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새로 시작해 본다면

by 윤재


만일 한 번쯤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까요?



“한 번쯤 새로 시작해 본다면 나는 먼저 세상을 재는 단위부터 바꿀 생각이다.

아무렴.

모든 거리나 높이는 땀방울로 재는 거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이런 산들은 해발 일 미터 당 오백 사백 삼백 땀방울,

종로에서 서울역까지는 일 미터당 오십 땀방울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도 땀방울로 재는 거다.

한 시간에 사백 땀방울짜리 일과 오백 땀방울짜리의 일.


그렇다면 그 호수, 어느 날 아재비가 하늘을 담은 그 호수는 몇 땀방울의

호수인 것일까.


그리고 말이지..........

우리가 사는 데 흘리는 모든 눈물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면!

눈물 한 방울의 에너지.......

이 눈물 에너지의 단위는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그건 그저 방울이라 부를까.........

에너지 다섯 방울짜리 눈물, 이렇게 부르는 거야. “

--최윤, <속삭임, 속삭임> 민음사, 중에서



판단 분석 기준의 근거가 되는 단위를 바꾸어 본다는 신선하고도 발칙한 생각이 경쾌합니다.

한 번쯤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설레입니다.



최근 지인의 권유로 민화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노안이 심해서, 그림에 재주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등등의 핑계를 대 보았지만

한시적인 배움의 기회라서 못 이기는 척 슬며시 발을 들여놓았지요.

‘못 이긴 척’하고 들어간 그 공간이, 요즘 내 마음의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민화 배우는 과정은 참 묘합니다.

화려한 색감 속에 해학이 있고, 엉뚱한 구도 속에 따뜻한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그림의 선이 서툴러도, 그 안엔 사람 사는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민화는 다채로운 색상과 익살스러운 재치가 포함된 독창적인 구도, 다양한 분위기 등이

포함되어 있고 밑그림으로 준비된 본을 따라 그려볼 수 있군요.


첫 그림은 ‘부귀와 평안’을 의미하는 화려한 모란도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본을 뜰 때 세필로 그리면서 초 뜨기를 하는데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

붓의 움직임이 무력감과 난감함을 느끼게도 합니다.

선이 자꾸 비틀리고 번졌습니다.

아마도 선 연습이 충분하지 않아서겠지요.

모란의 잎 하나를 그릴 때마다, 최윤 작가의 소설처럼 애쓰는 마음을 땀방울로 잰다면,

글쎄 이 어설픈 그림은 몇 방울쯤이나 될까요.



모란.png




붓끝에서 번지는 색은 단순한 물감이라기보다,
그것은 마음의 망설임, 하루의 피로, 그리고 작게나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에너지라면

이 에너지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웃으며 ”괜찮아요, 잘하고 계셔요, 민화는 완벽함보다 마음이 더 중요해요 “ 등의

반응으로 무한 긍정과 지지의 말을 전해주었지요.

뭐 살아온 세월도 삐뚤빼뚤했던 적도 있었고, 가끔은 지워지고,

대충 덧칠하며 온 적 있으니 선이 삐뚤거나 벗어난 것은 그리 큰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자인도 현대적인 민화 그리기로 확장되었고, 포토샵을 이용해 디지털로 민화를 그릴 수 있게 되어 수작업 대신 수정과 편집이 편리해 즐거운 취미가 될 수 있게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각 그림의 도안마다 의미와 소망을 담을 수 있어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붓끝에서 번지는 물감의 냄새와 종이의 질감,
그 손맛이 주는 위로는 여전히 아날로그 세대인 저에게는 더 친숙할 것입니다.



미술치료에서 내담자에게 적용하는 미술 매체 선정은 내담자의 마음 상태와 자아의 힘을 고려합니다.

즉 그의 성격, 발달 단계, 심리적 상태, 표현 방식, 치료 목표 등을 세심히 고려해 결정합니다.

내담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된 경우, 그의 내면적 상태를 고려한 종이 크기를 고려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돕거나, 표현의 용이성을 위해 파스텔이나 크레용 등 비교적 간편하고 다루기 쉬운 도구를 선정하게 합니다. 민화에서 본뜨기 등에 사용하는 가는 붓(세필) 같은 경우는 내담자에게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도구가 되겠지요.


민화를 배우며 그림이라는 건, 결국 마음을 다루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 하나, 색 하나에도 감정이 투영되고,
붓끝이 떨릴수록, 그만큼 마음에 진동도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포스코미술관에서 개최된 ”오백 년 만에 돌아온 조선 서화“ 특별전을 보았습니다.

시선을 오래 잡아두는 그림들도 있었지만,

영화 ‘케데헌’의 영향인지 호랑이와 새 그림이 예전과 달리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호랑이와 새그림.png

긍재 김득신(1754~1822), <송하호도, 해암응일도>

*김득신은 도화서의 대표적 화원으로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산수, 영모, 도석인물 등에서 김홍도의 영향을 받았다.

가을 하늘 아래 일출하는 해를 바라보는 송골매의 모습과 소나무 아래 호랑이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머리 위에 그려진 표범 무늬에서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사진 & 글 출처: 포스코미술관에서)




붓으로 털 하나하나, 깃털 하나하나를 생동감 있게 세밀하게 묘사한 그분들의 집중과 필력과 시간을 땀방울과 에너지로 계산한다면?


계산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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