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기획연재 기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
장해림
바다 위에 떠 있는 전설의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유유히 앉아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수월관음의 형상에는 어쩐지 물기가 어려 있다. 센소지(淺草寺) 소장 ‘수월관음도’(사진)는 이를 거대한 물방울로 담아냈다. 화면 전체를 큰 녹색 물방울이, 그리고 하단부터 절반은 물방울 안에서 지긋이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수월관음이 차지하고 있다. 보통 둥글게 표시하는 광배(光背)가 물방울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을 기반으로 그려진 이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구도의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그는 고된 여정 끝에 관세음보살이 계시는 보타락가산에 다다르게 된다.
물방울이 낙수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라. 유리구슬같이 작은 물방울 속에는 우주 만물의 상이 맺힌다. 화엄경 속 화엄 사상은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일어나는 일이 없고, 끝없는 시공간 속에서 모두가 서로의 원인이 되며 하나로 융합한다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그물코 하나하나에 달린 구슬끼리 서로를 비추는 인타라망(因陀羅網)과 같이, 물방울은 법계의 모든 현상과 인간사를 비춘다.
혹자는 이 물방울 모양을 버들잎 모양이라고도 일컫는다. 버들잎 또한 수월관음과 불가분의 관계인데, 관음보살이 중생을 구제해주는 것이 마치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고 하는 뜻에서 수월관음도에는 관음상 주변에 버드나무가 꽂힌 정병을 함께 묘사하기 때문이다. 센소지 소장 수월관음도는 오른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에 정병을 들고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오른쪽 하단에 ‘해동치납혜허필(海東癡衲慧虛筆)’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고려의 화승 ‘혜허’의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현재 일본 아사쿠사의 센소지에 소장돼 있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3060501033012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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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나간 뒤, 아버님의 지도교수님께서 친히 연락을 주시며 계속 미술사 공부할 것을 권해주셨다. 글로 평생 살아오신 노교수님께서 칭찬해주신 덕에 미술사를 업으로 삼을 큰 용기가 생겼다.
상황 상 급하게 센소지에서 사진을 받았어야 했고, 보수적인 일본 사찰의 특성 상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으나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무사히 센소지의 허락을 구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당시 도움을 주셨던 주변 분들과 센소지 측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과정에서 어려움 또한 있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족'이어서 홀가분하다.
지금 나는 재단을 떠난 신분이지만, 우리나라와 센소지 사이에 신뢰의 가교를 만들어주고 떠나 온 것에는 후회가 없다. 언젠가는 이 그림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