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브 Oct 02. 2023

글쓰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니!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

브런치에서 글 쓰기 이전, 과거의 나는 어땠지?


과거 회상을 잠깐 해본다. 나 예전에는 소설도 써보고 싶었고, 희곡도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제대로 써본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다. 어렸을 때는 마구잡이로 썼다. 소설도 썼고, 연극 대본은 없지만 즉흥연극으로 남들을 웃겨주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나온 아무말로 얘기를 해도 남들이 그만 웃기라며 재미있을 시절도 있었다. 내용보다는 능청스러움에 웃었을 지도 모르겠다.

스프링 달린 노트에 주인공 여자와 멋진 남자를 아무렇지 않게 만나게 한 후 로맨스 코메디를 쓱쓱 써내려갔는데, 우리 반 친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나오자마자 대기행렬 팬이 있는 소설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욕심은 여전히 있는데 글은 써지지 않는다. 그게 언젠지를 떠올려보았다.


국문과를 다녔다. 8학기 동안 몇 번 칭찬을 들었는데 1학년 때는 딱 한 번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이 학기 초에 내준 레포트인 에세이를 읽으시고 몇명 앞에서 짧은 평을 해주셨다. 내 글을 읽으시곤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없는 칭찬은 안 하시는 분이었다. 친구들 에세이 평에서 인색하셨던 지라 내 차례가 왔을 때 교수님의 표정을 통해 난 더 밑에 놓고 평하시겠구나 생각했다. 눈을 질끈 감는 마음으로 호흡 조절하고 평을 들으려는데, 의외의 말씀이 들려왔다.


"자넨 글 좀 써본 사람이구먼. 상 좀 받아봤겠어."


그 말을 듣고선 "아, 아닌데요." 했다. 교수님은 이 엉뚱한 대답에 당황하셨고 그 뒤론 평을 이어가지 않으셨다.


실제로 단 한 번도 글로 상을 받아본 적 없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신문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기사를 쓴 횟수는 한 달에 한두 편뿐이니 엄밀히 보면 치열하게 글을 썼던 이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저 밤마다 사춘기의 터질 듯한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두지 못하고 일기를 열심히 써서 공책을 차곡차곡 쌓아왔고, 메모지만 발견하면 속에서 나오는 말들을 받아적기에 바빴던 것으로 '글 좀 써본 사람이구먼'에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그 시절에 쓴 메모를 보면 사춘기 나를 만나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버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꾹꾹 덮어놓고 먼지가 쌓이게 두었다. 분명 나인데 그 때는 그랬구나 싶다.


어쨌든 '글 좀 써본 사람이구먼'에 해당하는 기억으로는, 아! 중학생 시절 반에서 유행하던 소설  창작 대열에 끼어 나도 로맨스 코메디를 쓰던 것뿐이었다. 나는 훈련되지 않은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다보면 그게 글로 표현됐었다. 그냥 뚝딱 설정한 인물들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형식에 맞지 않는 대답에 딸려온 피식 웃음이 계기인가

국문과를 다니면서도 학과 공부보다는 인생 경험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대학 동아리 활동을 두 개에 가입하여 그렇게 성실하게 활동할 수 없었다. 수능 이후론 공부 빼곤 성실했다.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우정도 쌓고.


우리 과 동기들은 도서관에서 성실한 학우도 있었고, 문학을 사랑하는 듯한 이들도 있었다. 시나 소설을 어찌나 그렇게 잘 알던지 뭔가 말하는 폼부터 달랐다.


내가 대학 시절 기억나는 경험 중 하나는 부끄러웠던 일이자, 전공을 멀리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는데, 현대소설 강독에서 교수님의 피식 웃음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을 정독하면서 사건과 소설 속의 깊은 의미를 파헤치는 시간이었다.

그때 맨 앞에 앉아있던,  열심히 수업을 듣기 위해 맨앞에 앉았던 것은 아니고 친한 동기들이 앞에 앉아서였는데 그런 내게 교수님이 질문을 하셨다. 질문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추리해보라는 식이었는데, 내 답변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걸 들으신 교수님의 웃음과 피드백은 기억이 난다.


"자네는 드라마틱한 걸 기대하고 있구먼."


한마디로 소설의 개연성은 살피지 않고, 그냥 드라마틱하게 극적이면 된다는 뜻의 답변을 한 내게, 생각을 좀 깊게 해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드라마틱은 모르겠고, 그렇게 느껴져서 한 대답이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그 답변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내 MBTI로 봐도 그렇다.

너무 1학년 초기여서 그랬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현대문학, 현대시 강독을 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이론을 배웠어도(아마 대강 공부했겠지만) 합리성을 기초로 판단하거나 논리력, 형식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내게 '강독' 붙은 시간은 죄다 부담이 되었다. 한 가지, 고전소설은 빼고.

어린 시절에는 뭐가 그리 창피하고 각인되어 멀어지고 싫어지는 것이 많은지. 지금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말고' 한다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난 문학 형식은 잘 모르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느끼는 그대로 꺼내놓고 싶었다. 그런 나였는지 고전문학 속의 형식보다 내용을 강조했던 박지원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나를 파악해보니 그렇다.


정조대왕과의 '문체반정'을 통해서도 역사 속에서 익숙했지만, 고전문학 전공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 속 더 자세한 이야기에 싸악 스며들었다. 마치 역사 쌤 큰별쌤 이야기에 쏙 스며들듯이. 너무나도 내 스타일이었던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호질, 허생전, 광문자전 등을 읽으며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내 학사논문의 주제도 박지원의 고전소설이었다. 국문과를 다니던 나는 그다지 순응하지 못한 채, 내 자아만을 고집하는 시간을 보냈다.

글은 내 식으로 쓰고, 배우는 것은 밍숭맹숭 배우고. 그렇게 나는 철들지 못한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2년 뒤 휴학을 했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은 조선 정조가 당대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같이 참신한 문장들을 패관소품이라 규정하고, 기존 고문(古文)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여 일으킨 사건이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저항했던 인물로 박지원과 이옥을 꼽고 있다. [1] (위키백과)


글쓰기를 배우면 될까 싶었는데 말문이 막힌다


여전히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글쓰기 방법(형식) 공부를 한다거나 훈련을 빡세게 한다거나 그럴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써왔다. 그러다가 소설도 습작처럼 써보고, 시도 습작처럼 써보고, 에세이도 습작처럼 써보면서 브런치에 들어왔다.

운이 닿아 글쓰기를 하는 팀에 들어가서 3개월 동안 함께 3명의 팀원과 글쓰기를 했다. 함께 쓰는 글쓰기를 하며 생각을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형식을 배웠던 것은 아니었고, 책을 여러 권 내셨던 멘토에게 노하우를 습득하는 과정이었다.

또 연극을 하면서 희곡쓰기도 욕심이 생겨서 희곡을 써보았다. 의외로 호평을 얻어 또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희곡은 좀막혔다. 그래서 희곡쓰기 강좌를 들었다. 그런데 강좌를 듣고난 이후에 글이 더 안 써진다. 더 아득하고 막막해졌다. 형식 없을 때, 방법을 모를 때는 물 흐르듯 쓰던 내가 방법을 배우고 쓰려니까, 말문이 막힌다. 습작도 어렵다. 뚫을 방법을 못 찾고 있다.


막힌 곳 뻥 뚫어!

겨우 생각해냈다.

옛 성현들의 방법을 문득 떠올렸다. 글을 잘 쓰려면, 세 가지를 잘 해야해. 다독, 다작, 다상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구양수)

나는 이 방법이 최고인 줄 알고 있었고, 결국 이 방법이 내게 필요한 알짜였었을 것이다.


내가 희곡 쓰기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희곡을 더 읽고, 쓰고, 그 뒤에 생각해야했다. 희곡쓰기 반 수업에서 했던 형식은 가이드인데 난 헤맸다. 단막극, 2인극, 등 가이드 앞에서 막혔다. 쓰려는 마음이 쓰러졌었다. 희곡을 써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원래로 돌아가서 다독, 다작, 다상량해야겠다.




욕심을 내려놓기

브런치를 하다 보니 잘쓰려는 마음에 글쓰기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그 첫 장르로 선택한 희곡 쓰기 강좌에서 얻은 것은 '희곡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아는 지식이었지만 나는 형편없는 글을 쓴다는 부끄러움도 일깨워주었다. 덕분에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에세이는 다행히 아직 에세이 쓰는 법을 안 배워서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인 건가.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글쓰기 강좌는 다상량의 도구임을. 욕심을 내려놓고 쓰자. 확실히 옛 성현의 방법이 내 스타일이다. 나는 가두지 않듯이 써야 한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세 가지를 하면서 가야겠다.


 다독, 다작, 다상량.

나에게 이 순서도 중요하다. 많이 읽고, 일단 쓰고, 그 다음에 생각-퇴고하면서 어떻게를 시작하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추석연휴 카페에서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