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of Kims Apr 26. 2022

이민 1세들이 꼰대가 되어 가는 과정

90년대 중반 "1.5"라는 제목의 MBC 드라마가 있었다. 1.5는 이민 1.5세를 가리키는데, 한국에서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민 가정의 애환을 그린, 당대의 청춘스타 손지창이 출연했던 작품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줄거리는 딱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92년 4월 LA에서 일어났던 슬픈 사건을 그린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90년대 초중반 이민 1.5세가 된 나는 이 드라마의 가족이 거쳐간 에피소드들에 철저히 감정 이입되어서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이고 돌려보며 나름 동병상련을 느꼈었다.


한 가정의 이민 1세와 1.5세는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모국어"를 쓰면서 이민 생활의 시행착오와 적응기를 동시대에 경험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민 1세는 이민이 스스로의 능동적 선택이었던 반면, 1.5세는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따라온 것이다. 물론 1.5세 또한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선택으로 새로운 이민 1세대가 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아무튼 얘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약간의 전제와 일반화가 필요하다. 여기서 이민 1세대라 함은 90년대부터 코로나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영어권, 서유럽, 동남아, 남미 등지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재벌 등 해외 체류의 동기부터가 다른 슈퍼 리치는 제외한다.


이들 이민 1세의 상당수가 영주권 또는 시민권 취득 후 정착을 나름대로 완료한 시점에서의 모습을 냉정하게 프로파일링 하면 다음과 같다. [솔직함 주의]


한인 종교 단체에 소속돼 있다. 대부분은 단순히 소속감을 갖기 위한 목적이지만 드물게 선교 또는 포교에 열심이더라도 그 대상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직업은 갖고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한국에서의 경력과 별반 관련이 없다. 사업을 하는 경우 한국인, 교민 상대 업종이다.

한국에서의 경력을 타임캡슐처럼 간직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꺼내 보인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배경이 비슷한 이민 1세들이어서 일상생활에서 현지어를 구사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보험, 세무, 부동산 매매 등 생활 전반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업무를 처리할 때 공식 경로를 통하지 않고 편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굳이 이민 1세 지인을 이용하면서 손해를 봐도 구제받을 길이 막막하지만 쉬쉬한다. 애초부터 그들 끼리도 믿지 않지만 다른 방법을 모른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총생산에 기여하는 경제 활동과 납세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지인들끼리 복지, 수당, 세금 관련 혜택을 최대한으로 누리는 꼼수들을 두루 공유, 학습, 실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민이 스스로의 결정이었음을 부정하며 사실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민 생활이 오래될수록 한국으로의 역이민에 관심이 커져 간다. 그러나 현지에서 받는 또는 받을 연금이 아쉽고, 떠나온 땅에서 잘 살고 있는 친지, 친구들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해 역이민을 실행에 옮길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행히 1년 내내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골프로 위안을 삼는다.

자신들은 후대를 위해 희생하고 물줄기를 바꾸었을 뿐, 주류 사회에 편입하려는 노력은 스스로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이민 이후로는 딱히 솟아나지 않고 있다.

언어는 둘째 치고라도 정서적으로 정착했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는다. "현지에서 한 달 살아보기"의 마음가짐과 생활 패턴으로 몇 (십)년째 거주 중이다.

중년 이후 이민 온 경우 이민 동기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자녀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서 과감히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녀의 한국어 교육을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챙기지 않고 방치한다.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성장하는 자녀에게 철저히 유교적 사고를 주입하고 고집한다. 동방이 아닌 곳에서 동방예의지국을 찾는다. 자신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두 기둥은 복지 제도와 자녀라고 믿고 있다.

운전, 주유, 장보기 외에 집 밖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배우자나 자녀가 동행해야 가능하다.

의료 제도에 항상 불만이다. 그래서 입소문으로 알게 된 한의원을 종종 이용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한국 정치에 더 관심이 많고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조국", "애국자", 국뽕을 입에 달고 산다. 현지인을 "외국인"이라 부른다. 한편,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집권당이 어디인지, 몇 년 단위로 선거가 치러지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좁디좁은 이민 1세 서클 안에서 온갖 동문회, 향우회, 선교회 등을 만들어 그들만의 작은 한국을 구현하고 그 안에서 편 가르기로 티격태격한다.

인종 차별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일상에서 돈을 써야 할 곳에 그리고 써야 할 때 쓰지 않는 극강의 절약정신을 견지하지만, 정작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 팔랑귀 기질과 과감함을 발휘해 큰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호소, 신고, 법적 대응에 놀라울 정도로 소극적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커피라 함은 동서 커피믹스 밖에 알지 못한다.

현지의 날씨가 추워서, 더워서, 습해서, 애매하게 으스스해서, 햇빛이 따가워서 늘 불만이다.


이를 한 마디로 종합하면 "이민 꼰대"다. 가슴이 먹먹해 온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이민 1세대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이민 사회에 팽배한 꼰대 현상에 관한 생각을 조금 더 풀어 보겠다.


이유를 분석하기 전에 먼저 이민 꼰대라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미스터리한 현실인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은 사실 반도가 아니라 애초부터 지리적, 언어적, 인종적으로 외딴섬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출퇴근하기도 하는 유럽의 일상은 꿈도 꿀 수 없고, 같은 모국어를 수 십 개 나라가 공유하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권이 가진 언어상의 자유, 편리함, 그들이 누리는 태생적 유리함을 생각하면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이민을 생각한다?


이직을 할 때 업종, 회사, 직무, 이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바꾸는 결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해외 취업이 미리 성사되어서 하는 이주가 아니라면, 한국을 떠나는 이민이라는 것은 개인의 경력, 생업, 언어, 노후 대책,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아니, 포기하는 모험이며 누가 봐도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다. 이민 가야겠다는 마음의 시작이 뭐였 건 간에 그걸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엄청난 고민, 다짐, 각오, 결심, 또는 절실함이 있었을 테다.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 상인들이 가졌던 진취성, 추진력, 모험심, 야망, 호연지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 용기와 에너지가 뿜뿜했기에 가능했던 결정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야심 차게 비행기에 올랐던 이민 1세대들의 상당수가 불과 수년 후 꼰대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크나큰 미스터리이자 패러독스인 것이다. 대체 왜 그럴까? 무엇이 그들을 모험가에서 좀스러운 변방인으로 전락하게 하는 걸까? 그 주된 이유로 "사회적 단절"과 "경력의 단절"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아직까지도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서, 아니, 넘기를 거부하면서 생긴 사회적 단절이다. 출국 날짜가 미리 정해진 여행이나 출장으로 온 게 아닌데도 이민 생활에서 언어 배우는 것을 옵션 내지는 럭셔리로 생각하는 이민자들이 있다. 사실 말로 하는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자세, 자신감, 익숙함, 절실함 그리고 목적 달성의 문제이지 어휘력이나 발음이 좌우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언어 습득에 있어 어떤 상한선을 임의로 정하고 그 이상은 손 놓고 있거나 가족 통역관에 매번 의지하는 태도는 개인으로서의 능력치와 존재 이유에 상한선을 긋는, 다르게 표현하면 스스로에게 신체적 장애를 더하는 행위와 같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평생 한국어만 해 온 사람이 성인이 되어 다른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유럽인이 옆 나라 유럽어를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인 것은 맞다. 수능 영어 시험 문제를 풀었던 젊은 이민 1세대에게도 똑같이 어렵다. 하지만 이민을 선택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게도 동시에 새 언어를 선택한 것인데 그것을 정공법으로 익히는 것 외에 무슨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어, 독일에서는 독일어, 영어권에서는 영어가 생업의 기반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전혀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민 1세가 있는 반면, 언어 장벽이라는 것이 실제 상황이 되자 매번 회피와 손쉬운 선택을 반복하는 뻐팅김이 쌓이고 쌓여 언어 꼰대가 되어가는 이민자들이 부지기수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현지어를 구사하지 않으면서 살아도 되는 이유와 그럴 수 있는 방법이 변명처럼 항상 준비되어 있다. 이들 이유의 구체적인 예를 나열하기에는 말이 너무 길어지고, 대표적인 하나만 꼽자면 "나는 한국에서도 경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있던 전업주부"라는 게 있다.


어쨌든, 현지어에 손 놓고 있어도 막상 의식주에 문제가 없다면 왜 딴지를 거냐고 오히려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문제는 인간 욕구 5단계의 중간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소속"의 욕구가 원천적으로 늘 결핍 상태라는 거다. 이민 간 곳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이상, 언어를 해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사회 활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병에 걸린 것 마냥 그들만의 서클 안에서 학습하는 정치질과 비뚤어진 비교 의식 그리고 체면치레가 꼰대질로 승화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설경구, 배수지를 비롯한 수많은 배우들은 극 중 몇 줄 외국어 대사를 역할에 맞게 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훈련받고 연습한다. 하물며 연중무휴 이민자로서 먹고살아야 할 이들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해 아무런 "파이팅"과 "헝그리 정신" (영어로는 grit) 없이 느슨하고 안일한 인식을 갖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곧 몸뚱이는 "외국"에 있으면서 정신은 한국에 두고 온 장거리 유체 이탈과 다를 바 없다. 본질적으로 이민 생활보다는 난민 생활에 가깝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이민 꼰대질의 두 번째 이유는 경력의 단절을 극복하지 못한 데서 오는 내면의 자괴감이다. 바로 앞에서 말한 언어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민이라는 길을 선택할 당시 앞으로의 생업에 대해 가졌던 각오는 둘 중에 하나일 게다. 1) 지금까지의 내 직업과 경력을 이민 후에도 이어갈 방법을 찾자, 2) 뭐가 될 진 아직 알 수 없으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기꺼이 제2, 제3의 커리어를 개척하겠다.


일단, 언어의 문제가 애초부터 없다고 가정하면 이민자들이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을 게 뻔하다. 본능이 가리키는 최적의 선택은 "배운 도둑질"을 이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언어라는 1차 허들이 있고, 거기에 더해 세부적인 자격 요건과 실현 가능성은 나라마다, 업종마다 천차만별이다. 지금까지 인정받은 경력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현지에서의 면허 취득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채용 공고에 지원이 가능한 업종들 또한 많다. 아무튼 이민 후 실제로 문을 두드려 보았든 아니든 경력 단절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경력 단절을 이민 이전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민 생활을 아예 새로운 분야에서의 재교육, 즉 유학으로 시작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여기서도 최소 수년간의 시간과 자본 투자, 그동안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이민 정책과 법규의 불확실성, 새 직종에 스스로가 갖는 확신 등이 복합적인 부담과 리스크로 작용한다. 기존 경력과 관계없는 분야에서의 창업도 본질은 비슷하다.


직업과 관련해 어떤 길을 택하든 결과는 셋 중에 하나다. 1)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경력의 지속 또는 최소한의 공백기를 거친 후 그것으로의 성공적 복귀, 2) 재교육 또는 사고의 전환을 거쳐 기존 경력과는 조금/많이/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이뤄낸 새 커리어의 시작과 안착, 3) 기존 경력의 완전한 단절. 혹은 새로운 직종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즉, 직업의 딜레마.


여기서의 마지막 결과를 다르게 말하면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실제로 잘했었고 앞으로도 이어가기를 원하는 바로 그 경력과의 단절"인데, 이것이 오랜 시간 고착되면 이민자 신분과 관계없이 나이에서 오는 신규 취업 또는 진입의 불리함을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서 과거의 화려한 경력을 이제는 재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는 자괴감을 "나는 이미 내 분야에서 성공했고 자아실현을 했기 때문에 남에게 충고는 얼마든지 해주겠지만 나 스스로가 커리어에 연연할 단계는 지났다"는 입장으로 포장한다. 즉, 꼰대다.


한편, 직업과 배경이 뭐든 간에 그들이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기여하고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일부 이민 1세들은 성취감을 느끼기 바빠서 꼰대질 할 시간이 없다.


사실 이렇게 늘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민 1세들의 꼰대화를 만족스럽게 설명했다고 자평하기에는 부족하다. 어쩌면 꼰대란 감정적으로 논하는 이미지일 뿐 검증 가능한 실체가 애초부터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좀비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롤 모델이든 꼰대든 좀비든 나를 스쳐 가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0년대 졸업생은 무조건 컨설턴트가 돼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