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려 살지 않고 기준을 만드는 삶에 대하여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해, 한 날은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차서 책방에 발을 디뎠다. 책방 주인에게 무작정 “제가 지금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분노에 가장 가까운 감정이 가득 차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책 좀 추천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책방 주인은 말없이 시집 몇 권을 추천해주었다. ‘마음 다스리는 법’ ‘나는 왜 화가 날까?’ 등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책을 추천해 줄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시집이라니. 어리둥절했다. 추천해 주셨으니 한번 읽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이야? 싶다가 다시 읽어보니 이 뜻인가? 하다가 서너 번째 읽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모습을 보더니 책방 주인이 “시가 무섭죠?”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무섭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어떻게 나보다 더 잘 알고 글로 써놓은 거지? 그렇게 한참을 더 울다가 추천받은 시집을 모조리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되겠다! 시인이 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 쓰면 시인 아닌가? 그럼 시란 무엇인가? 아! 복잡해!’
<내가 생각하는 시인의 특징 5가지>
1. 세상 만물을 성찰할 줄 아는 뇌
2. 남들과 다르게 보는 눈
3.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심장
4. 세상만사를 표현할 수 있는 손
5. 생각대로 행동하는 다리
- 2019년도 일기장 23페이지 6번째 줄 인용-
굳이 꿈을 정해야겠으면, 그것도 직업으로 정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면 ‘시인’이 되기로 했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 시인은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시가 무엇인지 찾아보면 학자마다 정의하는 것이 다르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의사는 의사 면허가 있어야, 변호사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야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에 비해 시인은 자격증도 필요 없고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다. 기준을 정의하기 힘든 점은 혼란스럽지만 자유롭다. 지금까지 자격을 얻으려 애쓰고 살았다. 1점 그 이상 맞으면 성공, 틀리면 실패. 누군가가 세운 기준에 맞추려 애쓰고 살았다. 기준이라는 것은 들지 못하면 비참하지만 들고 나면 다행스럽고 편안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음 넘어야 할 산을 찾게 되고, 누군가가 추월하는 불안감을 견뎌야 한다. 이제는 스스로 기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알 수 없던 답답한 감정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후 시는 한 편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졸업하면 바로 취업해야지” “네 나이대면 몇천은 벌어야지” ”서른 안에는 시집가야지” “애 둘은 낳아야지” 등 사회 혹은 스스로가 그어놓은 선들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그 말들이 타당한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이 세운 기준에 맞춰 사는 대신 시인과 같은 뇌, 눈, 심장, 손, 다리로 나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