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기록 (1)
*주의 : 본 글에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요소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산부, 노약자 및 심약자의 리딩(reading)을 금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꿈은
3년 전 여름, 2시간여의 낮잠 중에 꾼 꿈으로
본격적인 꿈 기록의 스타트가 되었던 꿈이다.
살면서 꾼 꿈 중 가장 진한 인상을 남겼던 꿈이자,
아주 잔인하고 생생하던 꿈.
꿨던 꿈을 복기해 메모장에 적는 것만으로 다시 식은땀을 자아낸 그 꿈의 기록을 지금 바로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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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기록’ 시리즈는 현장감을 위해 당시에 적은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기는 형식으로 작성됩니다. 글의 진행이 다소 부드럽지 못하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190728
정신을 차려보니 막다른 골목길이었다.
어디선가 몰려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는 대문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 틈에 끼여 덩달아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어쩌다 그 골목길로 가게 됐다.
막다른 골목길에는 사다리도 없고 계단도 없었는데 저 높은 곳에 철창문이 하나 있었다.
원시인처럼 머리를 위로 동여맨, 빼빼 마르고 홀쭉한 모습의 남자가 철창 문을 열더니 씩 웃으며 무언가를 던졌다. 썩은 사람 시체의 한 부위였다. 나는 옴짝달싹을 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그제야 사태 파악을 한 듯 도망을 가는 자와 이상하게도 그런 시체의 곁에 홀린 듯 마치 좀비처럼 입을 헤 벌리고 뛰어드는 자로 나뉘었다. 그 시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한 남자에게 갑자기 올가미 같은 무언가가 날아들었고 남자는 그대로 끌려 올라갔다. 그리고 철창 안에선 날카로운 칼로 무언가를 베는 소리가 났다.
남은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마치 마법에서 깨어난 듯 하나같이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억을 잃었던 것 같다.
깨어보니 나는 좁고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썩은 내가 진동하는 어딘가에 있었다. 두리번거리다 원시인처럼 윗머리를 대충 동여 묶고 빼빼 마른 그 남자가 남자 시체를 보며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아마 남자가 나 역시 올가미 같은 것으로 자신의 아지트에 끌어올린 듯했다.
아직 나는 죽이지 않았다. 곧 죽게 되겠지.
남자가 칼로 시체의 살 한 덩이를 베더니 나에게 권했다.
“먹을래?”
두려움에 덜덜 떨었던 건 분명한데 그러면서도 나는 그 상황에서 이상하리만치 태연했다. 가까스로 거절의 의사를 표하자 남자는 그럼 됐다는 듯이 곧바로 보기만 해도 속이 역해지는 그 고기를 자기의 입 속으로 던져 와구와구 씹었다.
어딘가 퀭해 보이고 모든 삶의 의미를 잃은 듯 눈동자 속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왜인지 시체를 보고 달려들던 그 사람들처럼 제정신이 아니게 보이진 않았다.
남자는 이내 갑자기 시체의 팔 한쪽을 잘라내더니 바깥으로 던졌다. 좀비 떼거리처럼 갑자기 사람들이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아까와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올가미로 사람 한 명이 들어 올려지고 역시 그 사람은 살해되었다, 내 눈앞에서.
남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좁은 공간의 벽면을 잡고 휙 열어젖혔다. 그리곤 절벽처럼 아무것도 없는, 그저 까맣기만 한 공간으로 시체를 던져 넣었다. 나름의 보관고 같은 개념이려나 싶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죽일까 궁금했다. 예전에 언젠가 비슷한 영화를 보면서 상상했던 이런 상황 속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며 오두방정을 떨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는데. 지금의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지도 오두방정을 떨지도 않고 있었다. 혹시 말이라도 걸면 죽일까. 걱정 반, 알 수 없는 묘한 기대감 반으로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왜.. 절 안 죽이나요?”
그러자 남자는 표정 하나 변화 없이 말했다.
“넌 쟤들이랑 다르니까.”
뭔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그가 앞에 놓인 시체를 칼 끝으로 툭 건드리며 한 마디 더 얹어줬다.
“이걸 보고 달려들지 않았잖아.”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물으면 안 될 것만 같아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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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의 썩은 내도, 때때로 시체 냄새를 맡고 몰려와 건져지는 새로운 시체의 풀린 동공에도 익숙해질 즈음이 되도록 나는 아주 오래 거기 있었다.
그는 날 위해 따로 먹을거리를 구해다 주기도 하고, 사람을 벨 때면 내게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기도 했다. 그 나름의 배려였다.
그와 난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원래의 그는 아주 높은 집안의 자제였던 것 같다. 시기하던 다른 형제들 틈에서 겨우 살아남아 도망쳤는데, 어떤 요괴를 닮은 할망구의 제안으로 그녀와 싸움을 하게 됐고 승리의 증표로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와 칼을 얻게 됐다고 했다. 이후 일종의 좀비 바이러스 비스무리한 게 창궐해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괴물이 되었고, 그 지역을 떠나지 못한 그는 괴물이 된 사람들을 얻었던 칼로 죽이며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지금의 나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화에 계속 임했던 걸 보면 아마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할 그런 내용이었을 거다.
그는 내게 떠나라고 했다.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여기 있으면 안 된다며, 아주 멀리 가야만 한다고 그랬다.-그는 내가 그 세계 사람이 아니란 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의 도움으로 나는 괴물들이 그득한 그 세상에서 멀리 도망쳐왔고 그렇게 도망치기 전에 나는 그에게 목걸이를 받았다.-잘은 모르나 둘에겐 연인 그 이상의 감정이 있었지 않을까 싶다.- 왜 함께 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아마 그는 스스로 적어도 반쯤은 그 세계에 이미 오염되었기에 내 곁에 있을 수 없다고 결론 지었을 거란 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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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부분은 온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나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커서 아이들을 잉태하고 낳을 때까지 살아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되었고 쇠약해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온통 내 목걸이를 갖고 싶어 했다. 나만 모르는 그 목걸이의 기능과 효과가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그건 아마 꿈속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는 것 일터. 반쯤 동화된 건 분명히 맞지만 나는 결국 꿈속으로 잠시 놀러 온 존재일 뿐이었다.
기억나는 유일한 부분은 마지막에 내 목걸이를 탐내는 존재들(거기에는 손주들도 있었다)과 내가 열렬히 싸우고 있었단 거다.
내 손자와 싸우던 그 순간에 나는 그만 꿈에서 깨고 말았다. 너무도 궁금했지만 또 너무 생생했던 꿈에 오싹함을 느껴 더 이상 뒷내용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손자와 싸우던 게 목걸이 때문이 맞는 지조차 불확실하다. 목걸이가 애초에 있긴 있었나? 싶은 생각도 어렴풋이 든다. 하지만 그게 꿈의 묘미 아니겠는가. 아무것도 결론 나지 않은 상태 이대로, 나는 괴상하고 오싹했던 한낮의 꿈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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