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인이었을 때

by 윤재


“그 사건은 196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케임브리지에 있을 때 일어났다”

호르헤 보르헤스의 단편 <타자 The Other>의 첫 문장이다.


1969년 케임브리지에서 일흔의 보르헤스가, 1914년 제네바에 사는 열다섯의 보르헤스를 만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상상, 사실과 기억, 동일성과 타자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르헤스와 보르헤스가 대화를 나눈다.


일흔의 보르헤스는 말한다.

“나의 꿈은 이미 70년이나 지속됐지”라고.


그리고 55년 전의 자기에게 묻는다.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이기도 한 나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지 않나?”라고.

--정끝별, 「깊고 아름다웠던 날들의 기원」 중에서,




내가 시인이었을 때


내가 시인이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초록이었을 때

가는 곳마다 꽃향기가 넘치고

바람은 빈 들판을 요란하게 달리면서

평생의 꿈까지 흔들며 춤을 추었지.


그러다 내가 아직 시인이었을 때

청하는 대로 술 취해 노래했는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불안한 눈물도 흐르지 못하고

눈치 보며 얼굴을 떠나지 못했어.


나무와 풀과 꽃이 칼이 되어

내 온몸을 얼리며 위협하고

머물며 살 자격이 없다고 고함질렀어.

내가 쫓겨 가야할 곳은 어디였을까,

시베리아나 고비사막 같은 곳?

약을 먹어도 우울증은 뽑히지 않았다.


...(하략)...

--마종기, 「내가 시인이었을 때」 중 일부, 문학과지성사, 2025



「내가 시인이었을 때」는 한 개인의 직업적 정체성을 넘어, 인간이 세계를 감각하고 사랑하던 한 시절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회상의 시로 다가왔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었을 때’라는 과거형은 단순한 시간 표현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의 온도가 달랐던 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직업으로서의 시인이기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으로서의 시인을 가리킵니다.


이 시가 인상적인 이유는 화려한 언어나 감정의 고조 대신, 절제된 목소리로 삶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점입니다. 시적 화자는 과거를 미화하거나 현재를 비관하지 않고 있지만, 다만 한때는 사소한 것에도 오래 머물 수 있었고,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의미를 지녔으며,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지금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있던 자신을 떠올립니다. 그 회상은 후회라기보다, 조용한 확인에 가깝습니다.


의사이자 시인이면서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가야 했던 그의 이력은 이 시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엄정한 현실과 언어로 마음을 보듬는 시의 세계 사이에서, 그는 늘 인간의 연약함과 존엄과 이방인으로서의 고독을 함께 바라 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시인이었을 때」는 그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시가 삶을 어떻게 지탱해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시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을지라도, 시인을 지켜 주었고, 시인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잠시라도 밝혔을 것입니다. 과거에 머무는 시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어쩌면 시인은 우리가 시인처럼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마종기(1939~ ) 시인의 「내가 시인이었을 때」란 결국 시간 속에 묻힌 한 시절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또 하나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마종기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살아온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생애를 나란히 놓고 바라보면 놀라울 만큼 닮은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기억과 시간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마종기 시인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평생을 의사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의 삶은 현실과 시의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채 나란히 흘러온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이라는 구체적이고 냉정한 공간에서 그는 생로병사를 매일 마주했고, 시는 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언어였을 것입니다. 그의 시에는 과장된 감정 대신 절제된 연민이 있고, 삶을 꿰뚫는 통찰 대신 조용한 체념과 수용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얻은 태도처럼 보입니다.


반면 보르헤스의 생애는 육체적 현실보다는 정신과 사유의 세계에 더욱 가까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도서관과 책, 언어와 상상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점차 시력을 잃어 가는 과정에서도 보르헤스는 세계를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보이지 않게 된 이후 더 깊이 기억과 시간, 자아의 문제를 사유했습니다. 그의 삶은 현실의 사건보다 사유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글 속에서 그는 수없이 많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며 살아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마종기는 삶의 현장에서 시를 길어 올렸고, 보르헤스는 언어와 사유의 미로 속에서 삶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 속에서 공통점 또한 또렷이 드러납니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글을 썼다는 점입니다. 마종기의 「내가 시인이었을 때」가 그러하고, 보르헤스의 「타자」 또한 그렇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만나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삶을 되짚었습니다.


일흔의 보르헤스가 말한 “나의 꿈은 이미 70년이나 지속됐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자서적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 전체가 하나의 길고 반복되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며, 기억과 상상이 서로를 떠받치며 존재한다는 인식입니다.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묻습니다. 앞으로 겪게 될 미래이자, 이미 지나온 과거에 대해 알고 싶지 않느냐고.


이 질문은 결국 독자인 우리들에게도 향합니다.


정끝별 시인이 보르헤스를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아마도... 기억은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다시 쓰는 이야기이며, 회상은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것.


그래서 시인의 회상은 언제나 사유가 됩니다.

감상에 머물지 않고,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는 것.


그 언어 덕분에 우리는 가끔, 아주 잠깐이나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을 얻게 되지요. 그 순간이야말로 시가, 그리고 문학이 우리 삶에 남기는 가장 깊고 아름다운 흔적일 것입니다.



어제 마치 기쁨을 전하는 성탄절 선물처럼 지인이 보내준 몇 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그중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서둘러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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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인터뷰 중에 “인생에 있어서 후회하는 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어 가만히 보니까 한 가지 실수를 했어요. 한국을 너무 오래 떠났다는 거예요. 언제라도 원할 때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라는 문장이 길게 남습니다.


그의 다른 글에서의 문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고국을 떠난 지 이십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내 시가 나도 모르게 고향 그리기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국과 고향 땅이 아니라 내 자신 속을 파고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속에서 고국과 고향을 다른 색깔로 보기 시작했다.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어차피 모든 이의 고향은 같은 곳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