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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i cho Jul 04. 2023

책을 읽다. 취향이 같다. 그게 전부다.

미도리같은 여자가 되고싶었나보다. 


주말은 어째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걸까요. 


아쉬운 마음에 메모장에 들락거리다가 글을 짧게 써보려고 아이패드를 열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조금은 사적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저의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는것이 익숙하지 않기때문에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는것도 매우 실례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스무살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어요. 제가 술을 조금 많이 마시고 저와 당시 친했던 3명의 친구들에게 내방 기숙사 침대에 양말을 신고 올라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웬만해선 앉지 않아줬으면 좋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어요.


저는 그닥 깔끔쟁이이거나 결벽증같은 강박증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정리정돈을 하고 청결함을 유지하죠. 아무래도 그때 당시 저의 까칠함은 개인주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개인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칠함이 한순간 무너지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22살때였나 캐리어에 옷가지를 넣어서 가출을 했어요. 사춘기소녀도 아니고 우습지만,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의사표현이였죠. 친구들의 집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저한테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였어요. 


누군가에게 큰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자지못하고 비가오던날 우산도 없이 친구에게 말도 못하고 캐리어를 끌고 나와 놀이터벤치에 앉아서 울던것이 아직도 사진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있어요.


저는 1박에 2만원 정도하는 외국인이 머무는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에 4일정도를 머무렀는데 그때의 아늑함과 안정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이후로 저의 극도의 까칠함이 조금 사라졌습니다. 제 공간을 내어줄 여유도 없고, 살부비는 것도 그저 어색하고 싫었는데 그 사건이후로 달라졌습니다.






그사건 전에도 이후에도 저의 공간을 내어준 친구들이 몇 있었습니다. 저에겐 큰맘 먹은 행동이였고 지금와서 생색내는 것이지만 각별했기에 공간과 취향과 내가 아끼는 장소들을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냐고요?


제 곁에 남지는 않았죠.


원망한적없고 지금도 원망하지 않아요. 그저 전보다 더 내것을 내어주는 것이 어려워졌을 뿐이죠.







저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어요. 마음이 심란할때면 그 책을 곁에 두고 잘만큼 그책의 의미가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무슨 얘기를 하고싶은지 알지 못했던 나이부터 어렴풋하게 알게된 나이를 지나 

<하루키의 청춘> 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지금에 오기까지 그책에 대해 아는척하는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책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엇 이사람 운명인가" 라고 느껴질만큼의 유대감을 만들어줬죠.


아는척 하는 사람들에게 몇번 데이고 나서, 하루키를 알아도 모른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억지로 공통점이라도 엮으려는듯 아는척하는 사람들의 허풍이 듣기 싫었어요.





그러다 어느날 저에게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냐고 묻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종종 읽죠" 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선 생각에 잠겨 느릿하게 젓가락을 옮기는데


"왜 하루키가 좋아요?" 라고 되묻더군요. 

제가 운명이라고 느끼던 사람들에게 주로 하던 질문이였습니다.


"허무맹랑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이라서요.

근데 그 소설이 제일 추악하게 현실적이지 않나." 


그사람은 씩 웃더니 "저도 그래서 좋아요" 라고 대답하더군요.




'또 아는척하는 운명좋아하는 청년 납셨군, 그운명놀이에 내가 놀아날거같냐' 라고 생각하면서

조소하던 제가 마치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추운 겨울날 택시타는것을 마다하고 포장마차에서 거하게 소주를 마시고 3정거장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면서 나누던 이야기들.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10년뒤를 꿈꾸는사람이 되고싶다고 마음먹었을때 .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내적인 고통에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나를 앞질러가는 그의 뒷모습이 안쓰러워서 주머니 속의 손을 꼭잡아주는 것 밖에 해줄 수 없었던 마음아픈 시간들


그것들이 전부 운명놀이는 아니였다는 것을, 사랑이였기에 함께 하고싶었다는 것을 





그사람 역시 저의곁에 남아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전처럼 상처받기싫어 내것을 내어주지 않는 마음속 어린아이는 그사람에게 충분히 사랑받았기에

제 마음에 늘 남아있겠죠.




그리고 조금의 욕심을 부린다면 저또한 누군가에 그와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나의 일부를 떼어주고 싶은 마음

그로써 성숙해지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와 마주보며 함께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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