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스토리 04번째 이야기
* 작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인 <파과>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간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처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늙은 킬러의 회고록과도 같은 이 한 편의 소설은 단순 누아르물이 아니었다. 킬러라는 특수한 직업 이면에 떠오르는 인간 그 자체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충격이 잊힐 때쯤 극장에서 다시 마주한 '파과'는 나에게 또 다른 감정을 주었다. 사라질 것들에 대한 찬사와 아름다움. 그리고 뒤틀린 애정 혹은 사랑. 조각과 투우의 춥고 뜨거웠던 어느 날을 떠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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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파과>에서의 주인공은 이제 은퇴를 앞둔 여성 킬러이다. 애초에 젊지도 않은, 그것도 여성이라는 주체가 등장한다는 점은 여성 관객인 나에게 그럴싸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주인공은 잃을 것도 뭐 하나 지킬 것도 없는 것처럼 늘 무던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지키고 싶은 거 하나쯤은 품고 있었던, 간절했던 누군가이다. 주인공이 킬러가 된 건 단순했다. '살기 위해서'. 단순해 보이지만 이 목표는 뚜렷했다. 살기 위해서 싸움판에 뛰어들며 류의 손에서 길러지게 된 '손톱'의 삶은 '조각'으로 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조각의 삶이 단순히 살기 위해서를 넘어선 결국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건 바로 류였다. 자신을 살려줬던 류의 손에서 함께 킬러로서 활동하면서 류 또한 살리고 싶었던 건 조각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빚져서일 수도 있지만 버려졌던 어린 손톱에게 세상은 그저 차가울 뿐이고, 먹고 잘 수 있도록 인간다운 삶을 제공해 준 건 유일하게 류와 그의 가족이었다. 그런 세상 안에서 바퀴벌레 같이 사회를 좀 먹고 있던 이들은 더욱 차갑게만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처단하는 와중에 그녀가 경험한 류의 가족의 죽음은 충격과 상실의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후의 류의 죽음까지 이어지며 그녀는 두 번째 상실의 경험을 해내고야 만다.
이미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을 한 이후 손톱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어졌다. 누군가를 지킬 이유도 없으며 이제는 더 이상 잃을 이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를 뒤로 한 채 '조각'이 되었다. 하지만 은퇴를 앞두고 죽을 위기에 처한 조각을 살린 강 선생은 그의 모습과 류가 겹쳐 보이며 뒤를 쫓게 된다. 이 사건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거 없었던 킬러로서의 삶이 또다시 뒤바뀐 순간이다. 사람이라면 살리는 게 당연하다는 듯 구는 강 선생과 엮이며 마침내 삶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거두는 과정은 상처가 났지만 여전히 과일에 불과한 파과를 통해서 단단해진다. 싸우는 게 결국 누군가를 지키는 수단이 되면, 이제는 조각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칼은 결국 내부인 투우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알약은 삼킬 줄 아니?
투우는 늘 조각에게 툭툭거리는 게 꼭 애 같기도 하다. 아마 영화의 후반부쯤 가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각을 향한 뒤틀린 애정으로 해석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투우에게 조각은 단순히 눈엣가시의 인물이 아니다. 그 말은 즉 투우는 이 영화에서 악당이 아니었다. 애초에 조각과 투우는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조각은 강 선생이라는 지켜야 하는 인물이 생겼을 뿐이고, 투우는 조직의 안정과 틀을 위해 그에 벗어나는 인물을 룰대로 죽여야 할 뿐이었다. 한 마디로 지킬 게 생겨버린 킬러와, 잃을 것도 없는 킬러가 각자의 목표를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중요한 건 둘 다 상실을 이미 경험했다. 투우는 어린 시절 조각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고 엄마와도 같았던 조각 또한 떠나면서 곁에 있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상실을 경험했다. 결국 누군가의 죽음을 이미 경험한 두 인물이 킬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는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킬러의 목숨은 언제나 위험과 위협 속에서 간신히 붙잡고 있는 줄과도 같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목표를 처단하는 킬러는 정말 빨간 깃발을 보고 돌진하는 소의 투우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조각은 은퇴를 앞둔 지금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그의 삶을 지켜보며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단순히 따뜻한 밥을 먹고 가족과 함께 있는 순간 하나하나가 결국 삶에서 가장 평범하지만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건 킬러인 조각과 투우가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평범했던 삶을 강 선생을 통해 뒤쫓는 조각을 보며 투우는 아마도 자신이 믿고 있던 조각에 대한 동경이 깨지는 순간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투우는 늘 조각을 자극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에게 맴돌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엔 조각을 구해주기도 했다. 아직은 자신이 죽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투우는 이전과 달리 변화하고 있는 조각을 지켜보며, 언젠가 조각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 채 이 자리에서 물러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를 허상일 뿐이라며 조각에게 늘 말하지만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꿈꿨던 건 투우도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
잘 삼키지도 못한 알약을 늘 빻아서 입에 넣어주던 조각의 따뜻함을 투우는 잊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조각과 투우의 마지막 싸움에서 투우가 눈을 감기 직전, 조각은 투우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자신이 알약을 늘 빻아줬던 방역 대상의 아들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조각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믿어왔던 이들이 죽었을 때처럼 또다시 상실을 느낀다. 그러나 투우의 죽음으로 인해 마침내 그 어느 것도 잃거나 지킬 것 없이 온전히 조각 자신이 느껴왔던 것이 결국은 계속 살아가기 위한 것임을 안 순간부터 조각은 떠나간 류에게 말한다. 아직은 떠날 때가 되지 않았다며 말이다. 결국 여러 번의 죽음과 떠나감의 의미는 조각에게 제아무리 초라하고 볼품없고 파과처럼 성한 곳 없이 문드러진 삶이라도 각자에게는 의미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투우의 죽음에 작별 인사하듯 조각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알약은 삼킬 줄 아니?" 무덤덤하게 다가오는 이 대사는 무엇보다 크게 울렸다. 몸도 마음도 커 버린 듯한 투우지만 여전히 조각의 과거를 기억한 채 어렴풋이 추억하고 있던 증오가 조각의 한 마디를 통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조각에게는 그동안 알아보지 못한 투우를 추억하고 달래듯 말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 말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모든 의문과 궁금증을 관통하고 있었다.
삶에 대한 찬사와 끝없는 고뇌.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또다시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조각은 다 상해버린 몸과 떨리는 손, 이제는 세월이 말해주듯 끝이 존재하기에 더 이상 쓸모없이 떠도는 이방인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조각의 삶은 언젠가 떠나갈 상실이기에 또다시 누군가를 지켰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서 우리는 이 영화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이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책의 페이지를 넘길 시간이다. 투우와 조각. 그 사이에 얽힌 수많은 말들과 의미는 곧 <파과>가 보여준 삶에 대한 찬사로서 우리의 마음에 꽂히는 조각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