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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Apr 08. 2023

재발했다

내 나이 마흔넷

[사진은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출 이후 접종한 HPV 예방접종카드입니다.]


 작년 9월, 자궁경부에 이상소견을 받은 이후 대학병원 가는 것이 월중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자궁경부 상피내암으로 원추 절제술 후 5개월 만에 한 재발검사의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담당 교수 앞에 앉은 난, 그녀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근심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도 덩달아 조심스러워졌다.     

 

 “결과가 안.. 좋은가요?”

 “재발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우려했던 결과가 나왔네요.”

 “그럼 이번에는 아예 적출해야 하나요?”

 “환자분이 아직 나이가 젊으니 원추 절제술을 한 번 더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다만,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워낙 깊이 절제를 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절제술이 될 수 있고, 또 재발한다면 그땐 적출밖에는 답이 없어요. 일단 수술 일정부터 잡읍시다.”     


 내 나이 마흔넷, 자궁이 여성에게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는 내게 첫 좌절을 안겨주었다. 30여 년간 철저했던 나의 생리 주기는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이었다. 그 자부심이 상실감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생각은 복잡해졌고, 마음은 착잡했다.     


 “적출이 나을까, 원추가 나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적출을 권했다.


 “재발의 속도가 이 정도라면 적출이 나을지도 몰라. 원추 절제술로 100%의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며.”

 “적출은 100%의 완치를 도와주지만,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은 보장해주지 못하지.”

 “.....”     


 2차 원추 절제술로 완치가 안 된다면 적출이 불가피할 것이고, 그렇다면 병가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야 했다. 병가는 무급. 외벌이 가정에서 선택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자궁적출 후유증〉

〈자궁적출 폐경〉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전문의 소견, 환자의 후기, 적출을 앞둔 나와 비슷한 입장의 블로거들. 그들의 경험을 글로 체험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고민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딸. 웬일이야? 일하는 시간 아니야?”

 “오늘 재발검사 결과 나오는 날이라 병원에 가야 해서 연차 쓰고 쉬었어.”     


 내 말에 엄마의 목소리 톤이 달라지셨다.      


 “안 좋구나? 재발했데?”

 “그렇다네. 일단 급히 원추 절제술로 수술 일정 잡았는데 2차 원추 후에도 재발하면 그땐 적출해야 한다고 그러네. 그냥 원추 말고 적출해 버리는 게 좋을까?”

 “... 엄마 생각에는 적출이 나을 것 같은데..”


 엄마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다. 같은 여성으로서 꺼내기 힘든 말이었겠지만 대상이 딸이었기에 암 재발의 차단이 우선이셨겠지. 그리고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과 신체적 변화에 대해 주변 지인분들의 경험담을 열거하셨다.     


 “내가 엄마보다 더 늙어버리면 어쩌지?”     


 생각 없이 튀어나온 농담에 엄마가 참았던 눈물을 흘리셨다. 흐느낌을 꾹꾹 눌러 담는 떨림이 핸드폰으로 전달되면서 나도 덩달아 울었다. 소리 없는 눈물은 가끔 통곡보다 감정 전달이 더 잘 되나 보다. 엄마의 눈물이 위로가 되었는지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결심했어!”     


 어쩌면 이렇게라도 선택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뜻도 될 테니까. 올해의 내 목표 마지막을 썼던 ‘건강하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선택, 재발 방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자.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이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아름다움으로 채워가면 되는 일이다. 그게 중년의 아름다움이라고 위로하면서 내가 엄마로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우리 아이들의 태내 기간을 안정적으로 지켜준 자궁에게 작별을 고한다.

     

사십사 년 동안 나를 지켜줘서 고맙다, 자궁아.


당부드리고 싶은 덧글
HPV 접종은 필수로 하세요. 비용만큼 건강한 미래를 보장해 줄지도 모릅니다. 인유두종바이러스는 남성에게도 걸릴 수 있는 바이러스입니다. 모두 건강한 삶을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세요.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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