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꿈. 이런 류의 단어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존재했다.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마음이 버거울 때면 여지없이 그곳으로 도망하고 있었고, 그러다 가쁜 숨을 토해내는 순간이면 언제고 아슬하게 기울어진, 작은 'b'버튼 앞이었다. 간절함의 무게만큼 두려웠다.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운둔자의 마음걸음은 과도하게 둔중했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웠으므로, 작은 버튼을 열어 다른 세계로 건너는 일에도 큰 용기와 깊은 호흡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겐 고작, 기껏과 같은 일들이 나에겐 기어코가 되고 말았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어느 사직자, 우울자, 워킹맘을 그만한 경력단절자, 엄마이자 딸, 아내이면서 며느리. 예사롭고 심상한, 이 보통의 자리조차 힘에 겨웠다. 자연스레 마음을 끈을 하나씩 차례로 자르고 나서, 집의 한 구석에 몸을 두고 지냈다.
싹둑거리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했고, 나는 그마저 지니지 못한 고장난 이었다. 어느 날엔 마지막으로 남은 나와의 끈마저 싹둑 버리고 싶었고. 혼혼하게 혼미해질 즈음이면 마음이 자살하듯 뛰어들 공간이 절실했다.
'브런치'가 내겐 그랬다. 뛰어들고 후회하는 순간이 무수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음이 덤벙 제멋대로 뛰어들 단단한 다이빙대, 검고 우울하고 무겁고 묵직한 것들은 훌렁 벗어두고 고운 것만 겨우 걸친 채 훌훌 뛰어들 파랑, 은밀히 지우고 버리고 사라지게 만들 비밀지우개. 그런 것들이, 현실을 거뜬히 살아내지 못하는, 보통의 것들조차 버거운 이에겐, 나에겐 절실했다.
몽상하듯, 현실 저 너머 '브런치'에 은신처를 두고 숨어 긴 호흡으로 흰빛의 공기를 깊게 담아 오면, 암흑빛의 현실에서도 작고 얕게나마 숨 쉴 수 있었다.
숨이 찼다. 색색거리는 소리나 훅 끼쳐드는 숨결의 온도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아있음을 감각하는 일이 하루의 시간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랐다. 살아있다는 사실은 가뭇없이 거대했고,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라, 그것만으로 영겁의, 억겁의 무게가 되어 짓눌렸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어떤 것에도 잘못이 없다. 정성스레 요리한 카레의 뭉그러진 당근을 보며 속이 역류하는 누군가에게 잘못이 없는 것처럼, 그저 내가 정성스레 지은 나날로부터 모르게 피어난 일이었는지 모른다. 살아있다. 숨이 찬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아슬하게 기울어진, 조구마한 'b'버튼 앞에 서고 만다. 그곳으로 건너가면 흰빛의 공기를 가득하게 담아 올 수 있으니까.
'b'버튼 속 '브런치', 그곳엔 내 안에 살아있는 것들을 묻어놓은 글자무덤들이 있다. 그곳에서만은 편히 숨 쉴 수 있도록 내밀하게, 고이고이 숨겨둔 마음무덤들. 축축한 것들이 발효되어 바삭하게 젖어들 때까지 묻어둔 슬픔무덤들이.
흙빛이나 흑빛을 벗고 과연 투명해지고 선명해지면 집의 어느 구석에 무덤이 되어 숨은 나와 같은 이들의 마음에 감히, 가히 가닿고 싶다. 'b'라는 투명망토를 걸치고 보이지 않게 관통하여 'b'의 세계에 비밀히 숨겨놓은 고운 것들을 그들의 안에 고이 묻어주고 싶다.
'b'의 세계에서 마음의 첫걸음마를 내디뎠던 것처럼, 나와 같은 이들의 마음손을 잡고 가분히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 세상에 기꺼이 스며들어, 생에, 삶에 부디 기쁘게 배어들고 싶다.
나의 문장이나 페이지, 나의 마음들은 어느 즈음에 있을까. 문장조차 되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묻혔대도, 글이 되지 못하고 방울져 얼룩이 되고 말았대도, 그 즈음의 시간에 나는 이곳, '브런치'의 어딘가 있었다. 살아있었다. 보통의 존재로 순간을 버티고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 달콤함이 돈다.
슬픔에 달콤함을 더하면 어떤 맛이 나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 기묘한 맛을 알면서도 'b'버튼을 찾아 글자무덤을 짓는다. 쓸쓸하게 마음을 헐벗고 'b'라는 투명망토를 걸친 채, 나를 지켜낸 이곳에서 나와 비슷한 이들을 안아주고 싶다. 감히 '함께'라는 꿈을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