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끌 Apr 02. 2023

혼자있기

친구가 선물로 심리학 책을 보내주었다. 책 선물을 우편으로 받아보다니 새로운 경험이다.

 

심리학 책을 오랜만에 읽는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처음엔 하나도 내 이야기 같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이야기 같기도 하니 신기하다. 점 보러 갈 때 역술가가 용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다 내 이야기 같아서라고 들었다.

"겉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예민한 편이네."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아뇨, 저 둔한 편인데요",라고 대답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렇게 나온다.

"저거 봐, 저렇게 자기가 예민한 줄도 모른다니까. 둔한 사람이 여기 왜 왔어?"
그러면 갑자기 각성이 되면서 '아, 내가 예민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는 둔하면서 어느 땐 예민한 사람이고, 내성적이면서도 어느 땐 외향적인 사람이고, 외향적이면서도 어느 땐 내성적인 사람이니 점사가 다 내 이야기 같은 거다. 심리학 책에 나오는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내 이야기 같지 않은데, 또 조금은 내 이야기 같기도 한 거다.


보내준 책은 뇌과학자이자 심리학자가 쓴 책이라 넘겨짚는 느낌은 아니라서 마저 다 읽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자존감이 낮지만 외부에선 그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사는,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는 상담자'였다. 이 부분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혼자 있는 걸 더 선호하니까. 나는 모임에 나가면 늦은 시간이 되기 전에 집에 가는 사람이다. 분위기를 살피다 일찍 도망가는 유형. 2차는 분기별로 한 번 정도 따라 가는데 대개 후회한다. 사람들이 술 취해서 각자 시끄럽게 떠들어대면 머리가 아파 오기 때문. 소수인원 2차는 괜찮다. 3차는 항상 끔찍했다. 내 경험 상 사람들이 만취해서 하는 이야기 90%는 어딘가 허전하고 무의미한 말들이다. 만취해서 서로의 얼굴을 비벼대며 '형님,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내가 너 아끼는 거 알지?' 이런 말들 주고받는 아저씨들이 싫다. 내가 아는데 그들은 평소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술 핑계로 하는 접대일 뿐. 그래도 이런 대화는 괜찮다. 술자리에서 갑자기 날 선 대화가 오갈 때 정신 멀쩡한 나만 안절부절못하는 상황. 맥락도 없이 누군가 갑자기 화를 내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그 옆에서 누군가 넘어지고 토하고 소리 지를 때면 그곳은 내게 세미지옥이 된다.

'도대체 사람들이 술을 빌어 무슨 짓을 하는 건가?'

그러니 사회생활이고 뭐고 나는 그냥 내 갈 길을 간다. 집에 일찍 들어갈 거다. 이런 내게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는 사람은 와닿지 않는다.


'걷기'와 '혼자 있기'는 내 정신 건강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걷기에 대해선 일전에 쓴 적이 있다. 혼자 있기가 왜 중요할까. 난 혼자 있을 때 마음에 근육이 생긴다. 내향성이 강한 사람은 생각 정리할 시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생활이 뒤죽박죽 되고 우울해진다. 그러니 나는 혼자 걷거나 혼자 글을 쓰며 무엇이 엉켜있는지를 파악하고, 내 마음이 어떤지를 짐작하려 애쓴다.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마 자신이 혼자 있는 모습을 스스로 못 견뎌서일 것 같다. 혼자 있는 버릇을 가져야 함께 있을 때 더 즐겁다. 혼자서 성장한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혼자서 있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는 대개 시간 가는 대로 그냥 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겪어도 그냥 산다. 내 마음이 어떤지를 살피지 못하고 말이다. 저 위에 사례로 든 성격은 내 이야기다. 실제로 역술가가 내게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좀 둔하면서도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을 남들보다 늦게 알아차린다. 남들이 내 상황에 안타까워하는데 정작 나는 무덤덤할 때가 많다. 너 왜 울지도 않아?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몇 년 후에 혼자 4만 보쯤 걸었던 날이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때 10년 전 그 일까지 떠올랐다. 뒤늦게 눈물이 흘렀다. 일찍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걸. 나처럼 마음 움직임에 둔한 사람은 걸으며 뇌를 써야 하고, 오롯이 혼자서 내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길게 가져야 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혼자있기'를 즐기진 못하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 늘 sns를 하고 있으니. sns는 '옆에서 술 취해 떠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시끄럽다. 다양한 이슈가 쏟아지니까 머리가 아프다. 거기에 내가 한 마디 의견을 얹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지니 머릿속이 시끌벅적하다. 그러니 나도 사실 오롯이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냥 혼자있기가 아니라 '오롯이 혼자있기'인데 말이다. 어제는 3시간만 휴대폰 끄고 살자! 고 결심했는데 그걸 못 지켰다. 나도 책에 나온 불안장애 사례자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래서 내 친구는 책을 보내주었나?


다시 내일부터 '오롯이 혼자있기'다. 사람들도 물론 지처럼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만날 거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일 때도, 혼자 있지 않은 시간일 때도 가장 최적화하는 연습을 할 거다.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제대로 즐기는 연습,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기는 연습. 다 괜찮아질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 사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