떤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예술은 생명을 딛고 태어난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문명은 자연과 인간 스스로의 파괴와 희생을 토양으로 삼아 성장해왔다. 감독은 그 사실을 잊지 않게 만드는 불편한 우아함으로 영화를 마무리한게 아닌가 싶었다.
4. 혹평의 심리학 – 불편한 이야기는 보통 지루한 법
〈어쩔 수가 없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루하다’, ‘공감이 안 된다’는 평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내게는 이 혹평들이 영화가 건드린 불편한 현실 인식에 대한 집단적 방어기제로 보이기도 한다.
대중의 이런 반응을 〈기생충〉의 경우와 한 번 비교해 보았다. 〈기생충〉의 주인공들은 반지하에 살며 우리 사회에서 명백히 비주류의 위치에 있다. 그런 삶이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다수 관객에게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심리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어쩔 수 없다〉의 인물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중산층이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바비큐를 굽고, 두 대의 차를 몰며, 아이의 예술교육에 투자한다. 그러나 실직 몇 달이면 생계가 흔들리고, 기본적인 의식주와 교육조차 위태로워지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월급 주는 회사에 대한 전적인 종속 상태’에 있다.
이 영화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것은 몰입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것은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몰입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처음부터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일 수 있다. “영화가 별로다”라는 말은 어쩌면 “나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변주하지 말라”는 대중의 거부 반응 아닐까? 이런 반응은 정신분석에서 흔한 것이다. 어쩌면 감독이 너무 빨리 한국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을 스스로에게 직면시키려 했는지 모를 일이다.
요약/결론 - 나는 재밌었다, 추천할 만하다.
〈어쩔 수 없다〉는 제목 그대로,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끼어 있는 체계의 초상을 그린다. 자본주의의 제지기계는 쉬지 않고 돌아가며, 그 위에서 인간은 종이처럼 눌리고 찢긴다. 그리고 자동화 기계들로 대체된다. 그 잔해 위에서 연주되는 첼로의 선율이 아름답게 울린다. 진짜 어쩔수 없는 일들이다! 인신공양의 문명, 자동화 자본주의, 을끼리의 전쟁 — 전부 다 역사적 필연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각자의 view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나 인류 전체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라는 사변적인 질문보다, 이 영화가 주는 어떤 자기파괴적인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위대하고 거창한 건축물들이 한순간에 파괴되고 폐허로 변하는 그런 장면들이 실은 시선을 끌고 찬란한 클라이맥스적 장면으로서 기다려지듯이, 우리 문명이 근접해 가는 듯한 어떤 특이점이 오히려 기다려지면서 그 끝을 불현듯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