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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양세계 Feb 01. 2023

나의 소울푸드, 돼지국밥

“만약 오늘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으로 뭘 먹고 싶어?”

이 질문의 답은 자신에게 익숙한 음식이나 아예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으로 나뉘는 것 같다. 익숙한 음식을 선택한 사람 중에는 자기가 직접 토마토를 넣어 만든 카레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집밥이라고 얘기한 친구도 있었다. 아직 못 먹어본 음식을 선택한 사람은 5성급 호텔의 뷔페를 가겠다고 했다. 만약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단연코 돼지국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돼지국밥은 소울푸드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향이 생각나는 음식,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뜨면 벌써 집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 드는 음식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여러 장면에 돼지국밥이 함께 하고 있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다 같이 아빠의 단골 돼지국밥집에서 식사했다. 그 가게는 국밥에 밥까지 다 말아져서 나오는 것이 특징으로 빨리 후루룩 먹을 수 있어서 기사님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매주 일요일 점심에는 국물이 담백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가게에서 가족들과 함께 돼지국밥을 먹었다. 서울에 사는 지금도 부산을 방문한 주말이면 가족들과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고향 친구와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연스럽게 동네 시장에 있는 돼지국밥집으로 갔다. 오래된 친구와는 사실 무엇을 먹더라도 편안한 느낌이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기 전, 혼자 식당에 들어가 돼지국밥을 먹으며 울적한 마음을 달랜 적도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항상 함께 먹었던 음식에는 홀로 선 불안한 영혼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경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구들과 서울에 있는 돼지국밥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부산인의 자부심을 가지고서 서울 친구들에게 돼지국밥 먹는 법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아뿔싸! 돼지국밥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새우젓이 하필 그 식당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새우젓이 들어가지 않은 돼지국밥의 맛은 내가 기억하는 맛과는 영 달랐고 어딘가 밍밍한 느낌이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국밥 부심이 있는 부산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돼지국밥을 먹는 방법에는 MBTI만큼이나 다양한 조합이 있다는 것을! 밥을 말아 먹거나 따로 먹는 타입, 양념을 많이 넣는 타입과 새우젓만 넣는 타입, 부추를 많이 넣는 타입, 깍두기랑 먹는 타입, 김치랑 먹는 타입, 소면을 넣거나 빼는 타입, 돼지고기만 넣는 타입과 내장만 넣는 타입, 혹은 나처럼 반반 섞어 먹는 타입…등등 돼지국밥은 국밥을 제외한 부재료가 따로 나온다. 각자 취향에 맞게 부재료를 넣어 다양한 조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이미 완성된 채로 나오는 국밥과는 다른 돼지국밥만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이다. 자신의 돼지국밥을 만드는 그 진지한 순간만큼은 누구나 셰프가 된다.

참고로 나의 레시피를 공개하자면 나는 부추를 국물이 안보일 정도로 가득 넣는 것을 좋아한다. 양념을 많이 넣으면 국물의 맛을 해칠 수 있으니 최소한으로 넣고 새우젓은 국물의 감칠맛을 살려주니 조금이라도 꼭 넣어야 한다. 밥의 반은 국물에 말고 나머지는 공기에 두고 국물을 적셔 먹으면 짬짜면 같이 두 가지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소면이 나오는 집이라면 꼭 넣고 양념이 쎈 김치보다는 시원하면서 약간 시큼한 깍두기랑 먹으면 방해받지 않고 국물의 깊은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엄마가 고향의 단골식당에서 테이크 아웃한 돼지국밥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무려 일박 이일 동안 꽤나 멀리서 고생하며 올라온 돼지국밥을 먹어보니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얼마나 맛있더지 "그래 이 맛이야!"하고 감탄하며 이마를 짚으며 먹었다. 엄마한테 돼지국밥이 너무 맛있어서 울면서 먹고 있다고, 저녁에 뭐 드시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엄마 역시 같은 가게에서 포장해 온 돼지국밥을 저녁으로 드신다고 했다. 맛있게 드시라는 나의 문자에 네가 옆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먹을게, 라는 답장이 왔다. 엄마의 문자를 보니 왠지 울컥했다. 멀리 있어도 우리를 이어주는 끈, 떨어져 있더라도 같은 음식을 먹으면 그게 식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맛,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내 영혼에 10%쯤은 지분이 있는, 나를 먹여 살린 돼지국밥. 그 따뜻한 국물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얗고 뽀얗게 우러나온 국물에 빨간 양념을 푼다. 푹 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빨개진 눈으로 따뜻한 국물을 떠먹는다.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새우젓은 꼭 넣어야 한다. 그것이 돼지국밥의 포인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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