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NewJeans)의 두 번째 EP 앨범 [겟업]을 중심으로
칠링(chilling)의 시대다. 힐링(healing)은 이제 옛 것이 됐다.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같이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힐링 뮤직이 과거 유행이었다면, 이젠 차갑게 열을 식혀줄 청량감 있는 음악이 대세다. 대표적인 예로 뉴진스 현상이 있다. 웜(warm)보다는 쿨(cool). 힐링보다는 칠링이다.
칠링은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 개념과 맞닿아 있다. 즉 듣기 편안한 음악이다. 이지리스닝의 대표적 장르가 ‘칠 아웃(chill out)’이라는 장르다. 잔잔한 비트에, 몸을 살랑 움직이기만 해도 충분한 그런 음악이다. 일례로 자미로콰이, 다프트펑크, 고릴라즈, 누자베스, 이모젠 힙, 우리나라에는 캐스커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적당한 비트의 휴식을 느끼게 해준다. 해당 뮤지션을 알고 나면 이들의 음악을 통으로 듣게 된다. 칠 아웃 장르의 곡들은 플레이리스트화 되어 (과거에는 컴필레이션 음반) 한데 엮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잔잔하다.
뉴진스는 칠링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어텐션’과 ‘하입보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슈퍼 샤이’, ‘이티에이’, ‘쿨 위드유’ 등 여섯 곡이 수록된 이번 [겟업] 앨범은 한 마디로 ‘칠(chill)’함이 흐른다. 상업성을 위해 케이팝에서 구사하는 온갖 자극적인 요소들로부터 한참 떨어져있다. 강렬한 비트와 고음 위주의 후렴구를 피한 것이 그렇다. 선공개곡인 ‘슈퍼샤이’가 공개됐을 때, 심심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으나, 어느 새 ‘이티에이’보다 앞서 차트 1위를 순항 중이다. 강렬하게 감정을 자극해 ‘꽂히는’ 음악이 아닌, ‘스미는’ 이지리스닝식 접근법이 통한 셈이다.
한 때는 뉴진스 뿐만 아니라 음악계에 전반적으로 이지리스닝이 대세인 이유를 단순히 음악 청취 방식의 변화로만 분석했다. 이를테면 90년대에 길거리 스피커에서 음악을 접하던 방식이 2010년대 말에 에어팟을 통한 청취로 바뀐 것이 그렇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심장을 어택하지 않아도 리스너들의 귀에 가닿기 충분한 시대가 된 것이다. 자극적인 고음은 리스너들에게 피로감만 줄 뿐, 속삭임만으로 충분한 청취 방식 변화가 대세 장르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은 다르다. 사회적인 요인이 크다. 코로나를 거쳐 침체되고 무기력한 상태를 음악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보니, 힐링 같은 위로의 감정조차 버거워졌다. 감정을 뺀 산뜻함이 반갑고, 동시에 스트레스로 경직된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릴렉스 시키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칠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낱개 단위의 음악을 고르는 수고를 들일 여유조차 없다. AI에게 ‘뉴진스 틀어줘’ 한 마디로 분위기를 재생하는, 딱 그 정도의 수고가 적당해졌다.
쿨(cool)함은 짧다. 간결하다. 넘쳐나는 감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러닝타임 5분을 넘겼던 과거의 곡들을 기억해본다. 뉴진스의 이번 신보 ‘겟업’의 수록 곡 여섯 곡 모두 2분 35초를 넘기지 않는다. (슈퍼 샤이 – 2분 35초, ETA – 2분 32초, 쿨 위드 유 – 2분 28초). 하나의 주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발전시키는 클래식함과 정반대로, ‘이건 이런 아이디어의 곡입니다’하며 심플하게 주제만 던지고 끝나버리는 곡. 이런 칠링뮤직의 단순함이 지금 대중에겐 필요한 것이다. 딱 적당한 감정과 길이의 산뜻함. 한 번 뿌리고 휘발되는 향수처럼 딱 그 정도의 리프레쉬가 대중에게 선물처럼 나타났다. 뉴진스다.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