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아직도 추억 중입니다.
그때는 알 수 없었지요. 2008년 우리나라 인디 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쩌면 그냥 시대를 타고 흘러가는 음악이 되진 않을까?’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우린 그저 2000년대 말을 살던 중이었어요.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조휴일이 <좋아해줘>를 외치던 2009년의 여름밤. 88만 원 세대의 자조와 갑자기 튀어나온 당돌한 사랑의 낭만이 깊게 긁고 간 자리. 만약에 그때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다면 난 당장 그들의 공연을 싼값에 한 번이라도 더 보겠어요.
검정치마의 ‘TEEN TROUBLES (2022) 앨범 1번 트랙, <Flying Bobs> 내레이션 부분을 각색했다. 올해 펜타포트에서 마음에 남은 두 공연은, 장기하와 검정치마의 공연이었다. 각각 첫째 날과 이튿날에 진행됐다. 장기하의 공연은 한 마디로 ’단순한 놀이 끝에 찾아오는 선명한 문장들’로 감상평을 남겨봤고, 검정치마는 ’조휴일이라는 아티스트가 지닌 노스탤지어 감성의 파급력’이라고 정리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2008년에 데뷔했다. 같은 시기에 데뷔했지만, 현격히 다른 두 행보를 보여준 아티스트들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됐다.
장기하의 공연을 보러 가는 나의 발걸음은 두 가지 기분을 띠었다. 하나는 ‘반갑겠다.’, 또 하나는 ‘재밌겠다.’였다.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아는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누구에게나 최고의 공연일 테다. 장기하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펜타포트 공연장 내에서는 드물었을 것이다. 그는 상당한 인지도가 있다. 과거 ‘무한도전’부터 시작해 각종 예능과 매체를 통해 대중과 늘 가까이 있었던 그다. 게다가 쉽고 단순한 가사와 대중성 있는 노래들로 인해 관객들이 알만한 노래 또한 많았다. 이번 펜타포트 공연에서 <우리 지금 만나>, <풍문으로 들었소> 떼창은 대단했다. 이 두 곡은 각각 외부 협업으로 만들어진 곡이긴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확실한 히트곡임에는 분명하다. 최근 발매 음원 중 하나인 <부럽지가 않어> (2022)는, 마치 2008년 <싸구려 커피> 장기하의 재림을 보는 듯했다. 현시대를 사는 평범한 인간의 찌질한 내면을 장기하식 화법으로 유쾌하게 풀어내 인기를 끌었다. 이 곡 또한 라이브로 보는 쾌감이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장기하의 공연장을 찾진 않았다. 어쩐지 공연이 주는 감동이나 실로 극강의 재미를 기대하기에는 2%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장기하는 공연의 신이었다.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부터, 마치 공연을 위해 설계된 것 같은 노래들까지. 낱개의 개별적 노래들이 공연장에서 장기하라는 이름으로 묶여 활어처럼 날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별일 없이 산다>부터 <부럽지가 않어>로 통하는 일명 ‘난 괜찮아’ 세계관부터, 비우고 비우다 못해 붕 떠올라 ‘공중 부양’까지 해버린 이번 세계관까지.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해>, <할건지 말건지>가 이에 해당한다.) 뭘 해도 장기하라는 사람의 스타일로 설명돼 그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반면 검정치마는 조금 달랐다. 우선 그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전에 인파에 갇혀 1시간을 기다렸다. 검정치마의 공연이 열릴 무대에서 앞 순서 공연이 끝나자, 검정치마 팬으로 추정되는 인파가 왼쪽 펜스 쪽으로 사람들을 밀치며 들어온 거다. 나가려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높은 밀도를 형성하면서 나도 그 안에 갇혀버렸다. 35도를 웃도는,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폭염의 상황이었다. 물론 관객석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나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가기엔 아깝고, 버티자니 괴로웠다. 결국 숨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1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이유는 오직 조휴일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만큼 보기 힘든 사람이다. 각종 매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장기하와는 달리, 조휴일은 방송은커녕 한 번 쉬면 긴 휴식기를 갖기에, 보기가 힘들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꽤 오래 그의 음악을 잊고 살았다. 작년 발매한 ‘TEEN TROUBLES’ 앨범은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기까지 품이 많이 들어, 마치 나중에 제대로 읽고 싶은 책처럼 일단 넘겨두기까지 했다.
그러던 와중, 펜타포트에서 조휴일을 보게 됐다. 이는 작년 펜타포트 1열에서 리허설하는 우효를 본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는 빨간 아이 메이크업을 하고는,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이 폭염에 수트를 갖춰 입고 첫 곡 <Flying Bobs>의 운을 뗐다. 감성적일 줄만 알았던 그가 생각보다 쿨하고 표정 없는 시크한 모습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의 의외성은 매력이었다. <Put Me On Drugs> (THISRTY, 2019), <Friends in Bed> (TEEN TROUBLES, 2022), <Diamond> (TEAM BABY, 2017) 세 곡을 차례로 연주했다. 감화되었다. 이윽고 이어진 뭄바톤 형식의 <상수역>은 검정치마라는 아티스트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귀를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 <Sunday Girl>은 공연장에서 새롭게 느낀 명곡이었다. 누가 들어도 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마력을 지녔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Hollywood>는 전주부터 탄성을 불러일으켰고,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OST’로 먼저 알려진 <Ling Ling>은 조휴일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그 멜로디가 오래 가슴에 남았다. ‘내 경계 없는 마음엔 대단한 설계가 없어’라는 가사는 조휴일 밖에 못 쓰지 않을까. 낭만의 끝판왕인 <Everything>, 그리고 그의 데뷔앨범인 ‘201’ 앨범의 명곡 <Antifreeze>를 떼창하며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라고 외치는 순간은 예상 못 한 뭉클함이었다. 노을 지는 하늘 아래 검정치마와 그의 음악, 그리고 관객이 고립되어 탈 현실의 시간을 걷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다.
조휴일은 방송 출연을 한다면 여타 가수들 이상의 파급력을 지닐만한 스타다. 그날 몇 번의 멘트와 그의 놀라운 천재적 감수성만으로 그걸 느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방송 출연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다. 지난 15년간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지금의 인지도를 쌓은 장기하와는 다른 부분이다. 검정치마의 노래는 ‘멜로디’가 뛰어나다.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한 번 들으면 연기처럼 피어올라 또 찾게 되는 멜로디다. 통기타로 작곡하는 그의 감수성과도 맞닿아 있다. 장기하는 리듬을 잘 쓰는 뮤지션이다. 멜로디 대신 말의 운율을 살린다. 이번 공연에서도 <가만히~>에서 BPM을 늘렸다가 줄이고, <해>에서는 단절된 타이밍에 분절된 언어로 노래했다. 드러머가 만드는 노래답다고 생각했다. 둘은 정말 다르다.
결정적으로 두 아티스트가 다른 부분은 가사(스토리텔링) 측면에서다. 조휴일은 구체적이다. 작년 발매한 ‘TEEN TROUBLES’만 봐도 그렇다. 이 앨범은 조휴일의 열일곱, 미국에서의 일대기를 담은 곡이다. 앨범을 통째로 듣다 보면 ‘일렉트라’와 ‘존’, ‘브라이언(조휴일 본인)’과 같은 실존 인물들이 캐릭터로 살아 숨 쉰다. 세계관이 대단하다. 그 안에 펼쳐지는 감정선과 이야기들이 시적으로 표현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퍼즐 조각을 맞추게 한다. 이는 16분짜리 단편영화로도 제작되어 공개되었을 정도다. 반면 장기하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말만 남기다 보니 ‘해’라는 글자만 남기는 등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런 문장이나 단어들이 오히려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 문장들은 관객의 뇌리에 남아 삶을 비추어 보게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겪었던 불편감이 장기하의 노래를 부르면서 상쇄된다. 복잡함을 단순화하는 작업에서 오는 어떤 쾌감 같은 것들이 그의 가사에는 존재한다.
이 외에도 다른 점은 사실 많다. 장기하는 한국 사회에 뿌리를 둔 음악이라면, 조휴일은 무국적 음악을 지향한다는 것. 데뷔 시기와 나이만 같지, 닮은 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두 아티스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닮은 점을 꼽자면 2008년, 둘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인디신이 부흥했다는 점. 그리고 자기 세계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함께 거론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티스트를 함께 다룬 콘텐츠가 적은 것은 그만큼 접점이 없기 때문이겠지. 펜타포트라는 헐거운 교집합을 빌어 두 아티스트를 분석해 보았다. 펜타 앓이는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