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로 사람들과 얼마나 잘 소통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들부터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까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 오고 있는지 돌아본다. 그 이유는 내 안에 소통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람은 결국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꿈꾸어 왔다.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길 바라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더는 노력하고 싶지 않아 그 관계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이든, 거리가 멀어 자주 볼 수 없는 사이이든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서로를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상대의 생각과는 달리 관계에 대한 만족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지 않으면 아쉬움이 들었다. 내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상대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고 대화가 뚝뚝 끊겨버리니 그 사이는 더욱더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라오면서 굳어져버린 관계 맺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틈이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마음의 용기와 의지가 부족했던 탓일까, 어른이 되고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오래가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상대방에게 내 약점이 될만한 것을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를 다 드러내지 말라고 조언했다. 너보다 나이가 많다고 언니가 될 수 없고, 나이가 어리다고 동생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관계가 금방 끝나버리는 횟수가 늘면서, 그동안의 나의 모습과 태도를 돌아보니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했지만, 내가 본 상대의 얼굴은 매번 다른 모습이었다.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되려 독이 되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지 못해서일까?
어린 시절부터 혹은 성인이 되어 만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쉽게 약속하여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거리에 살지 않았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 전화통화를 하는 친구는 심지어 파리에 살고 있어 직접 만나려면 2~3년이 걸린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사람들과는 2주에 한 번 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1년에 한 번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1년 동안은 직접 대면할 일이 없다.
가까운 거리에서 자주 얼굴을 보는 일이 드물다 보니 갈등을 일으킬 일이 없었다. 서로를 존중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마음에 불편함이 드는 한마디가 있었더라도 우리가 다시 만나기까지의 시간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힐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불편했던 마음과 생각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되려 나의 말이 상처가 되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래 알아온 친구와 2~3년 이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거리'였다.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이 사는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때때로 상처 주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만약 가족이 아닌 주변사람들과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았다면 알아온 시간이 무색하게 서로 등을 돌려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멀어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족과는 다른 어떤 기대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 사람만은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언제든 멀어질 수 있었다.
적당한 거리와 서로에 대한 궁금함이 관계를 유지하게 된 이유였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며 지속적으로 온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궁금함을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질문하면 답하고, 다시 상대에게 질문하고 답을 들으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 아래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깔려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던 파리에 사는 친구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서로를 쉽게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 상처 입지 않았다. 오히려 모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면서 겪을 어려움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깝게 자주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 외롭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서로의 글을 읽으며 댓글과 라이킷으로 소통한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욕구를 가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우리는 '글'이라는 소통의 매개체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글쓰기는 또 하나의 소통능력이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웃과 인사하는 하는 일이 드물고 자기만의 온라인 세계가 중요한 이때 가장 필요한 능력이 글 쓰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착안되었다. 직접적인 대화보다 문자가 편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이기 때문이다. 나를 얼마나 잘 표현해 내는지가 중요한 듯하다. '모두가 작가다'라는 말이 이런 생각에서 나온 말일까?
상대의 진심을 알고 싶고 나의 마음 또한 알아주길 바라지만 서로를 가로막는 벽이 두껍게 느껴진다. 표현을 하는데 조심스러워지니 점점 더 서툴게만 보인다. 나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문제를 회피하게 된다. 우리가 혼자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해 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안에서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함을 느낀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울림이 온다. 좌절해도 금방 회복되는 이유는 내면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믿고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고 건강해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내가 느끼는 좌절감이 줄어들면서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을 거라고 믿는다. 상처받는 말을 듣게 되더라도 그 사람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힘든 마음을 쉽게 흘려보내게 되는 듯하다.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돌아볼 때 더욱 성숙해진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작가님들께 ⸜❤︎⸝
글쓰기가 어렵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은 많은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함을 느낍니다. 예전과 달리 책 속의 글에 의지하지 않고 나 자신의 생각으로 글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맞는 책을 고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다 보니 점점 더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요즘엔 제 자신이 글쓰기 연구자가 된 것 같습니다. 글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글을 대하고 써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한동안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글 쓰는 방법을 잘 정리해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고민 한 문장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한 편의 글로 완성되었습니다.
글쓰기가 전공이 아닌,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들이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은 쓰고 싶은데 막막한 느낌이 든다면 잠시 멈춰 주변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저의 글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의 메시지로 작가님 마음에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랍니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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