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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 Aug 06. 2024

어머니와 막내딸(3)

아버지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무도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밭으로 가려고 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밭에서 오시면 밥 하기 힘드시니까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밥을 하려고 하니 항아리에 물이 없었다. 물이 있어도 손에 닿지가 않았다.  항아리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 엄마가 오시면 언제 물을 긷고 밥을 하실까 생각이 나서 밥 하기 전에 물을 먼저 길어 오기로 했다. (시골에는 따로 물항아리를 정해 놓고 땅에  묻어 두거나  놓고 식수로 사용을 했다. ) 

 물지게를  짊어지고 물동이를 양쪽 고리에 걸어서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려 물동이에 채워 담았다. 물동이에 반도 안되게 담아서 집으로 짊어지고 와 항아리에 부었다. 

 9살 어린 나이에 두레박으로 가득 채워 퍼 올릴 수도 없었고 물동이에 가득 채워서 짊어지고 올 수도 없었다. 그렇게 채우고 온다는 것은 나한테는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날랐는지 물 항아리가 가득 찰 때까지 길어 날랐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조금만 더 하면 차겠지 조금만 더 하다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때서 밥을 하려고 하니 어머니 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셨다. 어머니께는 설명을 드리고 났는데 아버지는 화를 버럭 내시면서  "밥을 먼저 해야지" 하면서 소리치셨다. 아버지께 처음 꾸중을 듣는 날이었다. 부모님들은 아침에 나가실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점심 드시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일을 하시고 들어 오셨는데 얼마나 시장하셨을까  화가 나실 만도 하다고 생각은 들었다. 그랬어도 나도 놀면서 밥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물을 길어다 놓고 밥 하려고 했었는데 아버지가 내 맘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 속이 상해서 대문을 꽝 닫고 나왔다. 어머니가 급하게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불을 때고 밥이 다 돼서 부를 때까지 나는 밖에서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고집이 센 것은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들한테 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그 흔한 놈, 년, 새끼 같은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으셨다. 

 

  먼 훗날 궁금해서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왜 우리들한테 그런 말을 한 번도 안 했어? 그랬더니 어머니가 그러셨다.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도 못해서 속상한데 그런 말을 왜 하냐고 또 그렇게 말을 안 듣지도 않고 들을 일도 하지 않고 형제들끼리 싸우지도 않고 그냥 다 잘 지냈으니까 욕 할 일이 없었다".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너무 좋아하셔서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사다가 잘 드셨다. 매일 드시고 싶어도 형편이 안 되어서 못 드셨을 것이다. 우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외상으로 막걸리 심부름 하는 것이었다. 친구네가 하는 가게여서 나는  더 가기가 싫었다. 돈을 갖고 가면 좋았지만 외상으로 갈 때면 입은 댓 발 나오고 팔과 다리는 있는 대로 내 저으며 투덜거렸다. 오빠와 언니 나 셋은  한 번씩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 주전자를 내동댕이 쳤었다. 그리고 술 심부름을 시키면 가기 싫어서 모퉁이에 한 참을 서성이다가 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 보다도 더 오래 걸려서 올 때면 아버지는 그것도 잘 아시고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한 마디 하실 때는 가슴이 털컥 내려 않았다. 혹시라도 꾀 피우면서 온 것을 눈치 채신 건 아닐까 마음을 졸였다. 아버지가 막걸리를 드실 때에 나는 옆에 앉아한 마디씩 했었다. '아버지 막걸리 맛있어? 좋아?  그럼 한 모금만 조금만 남겨주세요'. 턱 밑에서 심부름하기 싫어서 투덜거렸던 것도 잊고서 아버지가 다 드시지 않을까 남겨 주실까 걱정과 반 기대 반으로 막걸리 잔과 손만 쳐다보았다. 그러면 아버지도 다 드시기 부족한 술을 먹어 보라고  막걸리 잔에 조금씩 남겨 주셨다. 그렇게 맛본 막걸리 술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아직도 아버지가 주신 막걸리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또 추운 겨울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는 안방에서 나를 반겨 주셨다. 두 손을 내밀어 '춥지' 하면서 내 손을 잡고 호호 불면서 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를 물러나시면서 이곳이 더 따뜻하니 손을 녹이라고 하셨다. 어린 딸을 위해서 비워 놓은  아랫목 아버지의 엉덩이로 데워 놓은 아버지의 자리는 정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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