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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 Dec 07. 2022

외국물인가 마셔보니 이별주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해외 살이었을까?



"해외에서 살 운이 있네."

학생 시절 사주 카페에서 들은 말이다. 관계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즐기는 성격. 해외 살이를 꿈꾸지 않았지만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 운이 실현되는가 싶었다.

올해 초부터 남편은 해외 발령의 바람이 들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극단적인 두 분류로 나누어 설명한다면 온갖 지인들에게 '나 이런 일 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모든 일이 결론지어졌을 때 '나 이거 됐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남편은 전자, 나는 후자다. 해외 발령의 조짐이 보였을 때, 그러니까 3월부터 남편은 온갖 사람들에게 그것을 떠들었다. 남편의 송별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나도 마음이 들떴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도 긍정적이었다.

 직장생활을 15년 정도 하니 어떤 결단력이 필요했다. 이 일이 맞나? 저 일을 해볼까? 지금 일에 대한 불확실성만 갖은 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철없는 과거의 나는 남편의 해외 발령을 결단력으로 사용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남편의 해외 발령은 아이에게도 딱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모국어가 어느 정도 습득된 초2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딱 적합한 시기. 아이가 아직 어려서 친구와 쉽게 친해지고 헤어질 수 있는 시기. 마지막으로 회사 지원의 해외 거주 비용이 해결되니 지금 거주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금액을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냥 기뻤다. 회사를 그만두는데 우리 가족은 여유가 생길 것 같고 한량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그가 떠난 6개월 동안 차근차근 집 정리를 하고 물건을 사들이고 이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이 상황을 조건으로만 보았던 내 생각들을 나무라듯이 모든 것이 어긋났다.






 가려고 했던 국가는 미국이었는데 얼마 전 그 지역 사업이 불투명해졌다. 남편은 미국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헝가리로 계속 이동 중이다.

"12월에는 데리러 올게. 같이 출국 하자.”

큰소리 떵떵 치던 그분은 아직 본인의 행방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사람 탓을 할 수가 없다. 회사일이고 그 사람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마음속 이름 모를 답답함이 불끈 솟아오른다. 제일 갑갑한 것은 화상통화로 소통되지 않는 것이다. 우울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피하는 그는 즐거운 그곳 생활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여기 오면 이거 같이 먹자. 자기랑 오면 먹으려고 내가 맛집 리스트 정리하고 있어"

그 사람을 잘 알기에 답답하지만 받아준다. 저것이 외로움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던 그가 결단을 내렸다.

"몇 개월을 살더라도 같이 살자. 헝가리로 와 “

헝가리가 어디 강원도쯤 어디니? 말도 안 된다고 되받아쳐야 하는 내가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정식 발령이 아니고 원했던 주재원 조건도 아니다. 사비를 탈탈 털어가며 가야 하는데도. 그냥 그가 보고 싶었다. 함께 있어야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밥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울고 다투기도 하고. 예전처럼 일상을 나누고 싶었다.

이런 결정에 주변 사람들, 부모님들의 반대가 있었다. 왔다 갔다 비용도 크고 또 다른 이동의 변수도 있고. 부정적인 이유는 많았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아이의 생활 적응을 걱정해야 하는 부분은 옳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었다.

"저희 부부가 결정한 일이에요. 존중해주세요."

부정적인 피드백에 줄곧 흔들렸던 내가 담담하게 결정을 알렸다. 새끼 가정 같았던 우리 부부가 조금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남아있던 이성의 끈을 잡아 아이가 전학할 수 있는 학교를 알아보았다. 내 딴엔 엄청나게 비싼 학비를 감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원 여유 있는 학교가 안 보인다. 이미 12월이니 당연하지. 그곳은 1월에 학기가 시작되는데. 그래도 밥 안 먹고 미친 듯이 원서를 지원한다. 메일을 보낼 때 혼신의 힘을 다 써서 번역기를 돌린다. 손에 땀이 흥건하게 긴장하며 영어로 줌 미팅도 한다. 찾았다. 우리 이제 셋이 같이 살 수 있다.







 그렇게 다음 주면 우리는 헝가리로 간다. 처음 발권해본 편도행 티켓. 얼마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채로 훌쩍 떠난다. 처음에 좋다고 생각했었던 조건은 하나도 이루어진 게 없다. 낯선 곳에서 만날 많은 문제 해결 거리가 벌써 걱정되기는 하다. 아는 사람 없는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녹록하겠느냐만은 셋이서 똘똘 뭉쳐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정 형편으로 남보다 이른 나이에 일, 결혼, 육아를 하며 인생의 일탈 없이 살아온 남편과 내게 주는 보상이라고도 생각하련다.

 많이 보고 다양하게 먹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 경험으로 한 뼘 더 큰 어른으로 돌아오는 것이 이 여정의 목표다.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지금은 그 두근거림의 감정을 안고 가족 상봉을 기대한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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