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펜타포트가 남긴 것들. 첫번째 '김창완밴드'. 대체할 제목 없음
폭염. 그리고 칼부림. 2023 펜타를 앞두고 대두됐던 사회적 이슈. 어쩌면 다치거나 아플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고작 축제 따위에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15만 명이 모였다. 모두가 얼음물이 가득 들어 몇 배는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손에는 손풍기를 든 채, 금속탐지기를 지나 흙먼지 땅을 밟았다. 또다시 찾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이었다.
사흘간 뜨거웠다. 양쪽 스테이지를 번질나게 오갔다. 아티스트들이 얼마나 이 무대에 진심인지 알 수 있었고, 동화됐다. 숱한 명곡들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퍼포먼스들이 뇌리를 스쳤다. 자려고 누우면 기타 소리와 드럼 소리가 심장을 쳤다. 하루하루가 축제일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 됐다.
펜타를 겪으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일곱 가지로 추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느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겨우 그 열기를 가슴 속에서 식혀 보내고, 이제야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 무대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작은 김창완 밴드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그 해 펜타포트 마지막 헤드라이너는 김창완밴드였지. 왜 산울림이 아니라 김창완밴드일까. 산울림과 동시대를 살지 않았던 나는 그걸 잘 몰랐어. 아무튼 김창완밴드가 온다니까 심장이 두근거리더라. 산울림이 얼마나 위대한 밴드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고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지. 꼭 그렇진 않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는 훗날 2023년을 추억한다면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며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들려줄 것이다. 홍대 언저리에서 이른바 ‘곱창전골’부류의 LP 바를 다니며 들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간접 체험보다는 역시 직접 체험이다. 8월 6일 일요일 밤 9시 40분부터 11시까지는 한국대중음악 이십 년(산울림 정규앨범 활동 시기인 1977년부터 1997년까지)의 분기점을 시간여행 했다.
이번 김창완밴드의 공연은 모든 곡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사운드 측면에서 가장 놀랐던 곡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였다. 이 곡은 1977년 발매됐다. 들을 땐 최소 80년대 후반 곡인 것처럼 들렸다. 짧고 간결한 가사 전달과 그 멜로디에 응답하는 밴드 사운드의 반복은 세련미 그 자체였다. 단 일곱 개의 음으로 동형반복 하는 베이스와 나른한 기타선율이 여름을 이야기하고는, 간주 때 갑자기 피아노가 등장해 발랄함을 연출한다. 꼭 할 말만 한다. 그러기에 직관적이고 전달력이 높다. 페이드 아웃되며 시크하게 사라지는 이 곡은 지금 들어도 시대를 타지 않는 명곡이다. 이 노래가 70년대 당시 가곡에 가까운 가요들 사이로 불쑥 피어났을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다.
구성면에서 가장 놀란 곡은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이다. 많은 사람이 이 노래하면 다짜고짜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라며 노래부터 부르기에 전주를 제대로 곱씹으며 들어본 적이 없었다. 총 6분 7초나 되는 러닝타임, 3분 30초나 되는 전주 때문에 방송에서도 제대로 듣기 힘든 곡이다. 전주만 듣고는 이 곡이 그 곡인지 몰랐다. 곡의 시작부터 반복되는 ‘Gb-Ab-Ab-Ab-Gb-G-Ab-Cb-Gb-Ab’ 베이스 리프 위에 포효하는 일렉 기타는 그야말로 록 스피릿이다. 이윽고 김창완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첫 소절은 기나긴 서막 끝에 마침내 맞이한 광명이다. 지금 세대에게 산울림은, 아이유의 리메이크로 알려진 <너의 의미>와 응답하라 1988의 <회상>으로 대표되는 통기타 감성이 전부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산울림은 분명 한국 록의 뿌리다. 이 노래는 1978년 발매다.
퍼포먼스 측면에서 가장 놀랐던 곡은 <개구장이>였다. 사실 2008년 김창완밴드의 이름으로 발표된 <제~발 제~발>의 펑키한 사운드와 김창완의 샤우팅이 흘러나올 때부터 공연은 이미 충격 그 자체였는데, 뒤이어 이어진 <우두두다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개구장이>, <가지 마오>까지의 무한 달림의 구간을 대표해 이 곡을 골랐다. 훗날 장기하가 리메이크한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 (1992)의 전주가 뿜어내는 마력처럼 그 비슷한 무언가를 <제~발 제~발> (2008)에서 느꼈다. 처음 김창완 선생님이 무대에서 멘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마치 호그와트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덤블도어 교수가 ‘마법이란 이런 것이다’를 설파하는 느낌이었는데, 덤블도어 교수안에 잠재되어 있던 한 명의 해리포터가 무대 위에서 마법을 뿜어내며 무대를 찢어놓는 듯했다. 그건 마치 아버지의 화려했던 과거를, 아버지의 현 모습으로 마주하는 것 같은 충격과 감동이 있었다.
본론으로 돌아와 <개구장이> 이야기하자면,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린아이가 되어 놀았다. 너무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른이 되어 아이처럼 놀 일은 일상적인 범주에서는 없다. 지겨운 컴포트존을 벗어나, 폭염 속 펜타포트까지는 와줘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같이 놀아요. 뜀을 뛰며 공을 차며 놀아요.’ <개구장이>는 전혀 예상 못 한 폭발력이었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공연 전까지도 가장 기대되며 동시에 예측되는 흥겨움이었다면, <개구장이>는 가사를 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년 시절의 기억과 도킹하여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이었다. 내 안에 어린아이가 산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이 아이가 슬프고 울적해질 때면, 한 번쯤은 김창완 밴드를 만나서 해방 시켜줘야겠다는 생각.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벽이 <개구장이>의 러닝타임인 2분 7초간 허물없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김창완 선생님은 말했다. 록 페스티벌에 오는 것은 청춘의 스탬프를 찍는 일이라고. 이곳에 와 청춘을 위로하고 나를 돌보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그런 청춘을 위해 쓴 곡이라며 부른 <무지개>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올려야 했다. ‘왜 울고 있니 / 너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 왜 웅크리고 있니 /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김창완밴드의 공연은 지금껏 본 공연 중에 가장 가사에 집중하게 되는 공연이었다. 산울림, 김창완밴드 노래 가사들은 마음에 와 꽂혔다. 음악 위에 가사를 얹어 대중과 소통하는 수단인 ‘노래’라는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공연이었다.
이 외에도 <가지마오>의 폭발력 있는 에너지와 <나 어떡해>, <안녕>으로 지속된 엔딩의 여운 같은 것들이 남았다. 일흔의 나이에도 수 만명의 록 덕후를 전율케 하는 김창완밴드에게 나이가 몇인지, 몇 학년인지는 물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제발 내 나이를 묻지 말라는 <중2> 가사처럼 말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절대 현혹되지 말고 우리의 길을 가보자는 과거 김창완 선생님의 인터뷰처럼, 나도 그래보기로 한다.
갈 테야 하고 싶은 대로
할 테야 하고 싶은 대로
멀고 험해도 원하는 세상에
원하는 그곳에 갈 거야
- 김창완밴드, <중2> 가사 중.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