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의 놀이기구와 점심 식사
영세한 사무실이었지만, 나는 여행사라는 내 직장을 좋아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사랑했고,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도 강했다. 심지어 평소에는 어린애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행사로 만났던 아이들은 모두 좋아했다. 얼마 안 되는 근무 경력이었으나 일 잘한다고 칭찬도 받아서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웠었다. 안타깝게도 사장님이 갑자기 귀농을 결정하는 바람에 회사 문을 닫아야 했지만, 그래서 더 좋은 기억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테마 여행사라는 특성에 걸맞게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는 거래처의 특성에 맞는 테마를 잡았는데, 주로 농어촌 체험과 관광이 주를 이뤘다. 바닷가에서 갯벌 체험을 하거나 오징어 잡기 체험을 하기도 했고, 농촌 마을에서 압화 공예 체험을 하거나 오디 수확 체험을 하기도 했다. 지금에야 체험 행사들이 다양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는 아직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기업에서 선정한 고객들만 대상으로 하니 관광버스 1~2대의 인원으로 여행하기 좋은 데다가 하나의 기업을 통해 모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반나절 만에 너도나도 한 식구가 되어 있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 중 하나는, 모 기업에서 어촌 어린이들을 수도권으로 초대해서 여러 문화체험을 한 것이었다. 나고 자란 작은 마을이 세상 전부일 어린아이들이 보호자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낯선 도시를 만나는 행사였다. 낯선 곳이라고 아이들이 마냥 순하게만 굴지만은 않아서, 장난이 심하거나 개별 행동을 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숙박을 하면서 며칠 지내다 보니 끈끈한 정도 느끼고 나름의 서열 정리도 된 덕분에 별일 없이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행사에 온 고객과 유대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 점은 특히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를 패키지로 방문했을 때 빛을 발휘했다.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 행사는 몇 개의 팀으로 나뉘어서 움직였다. 나는 이전부터 에버랜드를 좋아했기에 지도를 거의 외운 상태였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단시간 내에 많은 놀이기구를 탈 수 있을까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린 팀원들과 딜(deal)을 했다. 개별 행동 없이 대장인 나를 잘 따라온다면 에버랜드의 대표 놀이기구를 시간 내에 다 타게 해 주겠다고. 그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캐리비안베이 팀과 교체를 할 2시간여가 있었고, 심지어 그 시간 안에 점심까지 먹고 에버랜드에서 캐리비안베이로 넘어가야 했다.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나는 회사 대표로 “대장”을 맡고 있었고, 가이드를 겸하고 있었다. 대장 가이드의 책임으로 전체 팀을 통솔하고 내 팀도 운영해야 했는데, 가장 말썽꾸러기들을 내 팀으로 몰았다. 그중 하나는 하도 개별 행동을 해서 내가 손을 꼭 붙들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2시간 동안 놀이기구 11가지와 점심시간까지 해결한다? 다른 가이드들은 그게 가능하냐고 반신반의했지만, 나의 자랑스러운 팀원들과 나의 이해가 일치한 덕분에 결국엔 해내고 말았다. 여름이라 적지 않은 인파를 헤치며 2시간 만에 11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을 먹고 간식까지 해치웠다! 내 머릿속 지도와 팀원들의 체력, 해내겠다는 의지와 팀원들 간의 협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아이들은 더욱 나를 믿고 따랐고 내가 손을 잡고 다녀야 했던 팀원 하나도 결국엔 마음 놓고 손을 놓아 줄 수 있었다.
나의 고객이자 팀원인 아이들은 이후 캐리비안베이에서 물놀이를 할 때도 규칙을 잘 따라주었다. 물에 못 들어가는 나는 밖에서 전체 상황을 보고 있었고 다른 가이드들이 물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라면 나도 물 안에 있어야 할 인력이었기에 반드시 한 군데는 취약한 방향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팀원끼리 서로 돌보는 것으로 해결했다. 서로서로 잘 돌봐주고 가이드 선생님 말씀을 잘 따라라. 이것이 나의 규칙이었고, 이미 나와 유대감이 형성된 우리 팀원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면서 물놀이를 즐겼다.
나는 이제 그것이 라포르(rapport)가 잘 형성되었기에 나온 결과라는 것을 안다. 재미있게도 이 “라포르 형성” 기법은 세월을 돌고 돌아 지금도 내가 강의할 때 사용하고 있다. 강사가 강의할 때 꼭 해야 하는 필수 요소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에서도 필수는 아니래도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일상을 벗어난 해방감을 누린 후에 다시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여행을 인솔하는 담당자는 여행자들과의 라포를 형성해야 한다. 인솔자와 여행자 사이뿐만 아니라 여행자와 여행자 사이에도 라포르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가이드 일을 할 때 나와 같은 차에 탑승하는 여행자들을 모두 “내 식구”라고 불렀다. “내 식구”들끼리도 그날 하루는 서로가 식구라고 여기게 하려고, 일부러 다른 차 승객과 경쟁을 시키기도 했다. 대부분 “내 식구”들은 별 탈 없이 즐거운 여행을 마감할 수 있었다.
내 고객을 식구처럼 여기는 나의 습관은 거래처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거래처는 내가 몸담았던 여행사가 문을 닫을 즈음에도 내가 운영하라며 행사를 맡겨주시기도 했다. 규모도 적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행사를 끝으로 나는 다른 여행사로 이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직한 여행사에서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팀이 아니라서 곧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아무래도 뭔가를 기획하고 경영하는 쪽이 더 흥미로운 것 같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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