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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Apr 23. 2024

[일본 소도시 여행] 상흔과 천수각 - 히로시마 성

작지만, 많은 역사가 남아있는 -

  히로시마는 최초의 원폭투하 도시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로시마가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역사적 배경들이 모두 희석되어 가는 아쉬움이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지난번 원폭돔을 방문한 이후, 그곳에서 히로시마 성을 향해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도심 속의 해자, 그리고 전통적인 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예쁜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같은 경우에도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이질적인 매력이 있지요. 현대화된 도심 속의 고궁의 모습은 참 언제 보아도 이쁜 것 같습니다. 위치는 히로시마 버스센터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로,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저 멀리 보이는 천수각의 모습. 빼꼼하고 튀어나온 모습이 나름 매력적이네요. 오사카성 천수각보다는 매우 작지만, 나름대로 분명한 존재감과 함께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진 예쁜 성 중에 하나입니다. 해자를 따라서 조성된 공원자체도 조용하지만 깨끗하고, 고요한 일본 특유의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성은, 그 옛날 임진왜란에도 참전했던 장수인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의 거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5번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였으나, 다른 장수들과는 달리 큰 전공을 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당장 우리들에게 유명한 고니시 유키나가, 혹은 가토 기요마사와는 달리, 아마 마사노리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의 초상화. 매우 걸걸한 성격의 소유자인 무인이었고, 그래서인지 칠본창 멤버들 중에서도 리더 격인 위치에 있었다고 합니다. 술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거점이었던 키요스 성을 하사 받았고, 이후 서 군과 동군으로 나뉘어 벌인 대규모 전투인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도쿠가와의 동군에 합류하여 큰 공훈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상으로 히로시마 50여 만석의 봉지를 하사 받게 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의 모습을 그린 기록화. 도쿠가와의 동군(東軍)과 토요토미의 서군(西軍)으로 나뉜 이 전투는, 향후 일본의 일인자를 가리는 대전투였습니다. 

  이후 그는 히로시마 시내를 정비하고 길을 새로 놓는 등의 정치를 펼쳤으나, 태풍으로 인해 히로시마성이 파손되었을 때 막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성을 보수하게 되었고, 이런 사실이 막부의 눈밖에 나면서 결국 카와나카지마의 4만여 석의 자그마한 성으로 쫓겨나다시피 하고, 그곳에서 사망하고 맙니다. 사실 이미 막부의 입장에서는 마사노리의 친 토요토미 성향을 싫어했기도 하구요. 


  이후 히로시마는 아사노 가문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시대를 건너뛰어.. 히로시마성은 현대까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가, 모두가 아시는 그 사건.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원자폭탄 투하 이후 완전히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진 히로시마성 천수각의 잔해. 폭심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데다 목조건물이라는 한계로 인해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전쟁이 끝난 뒤, 히로시마 성의 복원을 위한 움직임이 일었고,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히로시마 성은 나름 현대식의 공법으로 재탄생되어 복원됩니다. 오사카성이나 오카야마 성처럼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올드한 맛(?)이 있는 성입니다. 

  히로시마 성의 남단에 위치한 문입니다. 해자로 둘러싸인 곳에서 유일하게 다리를 통해 건너갈 수 있는 곳입니다. 문 위의 저 누각 공간에는 입장이 가능하니, 오셨다면 꼭 한 번쯤 방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름대로 목조건축의 방식을 지키면서 복원 중이라고 하니까요!

  성으로 들어온 뒤, 천수각으로 향하는 길. 이렇게 내부에 한 번 더 해자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흙으로 만들어진 통로를 이용하여 본성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시기 전, 또 한 번의 구경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원폭투하에서도 살아남은 버드나무가 그것입니다.

원폭의 영향으로 붉은 잎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그날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는 버드나무의 모습. 폭심지로부터 불과 740m 떨어졌음에도 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 

  사실, 원폭돔과 마찬가지로 히로시마 성 또한 폭심지로부터 1km 반경 안에 위치해 있어서, 대다수의 건물들과 식/생물들이 파괴되고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버드나무는 살아남았는데, 아직도 그날의 흔적인 붉은 잎을 가지고 살아있습니다. 전쟁의 책임은 물론 전적으로 일본 제국에게 100% 있습니다. 다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원자폭탄이 주는 공포는, 저 또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매우 무겁게,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버드나무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저 멀리에 이렇게 히로시마 성 천수각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번 오사카성에 갔었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다행히 날씨가 좋았습니다. 어떤 성이던지 간에, 천수각을 보는 날엔 다 이렇게 날씨가 좋으니 나름대로 운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히로시마 성은 이렇게 원목의 느낌이 나는 외장을 택하고 있어서였는지, 특유의 목조건물 느낌이 더욱 많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은 거무튀튀했지만, 너무 현대식 느낌의 합판을 사용한 오카야마 성보다는 더 전통적인 천수각의 느낌이 나서 좋았습니다. 물론, 오카야마 성은 그 앞의 아사히 강의 전경이 깡패긴 하지만요 :)

  대다수 관광객 분들이 천수각 앞에만 가보시고, 내부는 잘 안 가시더라구요. 하지만 역덕후인 저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도 역사.. 그래도 사랑하시죠?(뜬금) 한번 찬찬히 들어가서 구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옛날 히로시마 성에서 사용되었던 처마장식이라고 합니다. 호랑이의 얼굴에,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고 꼬리를 하늘 높게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처마장식은 천수각의 처마 양끝을 장식하는 녀석들인데, 샤치호코(鯱, しゃちほこ)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불이 나면 입에서 물을 뿜어 불을 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목조건물이 대다수였던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알아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당시 다이묘들은 새벽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고된 일정이었는데, 그 시작은 대부분 불이 나지는 않았는지 순찰을 하는 것이었다고 하니, 불조심은 특히 옛날부터 강조되어 오는 일인가 싶습니다.

  또한 이렇게 일본식 갑주도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가 직접 입었던 갑주...라고 하길래 찍었는데, 찍고 나서 보니까 옛날 일본 사극에서 모토나리 역의 배우가 입었던 방송용 소품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나름 재현의 수준은 좋아서, 사진에 담은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조총(鳥銃)으로 잘 알려진, 철포(鐵砲)의 모습도 이렇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철포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뎃뽀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무대뽀의 어원이 되었다는 "썰"도 있습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철포부대가 다케마의 기마부대를 물리쳤는데, 이를 두고 "철포도 없이 전쟁에 나가는 멍청한 행동"이라는 뜻에서 무뎃뽀라고 했다나 뭐라나. 

  이렇게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히로시마 성의 캐릭터인 고양이가 반겨주고 있습니다. 히로시마 성에 어서 오라는데, 일본은 참 이런 캐릭터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 박물관 등지의 굿즈가 매우 화려하고 멋지게 나오고 있다는데, 좋은 변화라고 봅니다. 역사 굿즈가 다양해져야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중간에 이렇게 실제 일본도의 무게게를 느껴볼 수 있는 체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라서 그런지 의외로 조금은 무거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손에 착 감기긴 했지만, 칼이 주는 그 서늘함 감각은 조금 저릿했습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층 한층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전망대를 향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사카성, 오카야마성과는 달리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꼼짝없이(?) 이렇게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야 하니, 혹시라도 거동이 힘드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히로시마 시내의 모습. 오카야마성과는 다르게 확 트인 시내전경이 마음에 듭니다. 다만 오사카성보다는 약간 높이가 낮아서 멀리까지 조망하기에는 조금 힘들었네요. 그래도 도심에서의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는 정말 마음에 드는 전망이었습니다. 


  이렇게, 히로시마 성을 다녀와봤습니다. 

이제는 다시 걸어서, 히로시마 시내로 나가보려고 합니다. 숙소는 오카야마에 있기 때문에, 신칸센에서 에키벤을 먹으면서 이동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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