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인간 고찰과 병적 우울, 자기혐오와 연민의 점철
오직 순수함만을 갈망하던 여린 심성의 한 젊은이가 인간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인간 실격」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뉴욕 타임스》)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후 일본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민음사」 서평 中
줄거리 |
「너무도 부끄러운 생을 살아왔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출생한 주인공 오바 요조. 그러나 부모와 가족의 무관심과 방치 아래 세상 및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요조는 그들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겉으론 살갑기 짝이 없는, 아무렇지 않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위선적이고 잔혹한 인간의 본성을 특유의 여림과 순수함을 통해 꿰뚫어 본 그는 두려워도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최선을 다해 장난꾸러기이자 익살꾼으로 가장하나 그럴수록 처참해지고 공포에 질리는 스스로를 본다.
그러한 두려움을 견디고 행한 행동들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자 술과 여자는 물론 자살 기도에까지 이르고, 겨우 마음을 잡은 순간에 신과 세상으로부터 배신과 외면을 당하자 마침내는 마약에까지 중독되어 ‘인간 실격자’로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인간 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우울과 불안의 심해로 아주 깊이 잠식되는 기분과 초라한 본성만 남은 처절하기 그지없는 인생이 궁금하다면 읽기를 권유하는 책.
동시에 감히 누군가의 삶을 허망하고 방탕하고 가치 없다 비웃고 삿대질을 할 자격이 있는지, 본인 역시 약간의 결만 다를 뿐 추악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애써 감추고 숨기지만 실질은 요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면서 외면하고 싶어 더 크게 그의 사고와 행위에 도덕적 틀을 끼워 맞추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해보고 싶다면 권유하는 책.
그러나 두꺼운 선(善)의 탈을 쓰고 고고한 척하는 재수 없는 샌님이래도 난 그냥 그런 인간인가 보다. 되려 인간의 본성을 너무 일찌감치 깨달아버려 악랄하고 추레한 인간이라는 생명체로서 군집에 녹아들기를 결국 포기하는 요조가 머리로는 이해되나 심(心)으론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말이다. 지나친 감성과 극단적 사고 흐름으로 본인의 인생을 나락으로 처박는 것도, 자기혐오를 가장한 (순수하고 착해서 그렇다는) 자기 연민과 합리화에 빠져 모든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기 급급한 것도, 그렇게 외면하고 싶던 인간이란 존재의 본성에 누구보다 굴복해 사는 것도 그럴 수도 있다-를 백 번쯤 되뇌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어쩔 수 없더라.
자극과 난해, 퇴폐로 뒤범벅되어 있으며, 주인공보다 어쩌면 더 충격적인 일생을 보낸 작가의 자전소설이라 매우 흥미롭고 알면 알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씁쓸한 사회를 잘 담고 있어 본능과 이상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이 분명한 작품이다. 허나 그만큼 위험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섣부르고 어리석을 수도 있는 판단임은 알지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 베르테르가 일으킨 일종의 신드롬처럼 극도의 민감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요조화가 되는 명분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란 망상이 문득 들었거든.
(본인은 회복 탄력성 하나만은 자부하는, 울적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긍정파라 영향력이 미미했지만 감정 전이에 있어 예민한 사람은 금세 젖어들 만큼 대단히 침체된 정서로만 얼룩진 작품임)
-참고로 나는 이 작품을 보며 매몰차고 공감능력이 결여된 딱딱한 인간이라 치부받아도 주인공인 요조나 그와 동류의 인간 군상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새겼다. 절대 요조가 단순히 예민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한없이 방종하고 야만적이면서도 자기혐오로 본인의 모든 행위에 타당성을 입혀버리는 사상이 싫었기 때문이다.-
자꾸만 책장으로 몸이 이끌리고 여러 번 읽어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맴도는 것을 보니 참 잘 쓰인 고전작임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주변인에게 추천하라고 한다면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