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견
남편과의 연애는 참 힘들었다. 27살. 요즘 세상에 스물일곱이면 모진 풍파 다 겪고도 남을 나이인데, 남자 보는 눈이 없었는지 눈을 감고 연애를 했는지 수많은 남자 중에 하필이면 남편을 만나 힘겨운 연애를 7년이나 이어갔다. 결혼은 콩깍지로 한다는 사실을 어리석게도 결혼 후 3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됐다. 생활패턴, 사고방식, 식습관마저 달랐던 우리에게 결혼 생활은 어쩌면 毒(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던 연애 포함 지난 15년을 순식간에 이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첫째 아이가 유독 말이 많고 그 수준이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아, 주변에 자문을 구하며 문제가 있지 않은지(예를 들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살피던 차에 알게 된 남편의 틱장애(Tic disorders)는 내가 그를 다른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눈을 만들어줬고, 급기야 남편에게 전문의 상담을 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틱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탓에 남편의 행동 장애를 만성기관지염에 의한 증상으로만 여겼지만, 남편은 자신의 틱장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렇게 유년시절을 지나 청년기를 거쳐, 내 앞에 남편으로 앉아있었다.
“오빠.. 혹시 틱장애 있는 것 같지 않아?”
“어. 있어.”
“알고 있었어?”
“어. 누나가 얘기해 줬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남편의 말에 난 멈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가장 부유층이 많다는 강남 출신에 초, 중, 고를 강남 8 학군 내에서 수료한 남편인데, 그 정도의 의료도 보장받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건 시부모님을 비하하는 말인 듯하여 속으로 삼켰다. 잠시 후, 본인이 멋쩍었는지 한마디 툭 던졌다.
“나 어렸을 땐 틱장애나 그런 의학적 정보가 많지 않았어. 지금이야 검색하면 쉽지만.”
“그럼. 어머님, 지금은 알고 계셔?”
“아니. 모르실걸?”
“틱장애는 그렇다 치고, 내가 오빠 틱장애를 지금 얘기하는 건 오빠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ADHD가 아닐까 싶어. 전문의 상담은 어때? ADHD가 틱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 남자를 자발적으로 병원에서 진료상담을 받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정리하지 못하는 성격, 사회생활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기질과 참지 못하는 울화는 과연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까. 집안 내력이라 어겼던 모든 행동이 ‘내력’이 아니라, ‘유전’ 일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어쩌면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닙니다.”라며 본인 이혼 전에 내게 뜬금없는 문자를 예의 무시하고 던졌던 시매부의 말이 매번 신경 쓰였는데, 고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검색결과는 거친 파도 위에 허우적대던 내게 누군가 던져준 서핑보드였다.
파도 위에 있지만 웃을 수 있는. 마치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