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평 심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공 Jan 05. 2021

[서평]알베르 카뮈 "페스트"

집단적 재앙과 개인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현상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설령 그것이 행복한 경험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지금의 팬데믹 국면에서 전염병을 소재로 쓰인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서점 곳곳에 진열된 것을 보면 그렇다. 물론 나 또한, 세계적 전염병인 코로나의 영향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일인으로서 ‘페스트’를 집어 들게 되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

 ‘페스트’라는 제목은 직관적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전염병 창궐로 사회와 개인에게 닥친 불행과 그 불행의 극복을 그려낸 흥미 위주의 소설이라고 예상했다. 재앙과 재앙의 극복이라는 서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그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우리의 궁금증은 배가 된다. 하지만 이처럼 흥미를 중심에 둔 가벼운 접근법은 내가 ‘고전’의 범주에 속하는 소설을 읽을 때 흔히 범하는 실수인데, 고백하자면 페스트를 읽으면서 독해에 난항을 겪었다. 직관적인 제목과는 반대로,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소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해안 도시 오랑에 어느 날 페스트가 창궐하고 도시는 폐쇄된다. 폐쇄된 도시 안에서 의사 리유, 의문의 사나이 타루, 신문 기자 랑베르, 시청 서기 그랑, 그랑의 이웃 코타르, 그리고 신부 파늘루를 중심으로 집단적 재앙에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서사는 비교적 명료하지만, 작품 안에서 각각의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이 의미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폐쇄된 도시에서 하나의 인물은 개인적인 사연을 배경으로 저마다 다른 행태를 보인다. 다양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상이한 행태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모습을 “집단적 재앙과 그 재앙이 초래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커다란 물음의 답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의사인 ‘리유’와 의문의 사나이 ‘타루’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리유’의 경우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면서 페스트의 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그는 재앙 속에서 개인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서술하며, 폐쇄된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상세히 묘사한다. 더불어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가져오는 시련에 맞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페스트로 인해 폐쇄된 도시에는 크게 두 가지의 불행이 존재한다. 하나는 페스트라는 전염병 자체가 가져오는 공포, 즉 죽음에 대한 공포다. 다른 하나는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도시 폐쇄 조치로 인해 공간적으로 고립되는 데서 오는 불행이다. 고립에서 오는 불행 중 작가가 구체적으로 주목한 것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가족 혹은 애인과 떨어지는 데서 오는 이별의 감정이다.

      

 그렇다면 페스트가 불러온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이별’의 슬픔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는 현재 우리가 코로나에 맞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도 연관되는 물음이다. 의사 리유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극복의 힘이라고 믿는다. 일상을 지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리유는 성실성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페스트에 맞서고자 한다. 그리고 리유 옆에는 뜻을 함께하는 의문의 사나이 ‘타루’가 함께 한다. 

    

 페스트가 불러온 불행 속에서 성실함을 잃지 않고 사람들과 협력해 나가는 ‘리유’와 ‘타루’의 모습은 재앙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 속에는 페스트가 안겨준 불행에 의연함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취재 차 오랑 시에 들렀다가 예기치 못한 페스트의 확산으로 갇혀버린 기자 랑베르의 경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졌다는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는 “나는 이 도시와 무관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폐쇄된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물색한다. 신부 파늘루는, 유신론적 입장을 유지하며, 재앙 또한 신의 사랑이라고 설파하며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다. 한편, 코타르는 불행 속에서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인물로 등장한다. 페스트 특수를 누리는 그는 다 함께 불행해졌다는 것에 안도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유형의 인물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페스트를 외면하거나, 재앙에 굴복했던 사람들이 점차 의사 ‘리유’와 의문의 사나이 ‘타루’를 중심으로 연대해 나간다는 점이다. 이는 불행 앞에서 굴복이나 외면은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며 ‘협력’을 통한 ‘저항’이 삶의 진리라는 작가의 의중이 드러나는 전개인 것 같다.

     

 소설 ‘페스트’를 간략하게 본다면 전염병의 창궐과 그 극복과정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 재난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박진감과 긴장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감히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보다 소설을 깊게 읽기 위해서는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흔들리는 과정과, 그 인물들의 가치판단이 변모하는 양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좋은 독서가 될 것 같다. 사건과 사건을 통해 인물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를 잘 따라가면 재난 소설이 가져다주는 박진감과 긴장 그 이상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