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니 May 04. 2023

나의 소중한 헝가리안 친구 일디

외국인친구가 생겼어요.

헝가리에서 현지인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적이 있다. 동네 주민이라던지 학교에서 알게 된 아이친구 엄마라던지 한국사람하고만 어울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건만.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누군가 알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인연은 행운 아닐까?


지금 거주하는 곳은 동양인이 없다. 오직 우리 가족만 동양인이라 열심히 인사했다.

"헬로", "요나뽀뜨" 손도 흔들고 머리도 숙이고 연신 미소를 날려보지만 인사를 받아 주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사람들이 건조하구먼' 속으로 생각한다.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한국사람들 곁에서 나의 소망은 그렇게 접어졌다.




 헝가리에서 헝가리어를 사용하지만 영어도 어느 정도 수월하게 통한다. 통상적으로 웬만한 대화를 영어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도 영어로 대화할 수 있다. 영어를 능숙하게 말하면 생활도 수월해진다. 헝가리에서의 편함을 취하고 싶기도 했지만 영어공부는 오랜 나의 염원이었다. 영어에 대한 한풀이와 공부하는 엄마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그룹수업에 참여했다. 우리 반은 헝가리안 3명, 나를 포함한 아시안 5명으로 이루어졌다.

 

 첫 수업날 긴장하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는데 금발의 사모님이 먼저 수줍게 말을 걸어주셨다.  

"내 이름은 일디야. 너는 이름이 뭐니?"


서로에게 어색한 기본질문을 마친 후 허공을 바라보며 수업을 기다리는데, 일디는 내 이름을 계속 적는다. 입으로 중얼중얼 연습하면서. 한국어 발음이 어려울 텐데 외워서 불러주려 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래서 나도 다음 학생이 올 때마다 이름을 함께 물어보고 공책에 받아 적었다.


 영어학원에서는 입 다물고 있을 수 없다. 배운 내용을 입으로 표현하고 생각과 경험 역시 파트너와 대화한다. 선생님의 적극적인 자리교체 수업방식 덕분에 늘 한 파트너를 고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만나게 되는 파트너는 있기 마련인데 내 경우에는 일디가 그랬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가게 되었다. 일디는 회계사였고 남편과 같이 회사를 두 곳이나 운영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영어학원에서 꾸준히 공부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다. 고양이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휴일엔 발라톤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그녀. 틀에 박힌 회화연습 덕분에 새로 만난 한국엄마들보다 일디의 생각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선생님의 공격적인 수업스타일에 우리는 늘 긴장한다. 문제를 풀고 돌아가면서 답을 이야기하는데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파트너끼리 서로 토론해서 답을 알아가야 했다. 그 짧은 영어로 토론 하는데 처음엔 엉망진창이지만 결국 답을 찾아간다. 영어로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지만,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이해하게 되는 우리가 신기하다. 어느 날은 선생님을 불러야 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났다. "Henny? Does he name?" 이런 말도 안 되는 영어 메모도 우리는 이해한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추억을 만들어갔다.




  수업 시작하기 전 메일을 확인했다. 헝가리에서 처음 주문한 인터넷쇼핑의 배달이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지금 올 것이라는 메세지었다. 이상이 있으면 전화를 해달라는 메모와 함께. 헝가리의 인터넷 주문 시스템은 우리의 것과 다른 점이 종종 있다. 결제방법에서 사이트에 선결제해도 되고 배송 시 배달원을 만나서 결제해도 되고 정해진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도 된다. 결제의 차이겠지만 모두 배달원과 주문자가 만나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배달원이 언제 배송할 것인지를 알 수 없다. 이런 경우는 집에서 막연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주문 후에 알았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인터넷주문을 꺼려한다는 것도.

 

 꼭 그 상품을 배송받고 싶었던 나는 막 교실에 들어온 일디에게 다짜고짜 메일을 들이대며 보여줬다. 일디는 허겁지겁 수업시간에 맞춰 오느라 당황했는데 한참을 보더니 내용을 이해했다. 쉬는 시간에 통화를 해주겠다고. "오 예!"

일디 덕분에 택배기사님을 만날 수 있는 약속시간을 다시 정했다. 한국사람들이 말하길 보통 이런 경우는 반송되거나 우체국으로 다시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일디에게 굉장히 고마웠고 연거푸 감사함을 짧은 영어로 전달했다.


일디가 나에게 답한다.

 " You're my best friend in my class"




 학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콧노래와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1) 드디어 인터넷주문을 성공해서 받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2) 영어학원을 다니는 내가 뿌듯하고 영어를 선택해서 배우니 즐겁다.

3)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맛집의 맛있는 빵을 먹었더니 포만감에 행복하다.

기분 좋음에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일디가 내게 해준 저 한마디가 가장 큰 역할이었다.


어쩌면 그녀와 내가 수업 후에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을 일은 희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도움청할 수 있는 현지인이 한 명 생겼다는 든든함이 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친구는 넓게 좁게 깊게 얕게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을것이라는 배움도 얻었다. 일디 덕분에 헝가리생활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감사해요 나의 소중한 헝가리안 친구 일디 ♡




사진출처 :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덕질은 자연스럽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