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틀 Dec 09. 2024

8장 지금부터 준비하시고 쏘세요!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까지 걸어갈 계획을 세운 날이다. ‘길 찾기’ 앱을 깔고 경로를 따라 걷고 또 걸을 땐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다. 공부방에서 집까지 거리 7.2km. 최소 도보 이용시간으로 1시간 50분이 찍혔다. 운동화를 꺼내 신고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걸어서 퇴근하던 익숙한 코스를 벗어나 다른 경로로 선택했다. 요즘 나를 사로잡는 것은 ‘상상’을 현실화할 방법인데 걸으며 긍정 확언 같은 책을 소개하는 채널을 듣다 보면 시도하고 싶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럴 때면 걷는 것을 멈추고 핸드폰에 생각나는 대로 입력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초중고 때는 교내외 백일장에 나가면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글 쓰는 재주가 있는 건 알고 있었으나 글쟁이로 밥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것은 항상 의심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는 언제나 나중으로 미뤄졌다. 몇 번 문예지에 투고도 하고 공모전 준비도 해 봤지만 내가 생각해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을 시험 삼아 보내봤을 뿐이다. 내 글이 선택받을 리 없다. 이런 마음을 갖고 글을 썼다. 나의 글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용도라기보단 글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포기를 위한 용도로 썼다. 그런데도 삼십 대 초반까지 사람들이 꿈을 물으면 ‘책을 내는 것’이라 했다. 늘 ‘언젠가는’이라는 중독성 강한 자기 위안을 일삼곤 했다.      


 그러나 키보드 앞에 있는 지금, 당시에 내가 바랐던 꿈은 간절함이 빠진 도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엔 현실의 벽이 높다고 판단했다. 졸업 무렵 마침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돈까지도 쉽게 벌게 해 주었다. 나는 큰 고민 없이 입시 강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러다 강사라는 직업에 싫증 날 때마다 ‘글쓰기’라는 도피처를 찾았다. 나에게 ‘작가’는 조기 은퇴자, 경제적 자유를 이룬 자와 동일 선상에 놓였다. 글을 쓰는 것은 경제적 자유를 얻은 후 누릴 수 있는 지적 사치 같은 거였다. 그랬으니 글쓰기는 이젠 그만 쉬고 싶다는 열망과 늘 함께 찾아왔다.   

    

 우리가 원하는 무언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목적보단 수단을 갈망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를 해체해 보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돈은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챈다.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역시 그 자체로 갈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해체하고 들여다보면 돈을 벌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난, ‘여유가 넘치는 삶’의 다른 이름이었다. 글을 쓰고 싶던 게 아니라 쉬고 싶던 거다. 그러니 종종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비눗방울처럼 가벼운 바람에도 흩어지고 터졌다. 둥둥 떠 있는 정도의 무게였기에 내 안에 깊숙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하루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루’ 앞에 무의식적으로 쓰곤 하던 ‘당연한 것’이 실제로는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는 ‘특별한 것’ 임을 인지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남들이 엿보는 삶,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남들이 동의하는 삶 말고 ‘남들’을 지우고도 여전히 원하는지 스스로에 물었다.


 ‘돈’은 왜 벌고 싶은가. 대답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된다면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다면 ‘만약 ~한다면’을 지우면 어떨까. 글을 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필요조건일까, 충분조건일까. 경제적 자유를 얻은 상태에서 글을 쓴다면 지속 가능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는 거다. 그러나 글로 먹고 살아간다는 무게가 없다면 그 글은 어쩌면 생명력을 잃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경제적 자유를 얻기 전이어도 ‘이젠 글을 쓰겠다.’는 어떨까. 두려움 때문에 가족에게조차 내 꿈에 대해 말해본 적 없음을 깨달았다.

 하루는 늦은 밤, 엄마께 내가 쓴 글의 도입부를 읽어드렸다.

 “엄마. 어때, 내 글?”

 엄마는 소파에 앉아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돋보기 너머로 나를 응시하셨다.

 “딸, 너는 원래 글 쓰는 사람이었는데, 뭐.”

 엄마의 반응은 놀라웠다. 글짓기상을 받은 기억은 내 아이들에게 엄마 어릴 적에 하며 들려주던 옛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추억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엄마는 애초에 내가 글을 쓰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러니 아마추어로서 글이 어떤지를 묻는 내게 작가가 글을 잘 쓰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의 응원 덕분일까. 모든 행동에 가장 앞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을 지우고 일단 하고 싶은 걸 시도해 보는 것으로 모든 계획을 수정했다. 순도 100%의 열망을 남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매일 노트북을 켜고 한두 줄이라도 좋으니 빠짐없이 써보기로 했다.


 엄마에게서 며칠 후 카톡이 왔다. 사진 한 장이었다. 네 잎 클로버 펜던트가 달린 금목걸이였다.

항상 행운이 있길.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고 했던가. 엄마가 정성을 담아 엮은 행운을 잡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출발선에 섰다. 내 목에는 엄마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네 잎 클로버가 반짝인다.


지금부터 준비하시고 쏘세요!


 싸이의 노랫말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