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내 인생의 대부분도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대하는 일을 하며 보냈다. 특히나 인정중독에 길들여진 K 장녀들의 공통점이랄까. 다른 사람에게 “잘했다. 훌륭하다.” 그 말한마디 듣기 위해 삶의 우선 순위가 맞춰져 있었다. 장녀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했고, 결혼을 한 후에는 며느리, 아내의 역할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상사와 클라이언트의 평가가 내 일상의 최우선이었다. 이런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 인정받으며, 나의 위치와 존재감도 분명하게 자리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나의 모든 시간은 클라이언트를 위한 시간에 지나치게 올인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 12-14시간씩 일만 했고, 성과를 인정받을 수록 마무리되는게 아니라 일이 더 많아졌다. 잘하면 잘할수록 해야할 일은 더 많아졌고, 해내려고 애쓸수록 부담감과 중압감이 스노우볼처럼 커져갔다. 그 날도 혼자서 밤 11시까지 일하며 망연자실해서 혼잣말로 ‘내가 두명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망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시한부인생 선고받고, 갑자기 전세계 여행을 하는 그런 영화 속 주인공이 스쳐갔지만 그건 영화이고. 난 시한부인생 아니니까 그런거 말고, 현실적으로 내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다면 나는 어떤 시간에 조금 더 시간을 내어줄지 신중하게 되물어보았지만 선뜻 떠오르는게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고 싶을 것인지 물으며 결정하라고 했다(2005년 6월 12일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 축사 중에서). 모든 사람은 세상에 24시간만 공평하게 받아서 빈손으로 오기에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 수 있게 한다.
내가 진짜 살고 싶은 모습으로 24시간을 채우지는 못하더라도, 나다운 선택과 나다운 하루를 조금씩은 허용해야겠다고 불현듯 다짐을 했다. 그 후 나는 업무상 해야 할 일로만 채워진 시간에서, 10%정도는 하고 싶은 것에 시간을 조금 양보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내어놓는 것은 그만큼의 기회나 돈, 여러가지것도 함께 양보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처음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공동경영자가 10명인 병원에서 브랜딩 추진팀으로 위임받은 3명의 의사가 찾아왔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3명에게 브랜딩에 대한 제안을 마쳤고, 그들은 하고 싶다며 입을 맞춘 상태였다. 하지만 추후 나머지 7명 넘는 공동경영자들이 막상 왜 브랜딩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반대를 하는 상황이라 설득을 해달라고 했다. 평상시 같으면 빵빵한 제안서를 만들어서 설득을 위한 논리를 전개했을터이지만 이번 설득에 성공(?)한다면 나는 의사결정권팀 3명이 아닌 그 10명을 대상으로 매번 설득을 해야함이 분명했다.
이런 구조라면 설득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들이고, 일을 일답게 할 수 없을게 보였다. 의사결정체계가 깔끔하게 정립되어 있지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의견합치까지 내가 할 일은 아닌거였다. 네트워크 병원이고,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 같았지만 일보다 합의에 시간을 쏟는 것은 나다운 일의 방식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브랜딩 추진팀에 최종의사결정권이 위임되어야 일을 할 수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짝짝짝!)
그 용기를 시작으로 그 이후에도 몇 건의 제법 큰 프로젝트를 거절했다. 앞으로 나는 나답게 일할 수 있는 일에만 나를 허용할 것이고, 일 외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시간도 내어줄 거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거절한 만큼 조금은 벌게 된 시간엔 유화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한다. 아직 내가 일 외에 뭘 더 하고 싶어하는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일 말고, 남에게 좋은 평가받기 위해 쓰는 시간 말고, 나를 알아가는 순수한 시간을 좀더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