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은 겹에서 드러나는 것
어떤 공간에 가든 내게 감동을 주는 건 그 공간의 화장실이었다. 카페가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술집 안주가 기깔이 나도, 화장실이 형편없으면 정이 뚝 떨어지는 경험. 나만 해본 건 아니잖아?
깔끔히 마감된 화장실 벽, 엉덩이가 착 감기는 변기 시트, 사방으로 튀지 않고 알맞은 양과 모양으로 물을 부드러이 쏟아내는 수전, 물이 질질 새지 않는 세면대와, 쓰자마자 어떤 브랜드인지 알고 싶어지는 핸드워시.
축축하지 않고 보송한~
찝찝하지 않고 깔끔한~
쩍쩍 갈라진 비누 말고 향긋한 핸드워시
그리고 도톰~한 두 겹, 세 겹 짜리 화장지.
그런 것들이 그 공간을 참 품격 있어 보이게 한다.
그래서 내게 좋은 공간은 화장실로 기억된다.
오늘은 대망의 첫 출근.
별생각 없이 카카오지도를 보고 따라간 곳엔 8층 짜리 새 건물이 있었다. 요즘 지어진 건물답게 입구를 찾기가 어려워 당황했지만 하얗고 깨끗한 벽이 나를 안심시켰다.
제일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다. 인테리어야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렇다 치고. 깔끔한 변기와 세면대 정도에 만족하려던 찰나에 손끝으로 느껴지던 부드러운 화장지의 감촉. 두 번 감았을 뿐인데 도톰한 두께감을 만들어 내는. 손가락으로 문질러 세어보니 세 겹이었다. 세 겹? 이 전 직장은 한 겹짜리 화장지를 썼다. 휴게소나 지하철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큰 화장지롤 중 얇은 화장지에 속했다. 엠보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데 세 겹이라니. 감격스러웠다.
겹
1. 물체의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포개진 상태. 또는 그러한 상태로 된 것.
2. 비슷한 사물이나 일이 거듭됨.
3.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그 수만큼 거듭됨을 나타내는 말
겹겹이 겹쳐진 세 겹 화장지가 날 울렸다. 눈물도 보드랍게 닦아줄 화장지여-
잘 포개진 것들은 역시 위로와 안정감을 주는구나.
삼겹살보다 오겹살이 맛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