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초록빛 영산강
민서는 미간에 잔뜩 힘주고 은혁이를 노려보았다.
“내가 천천히 가라고 했지. 넌 그냥 앞만 보고 달렸잖아.”
민서는 사온 김밥의 포장 은박지를 까서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우걱우걱 씹었다. 발음이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은혁은 민서에게 따져물었다. 민서는 은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영산강 자전거길 초록색 강은 두 사람 사이 정적을 가르며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 녹조가 잔뜩 낀 데크 자전거 길 위에서 둘은 김밥을 먹다가 자전거 속도로 의견 충돌이 있었다. 민서는 김밥을 다 먹지도 않은 채 과일 도시락 통 뚜껑을 닫았다.
한켠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려고 했다. 민서가 잡은 자전거 핸들이 좌우로 살짝 흔들렸다. 은혁은 더위 때문인지 녹조가 뿜어내는 고약한 기운 때문인지 그녀를 잡으려는 말 대신 참지 않고 한마디 했다.
“어떻게 하려고. 혼자 가게?”
“응. 따로 다녀.”
“숙소는 어쩌고. 가는 길이 같아서 계속 마주칠 텐데.”
“은혁씨는 나중에 와. 아니 나보다 빠르니까, 먼저 가는 게 안 마주치겠다.“
은혁은 녹조를 배경으로 서 있는 그녀와 그녀의 빨간색 자전거 수트 상의가 눈에 부담이 될 정도로 시선을 두기 힘들었다. 눈핏줄이 터진듯 은혁의 눈이 붉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일어서는 그녀를 참기 어려워졌다. 날씨 탓인가.
두 사람의 정적과 시선의 정면충돌로 텅빈 공기는 더욱 뜨거웠다. 점심시간, 둘을 지나쳐가는 자전거는 아직 한 대도 없었다.
은혁은 일년 전, 미니벨로 브롬톤을 민서와 같이 구입했다. 동네친구인 민서와 주말에 잠깐씩 타고 다니다가,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브롬톤으로 국토종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간접적으로 접이식 자전거의 강인함을 알고나니 초보자인 은혁도 몇 가지만 주의하면 자전거길 여행을 떠날 수 있겠다 싶었다. 남들보다는 오래 걸리겠지만 그랜드슬램도 할 수 있지않냐는 욕심도 슬쩍 자리잡았다. 딱히 자신감은 없었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이 즐겁다는 걸 느끼고 좀더 오래 몰두하고픈 마음과 관련 없지 않을 것이다.
민서는 주말이 무료할 즈음이면 은혁이를 불렀다. 둘은 만나서 하는 일이 대개 밥 먹고 카페에서 차 마시고, 쇼핑 겸 걷는 일이었다. 어느날 민서는 개인적인 운동도 아닌 그룹 운동도 아닌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했다. 명분은 이제 소비적인 루틴을 탈피하자는 거였다. 은혁 역시 만남에서 지루함을 느끼던 터라 새로운 취미에 솔깃했다.
자전거는 민서는 사자고 했지만 자전거 국토종주 수첩은 은혁이 공동구매했다. 은혁은 애당초 자전거수첩을 살 때만 해도 모든 스탬프를 다 찍어서 완주하는 그랜드 슬램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띄엄띄엄 스탬프 몇 군데 찍어보겠다고 시작했다. 한두번 찍다보니 성취감이 느껴지고, 강변길을 달리는 자전거길의 아름다움이 좋아졌다. 집 앞 동네 한바퀴 도는 익숙한 길보다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올라왔다. 다른 자전거 길도 궁금해졌다.
“민서씨, 다른 곳도 가보고 싶지 않아?“
“어디 가려고? 나 무릎이 조금 아픈데.”
“내가 초보자도 갈 수 있는 쉬운 자전거 길 있는지 알아볼게.“
“그래? 그래도 걱정이 되는데. 오르막길은 그냥 끌고 올라가야할 거 같은데. 그냥 집앞에서 타자.”
“내가 많이 조사해보면 되지.“
은혁은 민서와 같이 자전거를 산 것을 계기로 다른 사람들의 활용 수기를 많이 읽었다.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는 평일에도 자전거를 접어서 기차, 버스에 싣고 다닐 수 있었다. 자전거 길 시작과 종료 지점에서 이동하는 걱정을 덜 수 있어서 느리게 달려도 장점이라 생각했다.
은혁은 지난 달 연차를 내고 평일날 혼자서 경춘선을 타고 팔당역에서 내렸다. 접이식 자전거를 접어서 낑낑대며 들고 끌고 하며 전철을 탔다. 그곳에서 남한강을 따라 강천보까지 갔다왔다. 돌아오는 길도 기차역 찾느라 약간 헤맸지만 대중교통으로 첫 시도를 했던 혼자만의 경험으로 며칠 간 뿌듯함에 차 있었다. 덕분에 하루 70-80km를 라이딩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체력과 브롬톤 자전거의 능력치를 알고나니 국토종주 자전거길 완주가 가능할 것도 같았다.
자전거 초보자이고 기본 체력이 평균 이상도 이하도 아닌 편이라 자전거길 한 구간 정도 완주하기 위해 미리 자료를 찾아봐야했다. 종주길 구간 중에서 제일 쉬운 곳을 골라야했다.몇 가지 조건도 만족시켜야했다.
첫째, 비교적 짧은 구간 중에서 1박2일로 달릴 수 있고, 둘째, 집에서 갈 수 있는 기차역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셋째, 초보가 달릴 수 있는 어렵지 않은 구간, 길찾는 일과 관련해 지도가 복잡하지 않은 길이어야 했다.
이런 기준을 세우고 살피니 은혁의 체력과 자전거 스펙을 종합하면 종주길 140-150km 정도 가능해보였다. 자전거길 구간의 출발지점과 끝지점이 대중교통 연계가 잘 될 수 있는 길로 영산강 자전거길이 후보에 올랐다. 목포역과 담양 종합버스터미널이었다. 코스 하나를 선정하려고 유튜브의 도움을 얻었다. 아무리 카카오맵 지도상 강변을 끼고 있는 길인 것 같아 보여도 오르막 경사도가 적어보여도 막상 가보면 끌바를 해도 지쳐있어서 심적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은혁은 출근 길에 휴대폰으로 자전거 종주길 달리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찾아 보았다. 그중 참고하기 좋았던 영상은 중학생 자녀들과 영산강을 달리신 분이었다. 달리신 후에 평이 있었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난이도가 낮은 곳이라 되어 있었다. 부분적으로 공사 구간만 조심하면 된다고 달릴 만하다고 했다. 공사 구간에서 못을 밟아 자전거 펑크가 난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이유로 어두워질 때까지 자전거를 달린 일도 에파소드에 올라왔다. 달리신 분들의 평을 써놓은 댓글들 중에는 길의 거칠기를 탓하는 분들도 있었다. “길이 안 좋다, 노면 상태가 최악이었다” 는 평을 읽고 은혁은 브롬톤을 타면 속도가 많이 안 나니, 천천히 달리고 조심히 타자 생각하고 주의점 정도로 받아들였다.
총 143km로 나와 있어서 한번은 숙박이 필요했다. 영산강 자전거길 종주를 목표로 1박2일을 계획하겠다고 했다. 민서는 은혁에게 자신의 무릎이 아프다며 걱정을 했지만 은혁은 둘이 서로 적당한 속도로 타면 괜찮을 거라고 아직 우리 나이 걱정할 때 아니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녀는 자전거를 탄 후 저녁 먹으며 술 한잔 하고 나면 이동하느라 피곤해서 곯아떨어질 거 같다고, 트윈베드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숙박 도시를 정하는 데 고민을 했다. 70여킬로미터를 달리고 나주에서 쉴 것인가, 좀더 무리해서 달린 후 광주에서 쉴 것인가.
잘 타는 이들은 미니벨로를 타고 하루에 140킬로미터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둘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정보를 찾아보니 나주에서 숙박하셨다는 분들이 있어서 그곳 숙박시설을 살펴보았다. 은혁은 자전거를 타면서 캠핑하는 걸 도전해볼까 싶었지만 짐이 너무 많다. 그녀와 은혁이 아무리 나눠서 짐을 꾸려도 처음부터 하기엔 위험부담이 컸다. 자전거길 길목에 캠핑 사이트도 있어서고려해보았지만 둘 다 아직 장거리 달려본 적 없는 자전거 초보자고, 입문자이기에 모텔 숙박으로 예약했다.
나주시청 근처와 나주 혁신도시 근처가 있었다. 자전거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은 나주시청 근처였다. 새벽에 출발하여 목포 역에 오전 9시 15분 도착해서 저녁 즈음 도착하게 될 나주다. 최대한 자전거길 가깝게 숙소가 위치해있어야 둘 다 제힘으로 도착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나주시청으로 정했다. 지도를 보니 나주시청주변에 갈 수 있는 모텔들이 많았다. 저렴하지만 깨끗해 보이는 숙소를 숙박어플로 결제했다. 그녀에게는 나주혁신도시 쪽이 더 좋겠지만 청결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포기하고 위치적 이점이 있는 곳을 결정했으니 이해해주리라 여겼다. 아마 계획을 세운 본인을 치켜세워주리라고.
민서와 은혁은 목포역에서부터 출발하여 바다와 맞닿은 영산강하구둑의 거센 역풍을 맞으며 함께 달렸다. 영산강 하구둑 시작지점 길 찾느라 헤맨 탓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갑자기 민서는 무릎이 아프다고 은혁에게 짜증을 내며 혼자 가라고 인상을 쓰고 있다.
은혁은 계획을 세운 자신의 일정에 불만이 많은 그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예약, 정보찾기를 했던 자신을 탓하는 그녀에게.
“그래, 나 먼저 갈게.”
은혁은 김밥을 다 먹지도 않은 채 너덜거리는 은박지만 겨우 감싸고 가방에 쑤셔넣었다. 헬맷을 쓰고 장갑을 꼈다. 페달을 밟고 민서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숙소 주소는 보내둘게. 혼자 가.”
“….”
“내가 딴 데 가면 돼.”
은혁은 페달을 밟았다. 혼자 자전거길 데크를 지나가는데 초록빛 영산강이 닿을 듯 끈적끈적하게 몸에 와 붙는 듯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