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박람회의 유혹
카페 박람회요?
이제 커피 안 마시는데요.
“커피 박람회 아니고, 카페 박람회야.”
한번 가봐. 내가 갈 수 없어서. 자기 커피 좋아했잖아.
지인이 2023년 카페 박람회 티켓을 주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이유를 말씀드렸다.
“저 커피 끊은 지 일주일 돼가요.”
“왜?”
라는 질문에 준비한 답변을 내놓았다. 늘 커피를 들고 있던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하니까.
내가 커피를 끊은 이유를 간단치 않게 설명했다.
‘건강을 위해서다, 커피로 시작하는 아침시간의 카페인 의존도가 걱정되고, 커피 음료에 대한 애정을 넘어 남용으로 느껴져 몸이 바스락거리는 듯했다, 지나치게 많은 커피를 소비하는 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다양한 차문화를 접해보겠다는 다짐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그럼, 박람회에서 좋은 구경거리랑 정보 얻을 수 있겠네.”
나에게 카페 박람회 티켓을 넘긴 지인은 그날 일이 바빠 내게 원두커피 하나만 구매대행으로 부탁했다.
“네, 그러죠.”
구매대행 원두커피 때문에 홀짝,
맛 감별하게 된 20밀리리터
-커피 끊은 것 오늘부터 다시시작은 아닌 것으로.
-홀짝 거린 덕분에 끊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원두 구매대행 덕분에 3층 커피 부스가 몰려있는 구역도 방문했다.
그날 나는 커피를 마셨을까?
딱 한 모금. 너무 궁금한 맛이 있어서 홀짝 입에 댔다. 커피 시음으로 많이 주지도 않는다. 드립으로 15-20ml 정도? 그리고 그 원두를 사다드렸다.
바로 아래 사진 속에 있는 커피. 그리고 설명. 내 입맛에는 신맛이 멋진 커피였고, 등급은 잘 모르겠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나는 저렴한 입맛이었을 것이다.
저렴한 입맛도 구분해낼 루왁커피?!
과거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노홍철, 정준하, 하하, 길, 일곱 명의 구성원들이 동화나라 공주 캐릭터 분장을 하고 나온 적 있었다. 누가 공주의 교양과 매너를 갖고 있는지 뽐내는 과정 중에 맛감별이 있었다. 품격있는 미각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공주라면 평상시고급문화를 향유했을 것이니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스턴트 원두 커피와 최고급으로 꼽히는 루왁 커피를 구분하는 테스트였다. 나도 일곱 명 중에 누가 맞힐까 궁금했다. 그들이나 나나 루왁커피는 못 먹어봤으면서 품격있는 미각을 갖고 싶었나보다. 우아 떨며 마시는 칠공주의 우스꽝스런 품평회였지만 최상급 루왁커피 맛 표현을 기대했다. 칠공주들도 루왁커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며 각자의 소신대로 이야기했다.
“목넘김이 부드럽고, 맛이 고급스럽고~ 어떠하니 이것이 루왁일 것이다.”
누가 맞혔을까? 아무도 맞히지 못했다. 감별하라고 준 커피 두가지 종류 모두 같은 인스턴트 커피였다. 헉 하고 놀랐었다.
둘 중 하나에 루왁이 있다고 하는 자체가 루왁의 맛이라고, 고급의 맛이라 여기게 한 것이다. 제작진의 허를 찌르는 설정에 모두가 자신의 믿음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제작진에게 어이를 상실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허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는데, 입맛이 저렴한 걸로 밝혀진 이유 때문이라 해야할까. 통쾌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허울을 벗기는 유머러스하고도 해학적인 방식에 무한도전이 참 좋았다. 그때 미각으로 우아떨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떤 커피든 다 마셨다. 다방커피, 원두커피, 인스턴트원두. 미각으로 우아떨지 않았다. 주는 대로 있는 대로 마셨다.
커피는 기후, 토양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이렇게 재배된 커피는 로스팅 정도에 따라 또 다양한 맛을 내고, 내리는 사람의 방식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맛이 난다. 또 무엇을 섞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연출되기도 한다. 나만의 취향으로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것이 커피가 아닐까. 이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 그것이 매력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소비량이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든다고 한다. 이런 매력이 통한 것일까, 아니면 맥심 커피를 향한 사랑이 원두커피로 진화하면서 이어져나간 것일까? 외국의 업체들도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며 카페 박람회를 찾아왔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 카페 박람회에 입장하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음을 위해 조금씩만 마셔도 얼마나 마시게 될지 상상이 된다. 내가 흔히 마시던 커피가 330ml 정도였으니까. 소주잔 분량 종이컵에 1/3~1/4 높이로 따라주는 시음용 커피를 마시다보면 한 잔이상은 족히 마시게 될 것이다.
커피를 끊은지 일주일 된 나는 다행이라고 할지, 아니면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을 받았다. 처음에는 안 보는 게 최선이니, 커피 부스가 몰려 있는 3층에는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매 대행이 생각났다. 3층으로 발을 옮겼다. 3층에 들어서자마자 아니나다를까 냄새가 홀에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을 이끈다. 원두커피 구매 대행을 위해 여기저기 살피러 다니니, 각 부스에서 시음용으로 커피를 마시라며 여기저기서 잔을 내민다. 유혹하는 것을 최대한 멀리해야 끊을 때도 좋은데 이렇게 바로 옆에 두고 있다. 내 지인이 옆에 있는 것도 아니므로 오늘 정도는 마셔도 내 결심 같은 것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은 이런 기회 없으니 다양한 경우를 가진 색깔은 비슷하지만, 맛은 오묘하게 다른 그 커피를 마셔보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그러나 나는 카페인 없이 버틴 일주일이 아까워서, ‘안 마셔요’ 또는 ‘못 마셔도’가 아니라, ‘너무 많이 마셔서요’ 라고 이야기하며 거절했다. 너무 관심있게 기웃거리는 것이 이상해서, 하루 카페인 섭취 수준을 절제하는 듯한 고객의 모습으로 다녔다.
저렴한 입맛이라 괜찮아!
사람들이 많이 몰린 곳은 가히 유명한 커피 브랜드였다. 특히 내가 구매대행 원두를 산 곳도 그런 곳이었다. 농장주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맛보라며 시음을 하고 있었다. 구매대행을 하기 전, 시음의 양이 적어 보이는 게이샤 에스메랄다를 홀짝 맛 보았다. 음, 신맛이 혀에 감지되고, 과일향이 난다고는 하지만, 에스메랄다 커피에서는 신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솔직히 과일향, 우디향, 카라멜향 등을 설명서에 써 놓기는 했지만 잘 느끼지는 못했다. 내게는 신맛, 탄맛, 중간맛 정도로 세 가지 느낌으로 구분되었다. 은근히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고품격의 미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였다. 이렇게 각종 매력을 가진 커피를 남기고 이 기호식품을 끊는다고 생각하면 아쉬울 테지만, 내게 세 가지 맛으로 기억되는 커피라면 지금 끊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에스메랄다 버전은 많이 비싸서, 브랜드 매니저에게 게이샤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원두의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구매대행으로 손색없겠다 싶어서 적정한 가격의 원두를 샀다. 티켓을 주신 분은 원두를 받고서, 좋은 원두를 사다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차는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졌다. 1층 차와 디저트 코너에는 화려한 볼거리들이 많았다. 3층 커피 매장은 블랙과 브라운의 채색을 했다면, 이곳은 알록달록한 느낌이었다. 처음 맛보는 것은 역시 에이드쪽이었다. 유자에이드, 자몽에이드 시음을 했다. 디저트 빵도 많이 주었다. 처음엔 덥석덥석 손에 집었지만, 두세 개 먹으니, 느끼해졌다. 맵고 칼칼한 맛에 길들여진 내 위장과 혀는 달콤한 맛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녹차, 도라지차, 꽃차 등을 맛보면서 다양한 이벤트 참여도 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벌써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벤트 참여 후에 받은 걸 놓아보니, 많은 업체들이 있었구나, 집에 와서 자세히 알았다.
카페인 없는 잎차 있나요?
녹차원이라는 브랜드에서 차를 싸게 팔고 있었다. 도라지차와 뽕잎차가 있었는데, 사고 싶었다. 그 전에 커피를 끊는 김에 카페인마저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차원 직원들은 알것이라고 생각해서 “뽕잎차에 카페인 있나요?” 하고 물었다. 한 직원이 머뭇거리자, 옆에 직원 분이 금세 검색하셔서, “없습니다.” 하셨다. 빠른 순발력에 감사드렸다. 그래서 뽕잎차와 도라지차, 생강차 티백을 샀다.
생각해보니 내 주변 사람 중에 기후위기 때문에 단식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단식하는 기간 동안에는 감잎차와 효소를 드신다고 하셨다. 감잎차에 비타민 C가 많아서 5일 단식기간 동안 마셔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가 떠올라 감잎차를 사고 싶었으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옆에 허브티가 보였다. 로즈마리티, 생소했다. 로즈마리 화분을 키우는 동안 항상 그 상쾌한 향이 기분이 좋았다. 키우기는 어려워서 지금은 갖고 있는 것이 없지만. 로즈마리의 상쾌함으 떠올리며 운전할 때나 공부할 때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로즈마리에도 카페인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셔서, 안심하고 로즈마리티도 장바구니에 담아왔다. 다른 티백보다는 조금 비쌌다.
예술 작품 같은 차
눈호강 하는 차들도 있었다. 꽃차를 우려내고 나서 남은 것으로 유리주전자에 넣고 관상용으로 둔 것이었다. 선물용으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꽃 하나에 꽤 비싼 편이지만, 만든 정성과 꽃의 품질을 생각하면 그것도 적정한 가격이라고 보인다. 시장을 키운 원두커피와는 다른 영세한 곳이니까. 외국 브랜드 차도 있었다. 티라미수 향이 나는 차, 애플시나몬 맛이 나는 차들이었다.
차를 우려내고 역할을 다한 티백을 올려둘 것을 포장했던 것을 활용하는 기술이 매우 예술적이었다. 차의 세계는 예술 세계와 같았다. 물론 비쌌다. 나는 들었다 놨다 했다. 직원과 효능과 장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들었다 놨다, 했다. 비싼 가격에 내려놓고 나왔다.
녹차원이나 동서식품에서 만드는 작은 티백들, 현미녹차, 메밀차 등의 작은 세계만을 떠올리던 나는 비싼 차 가격대를 보고 놀랐다. 나는 내게 적당한 수준의 차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며 시음을 하고, 안목을 넓혀 나갔다.
카페 쇼에서는 사업자를 위한 설명도 하고 있었다. 사업자 이벤트도 있었는데, 사업자가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곳에 들렀지만, 어렸을 때부터 동네 사랑방 하나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 오고 가는 곳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공간을 하나 장만하여 나는 찻집 운영하고, 옆에서는 세미나, 강습 등을 하고, 누군가가에게 장소를 대여해주어서 오피스처럼, 작은 북토크 등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다.
카페쇼에서 브랜드 이벤트에 참여하려고 줄을 서려고 하면,
“사업자세요?” 하고 물어본다.
그럼 나는 “아니요.” 라고 대답하고, 답변을 수정했다. “지금은 아닌데, 인생 어찌될 지 모르니까요. 언젠가는 할 수도 있어요.”라고 답변했다. 마음 속에 있는 소망이 박차고 나온 말이다.
직원이 말했다. “그렇죠. 어찌될지 모르죠. 여기 줄 서세요.”
예비 사업자들을 위해 홍보하는 브랜드관들이 많았으니까.
커피를 끊고 나니,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오늘은 작두콩차, 뽕잎차를 마셨다. 출근하는 길에 각종 잎차와 곡차, 꽃차 종류를 알아보고, 내게 맞는 것을 찾아 마실 수 있도록 찾아봐야겠다. 감잎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변비가 생기고, 이뇨작용이 있다고 한다. 뽕잎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손발이 찬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하니까. 차를 마시는 것도 적당히, 부작용에 대한 정보도 알아봐야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오니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그동안 우리나라 커피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커피 음료로 편의점 벽면이 가득했었다. 그러나 나는 커피를 끊고 나니, 그쪽 벽면은 쳐다보지 않아도 되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운전을 할 수 있었고, 글을 쓸 수가 있었다.
커피잔이 늘 옆에 있었다. 이제는 그냥 물, 새로운 차를 마시며 다른 맛을 알아보려고 한다. 값싼 곡차와 잎차가 다양하게 함께 할 것이다. 같은 콩에서 출발하여 각양각색의 맛을 내는 커피의 깊은 세계도 좋지만, 다양한 차가 있는 넓은 차의 세계도 알아보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박람회 이후니까, 커피 끊은지 1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