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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실 Jun 01. 2023

세계인지행동치료학회 리뷰 1

만취 당일 즉석 리뷰


주디스 벡 그녀와 기념사진을 찍진 않았다. 그래도 난 이 순간을 기록해 두어야겠다 생각했다. 아까 졸릴 때 퍼런스홀을 나가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아론 벡, 그가 심리학에 한 기여를 생각한다면, 그와 그녀는 대우받아야 한다. 우린 그들에게 빚졌으므로.


고단한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잘 몰랐단 생각이 든다. 오늘 아론 벡의 삶을 듣고 내가 내 패턴을 완전히 바꾸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남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를, 한 인간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고마워 그의  딸까지 사랑한다.


그는 죽기 이틀 전까지 일했다. 그는 열정적이었고, 그가 가졌던 걸 하나씩 잃어갈 때도 남아있는, 할 수 있는 일(것)들을 했다. 그리고 눈이 먼 그는 시리의 도움을 통해서라도 그와 연결된 이들과의 소통을 계속했다. 그는 100살까지 살았다. 100살까지 건강하게 산 게 부러워서라기보다는, 잃어가는 것에 아파하며 사는 것보다는 꽤 나아 보였다 보나 할까.


  중간에 졸림까지 유발할 정도로 잘 정리된, 주디스는 언제나 스타인 스티븐 헤이즈(심리치료계의 락스타라 할 만큼 대단한 인기의 그와 끝내 사진 찍기 실패 ㅠ. 도저히 그 긴 줄에 설 수가 없었다는. 그래도 누덕누덕하다 못해 피비린내 나는 삶에서 살아남아, 부서져있지만 소년처럼 웃을 수 있는 스티븐 헤이즈는 이번 만남에서 더욱 나의 스타가 됨. 그의 난해한 문장을 읽을 때도 이제 짜증이 덜 날 것 같다. 그의 치료법을 더 신뢰하고 응원하게 됨)와는 달리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번역을 담당한, AI는 그러고 보면 인간보다 그런 걸 더 민감하게 캐치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연설 마지막에 아버지 얘기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리고 말년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말할 때, 가장 감정에 치우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에 대한 사랑에 젖으며 슬퍼하고 있었다. 미세한 그녀 목소리에서 그런 슬픔을 감지할 수 있는 나는 타고난 작가인지도 모른다. 혹은 AI스러운? 그리고 알코올은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녀의 슬픔과 사랑을 통해서 보니, 아론 벡이 잘 보였다. 이제까지 알아온 것보다, 그를 사랑하는 그의 딸을 통해 듣고 경험할 때, 매우  생생하게 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다.


아버지를 모호하게 의문스럽게 기억하고 지각하는 나로서는(아빠 좀 미안, 근데 이렇게 해야 극적 효과가 좀 더, 쿨럭), 남의 아버지를 통해 깊은 인상과 교훈을 받는 게 조금 쓸쓸하긴 다. 그게 오늘 술이 유난히 단 이유였을까. 그래도 오늘 맘에 쏙 드는 아름다운 부녀를 만나 행복하다. 참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태어나 사는 보람으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사실 참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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