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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공 Nov 13. 2020

[서평] 하하키기 호세이 <해협>

일본인이 쓴 강제 징용 이야기.

 <해협>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일본 작가 하하키기 호세이의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1992년에 출판됐고,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에 번역서로 출간되었다. 세상에 나온 지 꽤 시간이 흐른 소설이다. 일본에서 출판된 이후 3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소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되어 일본 탄광에서 혹사당한 한국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하키기 호세이, 해협, 나남 출판사


 소설은 살면서 3번,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대한해협을 건너는 하시근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시근은 열일곱 살에 병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징용에 끌려간다. 미성년의 나이에 끌려간 그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탄광 작업 중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와 고문으로, 함께 온 동포들은 눈앞에서 죽어간다. 징용된 한국 노동자에게 식사라고 할 수 없는 끼니를 제공하면서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강요한 당시의 일본. 작가는 높은 담장 안에 조선인을 가둬두고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일삼은 군국주의 일제의 만행을 드러낸다.

     

 소설은 단지 일본인의 악독한 횡포만을 고발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인과 붙어먹은 조선 사람도 존재한다. 자신의 한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슴없이 동포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이들. 물론 이들은 해방 후 동포를 배반했다는 이유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들의 몰락을 바라보며 하시근이 느꼈던 안타까움,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고을에서 안온한 소시민의 삶을 살았을 이들을 악의 축으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와 사업가로 성공한 하시근은 말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숱한 조선 동포가 매장된 탄광의 역사를 지워버리려는 야마모토와 맞서기 위해서다. 한때 탄광을 관리 감독했던 야마모토는 N시의 시장이 되어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독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지워버리려 한다. 잊히는 역사와 억울하게 죽어간 동지를 기리기 위한 하시근의 여정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튼튼한 짜임새로 펼쳐진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게 느껴지는 사안이다. 모든 정치·역사적 이해관계를 막론하고, 사실을 토대로 일본이 진정 어린 배상과 사과를 한다면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법도 하다. 나아가 현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행된 폭력과 비인간적 행태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를 구하는 모습이 진정한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이 해마다 홀로코스트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듯이. 하지만 일본 정치인의 셈법에서 그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인가보다.

      

 정치인의 음흉한 계산속에서 벗어난 소설 <해협>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강제 징용 피해자의 이야기가 일본인 작가에 의해 써졌다는 것이다. 작가 하하키기 호세이는 광기에 미쳤던 일본의 행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존재하는 어두운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국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려는 작가의 관점이 매력적이다. 특히, 일본 내에 역사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바른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을 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작가는 재일교포의 경험담과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바다 건너 타국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참담하고 끔찍한 세월을 견뎠는지 알 수 있는, 숙연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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