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생이 서바이벌이다.
나는 비교적 늦은, 삼십 대 나이에 가방핸드백 디자이너가 되었다. 늦은 시작은 밤잠을 줄여가며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였고, 열정과 도전, 그리고 서바이벌 정신까지 플러스했다. 1~2년 차 때는 개인지도를 해 주신 선생님께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거래처마다 돌아다니면서 노하우를 배웠다. 틈틈이 구독한 잡지를 정독하기도 하고 해외 사이트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파워 블로거들 중에서 패션 쪽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주시하던 중, 가끔 얻어걸리는 파워 블러거가 웬만한 패션 에디터보다 우수한 때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여러 노하우를 추가로 배울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배워야 할 것은 많았는데 그중에서 내가 잘 배웠다고 생각한 것은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예전엔 손 그림으로 디자인을 도식화하고 작업지시서도 만들었다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디자인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한 여러 툴을 활용해서 그리고, 작업지시서도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등으로 작성했다. 다행히 삼성맨 시절에 회사에서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배워서 쭉 사용하고 있던 터라 작업지시서나 디자인 제안서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웹디자이너로 일할 때 포토샵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는 거의 다시 배워야 했다.
지금은 밤잠 쪼개가며 툴박스의 기능들을 익힐 때가 꿈속의 일 같지만, 당시에는 목숨 걸고 만들어야 하는 강력한 무기였다. 머릿속의 그림을 빠르고 정확히 컴퓨터로 그려내야 했으니 말이다. 또, 개발실과 일하면서 깔끔한 선과 알아보기 쉬운 서류의 필요성을 느껴 엑셀은 물론 파워포인트까지 활용해서 몇 개의 서식을 만들어 두었다. 처음 시작 때는 일이 매우 더뎠지만, 몇 가지의 서식과 툴박스의 원활한 활용은 빠른 일 처리라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손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꼭 필요한 필사기지만, 컴퓨터 화면으로 옮길 수 있는 기술도 반드시 익혀두어야 했다. 다양한 컬러나 소재를 렌더링해서 여러 경우의 수를 빠른 시간 내에 작업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두의 경우는 특정 프로그램에서 디자인을 쉽게 하고 렌더링을 자동으로 해 주기도 한다던데, 가방핸드백은 구두와 달리 크기와 모양이 천차만별이라 디자인을 쉽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만들기가 어렵다고 한다. 10여 년 전, 구두 디자인을 게임처럼 할 수 있는 앱을 발견하고 내가 개발자에게 직접 문의해서 얻는 답변이니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만큼 가방핸드백은 그 디자인 영역이 매우 다채롭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방핸드백을 디자인화로 그릴 때 매번 맨땅에 헤딩해야 하느냐 하면 그건 또 나름의 편법이 있었다.
기존의 레이아웃이나 디테일 등을 복사해 와서 변형시키는 방법이 있고, 시간이 될 때마다 적용하고 싶은 디테일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즉, 얇은 종이를 대고 원하는 그림을 따라 그리듯이 일러스트레이터로 선 따기를 하고 그것을 변형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최신 트렌드의 디자인과 소재들을 숙지하고 있었야 했다. 특히 시장에 나와 있는 장식들의 디테일이나 사이즈, 그리고 개발 가능 여부는 생산 진행 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업체들이 많으므로 매번 시장에 나가기 어렵다면 인터넷만 잘 활용해도 일이 수월해졌다.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 두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때로는 이 노하우가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금전이나 시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발로 뛰거나 손가락이 무지하게 바쁘거나, 위장과 간이 많이 혹사당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시장을 비롯한 기타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은 모두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은 그 끝을 볼 때까지 스크롤이나 키워드를 멈추지 않았고, 노하우를 전수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겐 술과 밥과 커피 등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이 중에서 특히 사람을 만날 때가 어려웠는데, 예상치 못한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서 무조건 나를 도와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선을 슬쩍 넘으려는 이도 생겨난다는 것이다. 내가 기준을 세우고 잘 조절하지 않으면 남녀 간의 성희롱이나 말도 안 되는 스캔들로 발전하거나 커미션 의혹을 받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난 운이 좋아서 해당한 적이 없지만 몇몇 얼굴 붉히는 사례는 씁쓸하게 접할 수 있었다.
사람과의 사이에서 내가 좀 나이가 들었구나 싶을 때가 있었는데, 가끔 목격하게 되는 어린 디자이너들의 갑질 행세를 볼 때였다. 디자이너가 업계 피라미드에서 비교적 위쪽에 있는데, 그것은 프로세스상이지 직업의 귀천 때문이 아니다. 물론 프로젝트 회사 차원에서는 본사의 디자이너가 슈퍼 갑이긴 했다. 그 디자이너가 거래업체 선정에 큰 역할을 한다면 더욱 파워가 세졌다. 하지만 그들이 20~30년 숙련된 기술을 가진 개발자들에 비해서 더 훌륭하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어질 것이다. 누가 더 잘났다고 하기 이전에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야 협업이 잘 이루어질 것인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여 디자이너와 개발자 간의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오히려 선배 디자이너 중에는 옛날에 핏대 높여 싸워 온 역사를 자랑스레 여기면서 개발자를 낮춰 보는 경향이 왕왕 있었다. 나는 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주장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에 비례한 만큼 상대방의 언어도 잘 이해하고 존중해 주어야 협업이 잘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개발자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어떤지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봤더니 더 나은 개발 제품이 나왔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가방핸드백 디자이너로 일한 몇 년 동안 내 주변엔 디자이너가 직접 자신의 디자인을 샘플링하는 경우가 많이 없었다. 직접 가방을 만들어 보고 어디에 어떤 장식이 들어가야 좋을지, 대량생산 시에 많은 시간이 걸릴 만한 곳은 어느 부분인지를 알아 두면 좋을 텐데, 대부분은 샘플사라는 직업의 기술자가 이 일을 했다. 샘플사의 일을 뺏겠다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보지도 않고 머릿속으로만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그만큼 많았다. 나도 샘플사에게 일을 맡겼다. 다만, 나는 직접 가방핸드백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샘플사에게 노하우도 슬쩍슬쩍 알아 두었기에, 적어도 손바느질과 재봉틀의 차이를 알기는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이 당연한 걸 모르고 샘플사와 싸웠던 것이 내 상사였다. 또, 그 사람만 유일했던 것도 아니었다.
최근엔 공방 사업자가 늘면서 디자이너가 곧 기술자가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전에는 브랜드 소속의 디자이너들은 직접 가방을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내에 샘플 개발실이 별도로 있거나 프로젝트 회사에 도식화를 넘기면 알아서 작업지시서와 샘플링을 해 주기 때문이다. 아웃 소싱으로 일을 던져버리면 사무실 내에 장비가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원해도 무언가를 직접하기는 힘든 환경이긴 하다. 원부자재조차도 샘플만 사무실로 들이고 샘플링 자재를 아예 개발실로 운반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물론 이런 추세라서 나도 별도의 사무실 없이 1인 기업으로 창업할 수 있었지만, 디자이너가 직접 샘플링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내가 가방을 만들 줄 알고 뜯어 고칠 줄 알아야 가방의 해부학이 잘 이해되고 기술자들과의 협업이 더 잘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특히 패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입체적인 가방핸드백 디자인이 바로바로 나오기가 매우 힘들다. 이것은 내가 몇 년을 고생해 가며 배운 나의 철학이다.
내가 처음 이 길로 들어섰을 때보다 지금 이 길로 들어서는 후배들은 길이 훨씬 다양해졌다. 우선 한국어로 된 가방 만들기 실용서가 몇 권 나와 있고, 가방핸드백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이나 공방이 늘었다. 신설동 시장이나 동대문 종합시장에서도 낱개 단위의 원부자재 구매가 가능해졌다. 취업이나 창업의 기회도 많아졌다. 지금 시작하는 어린 후배들의 앞길은 어둡지만은 않을 테니 운이 좋다. 다만 1~2년 차에는 어느 일을 하더라도 그렇겠지만 앞길이 어두워 보일 수는 있다. 특히 샘플 가죽을 어깨 메고 한 손에는 장식과 다른 부자재를 들고 옆구리에는 샘플 작업지시서를 끼고 외부 저 멀리 외딴곳의 샘플실을 찾아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게다가 날씨까지 궂은데 택시도 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라를 잃은 것보다 서글픈 눈물이 밀려올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울어봤기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 했다. 내가 서바이벌 3년을 겪고 나니 숨을 좀 돌리는 느낌이 들었고 5~6년 차가 되니까 전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늦게 시작한 문외한이 이 정도라면 평소 패션에 관심 있는 빨리 시작하는 후배들이라면 시간을 더욱 단축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