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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공 Sep 01. 2020

[서평] 손원평 <아몬드>

관계를 통해 세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해 괴물로 여겨지던 아이 윤재. 어린 시절 사랑의 결핍으로 폭력적인 괴물이 된 곤이. 각기 다른 의미로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두 아이는 모두 괴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괴물과 괴물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세상으로 향하는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두 아이의 뜨거운 관계 맺기를 다룬 소설. <아몬드>이다.

      

손원평, <아몬드>, 창비


  편도체가 작아 선천적으로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열여섯 번째 생일날 할멈과 어머니를 잃는다. 괴한의 칼부림으로. 눈앞에서 사건을 목격한 윤재는 그러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사건 이후 윤재 앞에 나타난 사람이 곤이이다.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후 쭉 고아로 지내온 아이. 사랑받지 못한 과거 때문일까.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정을 소유했지만, 폭력적인 모습을 견지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 주는 편을 택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지극히 비정상의 축에 속한 둘은 외면당하고 배제당한다. 하지만 모두의 외면 속에서 윤재와 곤이는 비정상끼리의 관계 맺기에 돌입한다.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 메말라 보이는 윤재도, 가학적인 행태로 인해 파괴적인 괴물로 여겨지던 곤이도 은연중에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윤재는 엄마와 할멈에게 발생한 사건을 곤이를 통해 이해하려 하고, 곤이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기 위해 분투한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동반하는 것이다. 윤재와 곤이가 서로를 알아가는 우여곡절의 과정은, 오직 사람을 통해서만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데 반드시 타인과의 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은 각박해져 가는 사회에서 인간에게 그나마 희망적인 대목이라 하겠다. 사람의 연결과 연결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니까.

     

  손원평 작가님은 영화연출을 전공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장면과 장면이 굉장히 촘촘하게 나뉘어 있다. 마치 영화의 장면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데 한몫하는 것도, 바로 이 촘촘한 분절이다. 읽기에 속도감을 붙여준다.      


  남들에게 배타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이 익숙해지는 불신과 혐오의 시대다. 잠깐이라도 우리의 따뜻한 성정으로 회귀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책, <아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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