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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젤 Apr 17. 2022

클래식은 다시 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클래식이 싫어 실용음악으로 뛰쳐나간 애가 다시 클래식으로 회귀하는 이야기


 내가 피아노를 처음 친 건 6살 때였다. 유치원에 가는 길엔 넓은 대로가 있었다. 그 길의 왼편에는 과일가게, 이불집이 있었고 그 사이에 피아노 학원 하나가 끼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창에 노란색 꽃 스티커들이 붙여져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피아노 학원은 동네에 있는 유일한 피아노 학원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작은 학원은 항상 피아노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당시 유치원에서 유명한 노래는 <동물 농장>이었다. 삐약삐약 병아리, 로 시작하는 그 동요는 유쾌한 멜로디와 마지막 가사인 "따당, 땅 당당 소라!"를 외치며 몸을 웅크리는 재미가 있었다. <멋쟁이 토마토>를 이어서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동요였다. 그리고 이 동요는 내가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애 하나가 유치원 피아노에 앉더니-블럭쌓기에 진심이었던 나는 그때 유치원에 피아노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동물 농장>을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뭘 눌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쟤가 손가락을 움직이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피아노에 매료됐고, 저걸 반드시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바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를 졸랐다. "엄마, 나 피아노 학원 보내 줘." 그렇지 않아도 본인은 음악에 문외한인 터라, 자식들만큼은 피아노던 뭐던 악기 연주 하나는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계셨던 엄마는 내 이야기에 옳다구나 박수를 쳤다. 물론 철저한 약속도 잊지 않았다.


 "너, 엄마가 피아노 학원 보내주면 피아노 계속 칠 거지? 안 그만두기로 엄마랑 약속해. 그러면 보내 줄게."


 그리고 누가 알았을까, 이게 6살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피아노를 계속 치게 되는 시작점이 될 줄은. 엄마의 허락까지 받은 나는 그 길로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매일 유치원이 끝나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다양한 소리가 있는 전자피아노였다.


 얼마 있지 않아 나는 그 애처럼 <동물 농장>을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나는 여러 번의 이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피아노 학원을 다닐 수 있었으며 10살 때부터는 교회 합주반에서 피아노 반주를 시작했다. 매일 피아노 학원을 가는 데다가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반주를 하니, 피아노를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내가 치던 곡들은 찬송가나 클래식 중심이었다. 내가 연주해야 하는 계이름들이 딱딱 정해져 있는 곡들. 양손 가득 음계들을 담아낼 때면, 피아노(p, 여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에서 포르테(f, 세게 연주하라는 의미)로 연주할 때면 내가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즐거웠다.


 그랬던 내가, 12살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가요에 눈을 뜨게 되며 클래식을 '지루하다'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곡은 빅뱅의 <붉은 노을>, 동방신기의 <주문>,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 등이었다. 조그마한 아이리버 MP3에 꽂힌 이어폰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안내했다. 강렬한 비트,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아닌 다양한 사운드,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음계들―― 에너지 넘치는 그 노래들을 들으며, 나는 순식간에 가요에 매료됐다.


 가요에 푹 빠진 나는 아빠를 졸라서 샌디스크 MP3를 샀다. 인생 처음으로 소리바다에 가입해서 곡을 다운받았다가 부모님께 들켜 혼났다. 가요를 들으며 그 곡이 내게 들리는 대로 악보를 적고 피아노로 쳐보기 시작했다. 슈퍼주니어의 <너라고>, 샤이니의 <Juliette> 등을 카피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하라는 체르니는 안 치고 몰래몰래 가요를 치다가 들켜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니 어느 순간부턴가 클래식은 내게 '연주하기 싫은 것'이 되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는 합주반 반주를 그만두고자 했지만 엄마에 의해 저지당했다. 대신 공부를 핑계로 피아노 학원을 그만 다니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는 것을 상당히 아까워했고, 내게 원한다면 개인 레슨을 받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완전히 클래식에 정이 떨어진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런 상태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치는 건 정말로 고역이었다. 더군다나 지휘자 선생님들이 음악 전공자들이라 더 그랬다. 그들이 내게 바라는 건 '음악'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건반을 틀리지 않고 올바르게 짚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니 불협화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직도 14살인가, 15살 때 지휘자가 내가 연주를 듣고선 음악이 하나도 되지 않는 데 어떻게 나에게 반주를 시키냐고 소리를 질렀던 일을 기억한다.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의 제자를 불러 연주를 시키곤 나에겐 성가대에 들어가 노래를 하라는 권유 아닌 권유를 했다. 저 악기 하나 때문에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는 게 너무 짜증이 나서 나 역시도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피아노를 완전히 혐오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클래식 피아노는 죽도록 싫었다. 그걸 치느니 차라리 교회를 안 나가고 싶을 정도로 클래식은 미웠지만 여전히 가요는 내게 좋은 친구이자 위로가 되어 주었다. 점심시간마다 학교 음악실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내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윤하의 <기다리다>, <혜성>과 빅뱅의 <This love>를 주로 쳤다. 클래식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박자의 자유로움이 좋았고 마이너 코드가 주는 특유의 끈적한 느낌이 좋았다.


 16살 겨울 즈음, 교회의 고등부 성가대에서 봉사할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돌았다. 다른 친구들은 함께 성가대에 지원하자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만 나는 이 지긋지긋한 클래식 피아노를 3년이나 더 이어나갈 용의가 없었다. 어차피 고등부 성가대에서 피아노로 봉사할 생각도 없으니 이제 봉사도 그만둬야겠다 생각할 때, 내 눈에 띈 건 찬양팀이었다.


 우연찮게, 찬양팀에서 키보드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찬양팀은 예배 시작 전 30분 정도의 찬양을 인도하는 팀이었다. 그런 찬양팀의 키보드라 함은, 클래식 피아노와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그것도 분명 피아노는 피아노였다. 클래식 피아노가 싫었지 피아노 자체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던 나는, 고민 끝에 결국 원서 접수 마감 당일에 찬양팀 키보드에 지원했다. 클래식 피아노만 한창 치던 애를 과연 뽑아주시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떨어져도 더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지원한 찬양팀은 길 잃은 피아노 연주자를 반갑게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었고, 본격적으로 CCM을 연주하기 위한 실용음악 이론을 배우며 나는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드를 배웠고 리듬을 배웠다. 감으로만 대충 연주하던 윤하의 <혜성>이 D키라는 걸, 슈퍼주니어의 <너라고>가 Bb키라는 걸 나 스스로 알아냈을 때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광산에서 매일같이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는 기분이었다.


 찬양팀 활동을 하며 나는 점점 더 클래식과 물리적으로, 심적으로 멀어져 갔다. 기저에 박혀 있던 클래식적인 연주 기법을 찬양팀에 맞게 실용음악적으로 바꾸며 더더욱 그렇게 됐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니 어느 순간부터 클래식은 내게 똑같은 음계들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지루한 것, 가볍게 즐기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실용음악은 매 번 변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것,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됐다. 클래식적인 것이 나에게는 '나쁜 것'으로 박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17살 이후부터 나는 클래식 연주와 감상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대중음악에 좀 더 집중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교회 반주를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서 시작한 피아노 레슨을 하던 중이었다. 찬송가를 편곡 해오라는 숙제를 받아 연주하던 참이었다. 내 연주를 가만히 듣던 선생님이 말했다.


 "연주 잘 들었어요. 편곡한 곡을 들어보니 케이던스랑 다이아토닉 코드 가지고 잘 해오시긴 했는데, Verse랑 Savi의 코드가 반복되는 부분이 좀 있네요. …0점부터 100점을 기준으로, 혹시 제가 이 곡에 몇 점 정도 주실 것 같으세요?"


 당시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나는 순간 여러 생각을 했다. 그중 내가 가장 꽂힌 단어는 '반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반복은 클래식에서나 하는 거지 실용음악은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거늘. 내가 이번에 편곡하며 동일한 코드를 많이 반복한 게 어쩌면 선생님의 눈에는 실용음악적인 음악을 만들어 오지도 않은 동시에 숙제를 날로 먹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한 50점 주실 것 같은데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깜빡이고는 말했다.


 "저 혹시 표정 안 좋았어요?"

 "네. 엄청."

 "제가 무표정이면 좀 인상이 사나워 보인단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봐요. 50점은 아니고, 제 점수는, "

 "……."

 "90점! 저는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네요."


 ……? 그럴 거면 대체 난 왜 긴장했던 걸까. 활짝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얄밉긴 한데 헛다리 짚은 사람은 나라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높은 점수를 드린 이유 중 하나는, 코드 진행도 너무 좋았지만, 반복을 아주 기가 막히게 쓰셨기 때문이에요."


 반복이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가 된다고? 여태껏 (야매지만) 실용음악 이론을 배우며 나는 반복이 좋은 거라고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반복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사이에 조금씩 변화를 주라고 배웠다. 가령, Verse-Savi-Savi 구성에서 두 번째 Savi를 연주할 때는 코드에 add2를 넣어 연주하거나 조금 더 리듬을 쪼개는 식으로 곡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게 바로 곡을 고조시키는 길이자 청중이 들었을 때 그저 '코드만 치는 것'이 아닌 찬양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복을 했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는다니. 지금까지 내가 배웠던 것과 다른 방향의 가르침이라 뇌에 혼선이 생긴 기분이었다.


 "반복도 잘만 쓰면 정말 좋은 기법 중 하나예요. 편곡하신 것처럼 Verse와 Savi가 동일한 코드로 구성되면 듣는 사람은 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거든요. 물론 지나치게 반복을 많이 하면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느 정도의 반복은 듣는 사람이 음악에 빨리 익숙해지게 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서 좋아요. 그래서 이번에 편곡하신 곡 같은 경우, 적절하게 반복을 쓰시면서도 마지막 Savi에서는 코드를 다르게 하셨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드릴게요."


 내가 몰랐던 반복의 순기능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착잡한 기분이란. 그동안 '반복'이란 무조건 클래식에서만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리듬과 선율이 싫어서 클래식을 이탈했다. 클래식은 그동안 무조건 나에게 나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친구가 알고 보니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친구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레슨이 끝나고 버스에 몸을 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내 감정에 사로잡혀 클래식을 그냥 미워하고만 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상 내가 미워해야 할 건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풀 수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만만한 클래식을 매도하고 나쁜 놈으로 몰아세웠던 건 아닐까. 새삼 클래식에게 미안해졌다.


 그날 베란다 창고를 뒤져 10년 묵은 악보를 찾아냈다. 클래식 혐오가 극에 달했던 때, 내가 고민 없이 버리려고 했던 악보들을 엄마가 언젠가 다시 연주하고 싶을지 모르니 남겨두자고 했던 것들이었다. 피아노 명곡집 150선, 소나티네, 체르니 40 등. 천천히 악보를 열었다. 레슨을 받았다는 의미인 색연필 자국, 연주할 때 틀리지 않으려고 내가 계이름을 써놓은 흔적들 등이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에 앉아 그 곡들을 연주했다. 한 때 내가 진심으로 미워했던 연주곡들을.


 몇 년을 실용음악에 종사하다가 다시 클래식을 치니 손이 굳어 어색했다. 예전에는 잘 되던 트릴 기법이 삑사리가 났고 왼손 계이름을 많이 잊어버린 탓에 빠르게 쳐야 하는 곡도 천천히 연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거진 10년 만에 치는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여전히 클래식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움직이는 오른손을 보며 나 스스로도 신기함을 느낄 정도였다.


 쇼팽 왈츠 op.64 no.1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즐거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치던 체르니의 연습곡마저 이게 이렇게 밝고 예쁜 곡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선율이 예뻤다. 영영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클래식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때 치면서 처음 깨달았다. 가만히 내가 치는 곡들을 듣던 엄마가 한 마디를 던졌다. "클래식 안 친 지 좀 되지 않았어? 여전히 피아노 잘 치네, 너."


 무엇이든 그 본모습을 보려면 감정을 걷어내고 봐야 한다는 걸, 그때 제대로 느꼈다. 클래식은 죄가 없었다. 다만 내가 클래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마냥 클래식을 나쁘게만 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10년이 넘어 다시 마주한 클래식의 본모습은 그 어릴 때의 내가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건과 감정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무언가가 죽도록 싫어지기도 하고, 무언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상의 본모습을 보려면 나의 감정이란 필터를 걷어내고 대상 본연의 모습에 집중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미워하고 질타했던 것이 사실 아름다운 본모습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마치 나에게 클래식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직도 종종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CCM 말고도 클래식도 함께 연주한다는 점이다. 나는 여전히 가요 감상을 좋아한다. 하지만 요새는 취미로 클래식 음악을 종종 감상하기도 한다. 지금 이 글도 클래식을 들으며 썼다. 쇼팽의 나비라는 곡인데 정말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바로 연상될 정도로 아름다운 곡이다.


 나는, 더 이상 클래식을 미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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