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가 읽는 이유
자기 계발은 언뜻 개인적인 주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철학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광범위한 주제입니다. 결정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닌, 누구에게나 삶은 스스로 만들어갈 잠재력이 있고 스스로 하는 일이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는 세상에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 계발의 사회적 의미가 있습니다.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고 하면 그 사회는 가르치는 것, 조언하는 일, 발전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도 변화를 통해서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 세상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고요. 자기 계발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합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책, 영상, 강의인데 주의할 것은 지나치게 콘텐츠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마음이 움직일 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 준 것이 무엇이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이 자기 계발의 동기를 부여하고 방법까지 알려줬다면 실천을 통해 책과 현실의 간격을 좁혀 나가야 합니다. 우선 마음을 움직여줄 책을 찾아봅시다.
『자기 계발 수업』 디플롯, 2022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 그것에 일조하고 자신을 꿈꾸며 자신을 다지는 자기 계발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는 지나친 경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 학창 시절부터 터득해 온 터라서 자기 계발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순수한 의도의 자기 계발이 아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지다 보니 자기 계발에 관한 수많은 책도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극단적입니다. 저자의 대표작인 이 책은 인류의 2500년 역사 내내 이어진 자기 계발의 주제를 열 가지로 압축해 다룬 조금은 독특한 책입니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정언명령인 “너 자신을 알라”부터 각종 철학 작품, 종교 텍스트, 의학 논문, 지혜 문학, 고대 신화, 대중심리학, MBTI, 〈겨울왕국〉 속 ‘엘사’의 영웅 서사까지 동서고금의 역사·문화적 맥락을 넘나들며 인류가 성공적으로 진화해 온 방식, 즉 ‘자신을 계발해 온 역사’를 보여줍니다. 자기 계발이라는 화두가 결국 인류의 목적과 본질,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 역사를 공부하고 시대정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됩니다. 지난 문화와 지금의 문화를 이해하고 왜 지금 반향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혜안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계발 서적의 최고점에 올려놓아도 괜찮을 법한 책입니다.
『고통의 비밀』 상상스퀘어, 2022
통증은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힘겹게 싸우고 있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치통과 잇몸의 통증, 안면 통증 환자를 우리는 매일 진료하고 있습니다. 통증이라면 지긋지긋해서 생각도 하기 싫지만, 통증 치료를 하고 조절해야 하는 입장에서 다시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할 내용의 책입니다. 조절하기 힘들고 알 수 없는 통증은 환자가 만들어내고 있는 통증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그 생각에 손을 들어주는 내용이 많습니다.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다”라는 말은 통증에 대한 절대적 진실이지만 조직 손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대부분 통증은 우리의 의식적 통제 밖에 있는 뇌가,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의식적 마음에 알리기 위해 내리는 결정입니다. 즉, 통증은 뇌에서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뇌가 통증을 ‘만든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믿음과 기대로 통증이라는 경험을 조작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기 때문인데, 우리가 잘 아는 플라세보 또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뇌가 상황을 고려해 내리는 판단의 산물이 통증입니다. 저자인 라이먼 박사는 특히 만성 통증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하는데, 통증에 대한 특정 원인을 찾기보다 개인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함께 고려할 때 만성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메리카에 어서 오세요』 문학동네, 2022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 중에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해 읽은 책이 너무 재미있을 때의 희열이 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작은 진주 하나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나이가 들어 노동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인구 조절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권장하는 세상이 온다면? 인간의 정신을 데이터로 전환하여 육체 없이 컴퓨터 서버상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면?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대신 범죄의 형량에 따라 기억 일부를, 혹은 전부를 삭제하는 형벌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후기 자본주의, 애국주의, 빈부격차, 인구 증가, 이민자 문제 등 현대사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들을 공상과학적인 설정을 통해 기발하고 재치 있게 풀어낸 매슈 베이커의 이 소설집이 그렇습니다. 뭔가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난무하지만, 그 내용이 저급하지 않고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고 풍자하되 냉소하지 않는 저자의 글솜씨 때문입니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정말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점점 더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 삐걱거리는 세계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각각의 사람들을 이해와 연민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아메리카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일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