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작년 5월에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발생한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내게는 마치 몇 년이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독일이 통일된 것이 1990년이니 벌써 33년이 지나갔다. 나는 우리에게도 곧 통일이 올 거라고 기대했고, 20세기말 무렵에 독일에서 한 2년 우리의 통일을 연구해 보았다.
엊그제 3·1절에 윤 대통령이 기념사를 했다고 한다.
‘일본, 침략자에서 파트너로 변해
과거 되새기며, 미래 만들어가자’(중앙일보)
얼핏 보면, 제법 근사하고 미래지향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더라도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일제가 체포하고 고문 끝에 순국한 17살 소녀를 기억하는 유관순기념관에서, 3·1절이라는 특별한 날에 해야 할 소리가 아닌 건 분명하지 않나.
굳이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들지 않더라도 나를 알고 남을 알아야 무어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 공부하는 일본과 우리 지정학(K-지정학)을 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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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일본은 침략자였다
일본은 19세기 미국에 개국을 당하고 나서(1854년, 페리 제독), 대만(1874 대만출병), 오키나와(1879 류쿠병합)를 침략하였다.
당시 쇄국정책을 펴던 조선에 대해서는 1873년 정한론(征韓論)을 논의 후 운양호사건(1875)과 강화도조약(1876년)부터 시작하여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을사늑약(1905년), 한일합방(1910)을 하였다.
조선을 차지하려고 주변 나라와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년)을 하였고,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편입(1905년), 간도를 청에 내주었다(1909년).
그 후 일본은 중국대륙을 침략(1931년 만주침략, 1937년 중일전쟁)하였고, 미국을 침략(1941년 하와이 공습)하였다. 이때 일본은 난징에서 수십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였다(1937년 난징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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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일본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우리에 대하여, 1592년에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 외에도 늘 왜구로 출몰하여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다.
그런데 다른 나라가 일본을 침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있다면 몽골의 일본침략이 있었지만 가미가제로 실패한 정도(1268~1281)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늘 우리 민족의 나라를 통해서 선진 지식과 문명을 전수받고는, 이를 침략과 식민통치 및 해적질로 보답(?) 해 온 나라다.
그들은 자기들 교과서에 이런 것을 제대로 써놓지 않았다. 주위 나라에 반성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것이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독일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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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해
일본의 한국통치를 ‘근린제국주의와 동화정책’으로 정리한 책이 있다.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 (강상규·김세걸, 방송대출판부, 2013)
아래는 이 책 182쪽에서 187쪽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서양의 제국주의와 다르다. 그들은 동화(同化)주의를 표방했다. 동화주의는 ‘조선인의 일본인화’로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민족문화말살정책,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민화(皇民化)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은 19세기 말엽에는 식민통치를 자치(自治)주의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유럽 제국들은 일본과 달리 유럽과 문명적 기반을 공유하지 않는 비(非)유럽지역을 식민지로 삼았고, 문명과 야만이라는 전제에서 ‘문명의 사명’이라는 논리를 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자기와 동일한 문명적 기반을 갖는 지역(한국, 대만, 만주 등)을 식민지로 만들고는 이곳을 자기들이 그대로 차지하려 들었다.
일본은 상황에 따라 현실적 차별을 정당화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식민지와 제국 일본의 차이를 강조하는 문명과 야만의 논리를, 식민지의 협조가 필요하면 동양평화론을 비롯한 아시아주의나 인종주의 같은 논의를 끌어 들어 일체성을 강조하였다.
일본의 한국문화파괴의 핵심은 ‘한국인의 자기긍지를 무너뜨리고 자기부정의식을 심는 것’이었다. 즉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기를 멸시하는 감정을 갖게 함으로써 선진 문명 국가인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는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일본의 한국통치에서 나타난 가장 핵심적 원칙이었다.
이를 위해 ‘역사에 대한 기억과 망각’이 요구되었다. 이른바 근대적 학문방식을 통한 체계적 역사왜곡이 이루어져 정체(停滯)되고 타율적인 조선 이미지를 조성하려고 했다.
3·1운동에 앞서 도쿄에서 2·8독립선언이 있었다. 이것이 3·1운동이라는 민족적 차원의 대규모 독립만세사건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미쳤다(진독수).
현재 우리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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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지개명(創地改名)과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아는가
여기서 내가 별도로 써 놓는 것은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을 하자마자 우리 고유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면서 전국 지명 3만 6천여개를 바꾸어버렸다(TVN 보도). 전국 각지의 땅의 역사까지 왜곡된 것이다.
조선의 관습과 제도를 조사한다며 1910년 10월부터 다음해 12월 말까지 우리 역사책 총 51종 20여 만권을 수거 후 태워버렸다.
한편,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에 나서더니 1939년부터 모든 조선사람의 성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려 들었다. 이렇게 땅과 사람의 명칭까지 바꾸려 한 제국주의야말로 역사상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식민통치라 할 것이다.
현재 한일 간 논의되는 일본군위안부(정신대)나 강제노역 부분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보다도 역사와 지명, 민족을 송두리째 없애려 했던 만행은 더욱 문제가 아닌가?
지금 일본인들은 이걸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나 보라. 그들은 자기네 역사까지도 조작해 놓아 현재까지도 인류 전체를 욕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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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이웃은 경계해야 한다
일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핑계 삼아 국방비를 현재보다 2배 수준으로 증가시키겠다고 한다. 그들이 힘이 있으면, 바로 주변 나라 한국을, 만주를, 중국을, 그러다가 먼 나라 미국(하와이)까지 침략하였다. 앞으로 그들이 향할 곳이 어딜까? 가장 가까운 곳부터가 아닐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웃과는 잘 지내야 한다. 그런데 이웃이 늘 우리를 성가시게 하고, 침략해 온 나라라면 우리는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도 우리를 여러 차례 침략하였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가상 적국(假想 敵國)으로 경계해야 한다.
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 후 전범국(戰犯國)으로 4곳으로 갈라졌다가, 1990년에 다시 통일되었다. 독일은 역사를 솔직히 기록하고 반성하며, 늘 주위에 사과한다. 그들과 일본을 비교해 보라. 일본은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 주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2차 대전 끝날 당시 일본 분할방안이 연구되고 있었다고 한다. 원자폭탄 투하 후 일본이 급속히 항복하면서, 급히 남하하는 소련군을 의식하여 조선에 있는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북위 38도선 기준으로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진주하게 되고, 이로서 918년(고려 건국)부터 1945년까지 1천년 하나로 살던 민족이 분단되었다.
결국 일본은 아시아 곳곳을 침략하여 전쟁터로 만들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침탈하고서도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았고 천왕과 일본 열도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이번 글 쓰는 차제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려 한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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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우리땅이다
대마도는 은근슬쩍 일본에 넘어갔다. 『대마도가 한국땅인 증거 127』라는 책이 있다. 대마도가 우리 소유라는 증거를 127개 제시해 놓았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정홍기, 노드미디어, 2019)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정부수립 직후,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때의 동아일보 기사와 프랑스판 지도를 아래에 실는다. 『대마도·독도의 비밀』이란 책이다. (김상훈, 양서각, 2012). 이 책의 저자는 육군 대령이다. 책에 게재된 사진인데 보기가 어떤가 모르겠다. 궁금한 분은 도서관에서 찾아보길 권한다.
1. 1949년 1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였다(26쪽). 아래 사진 참조
2. 1832년 국제법상 공인지도인 프랑스어판 지도다(103쪽). 아래 사진 참조
여기에 대마도, 울릉도와 독도 모두 우리땅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은 이 지도를 미국에 제시하여 1968년 태평양의 오가사와라 제도를 미국에서 돌려받았다. 일본에서 남으로 약 1천km 떨어진 섬이다.
우리는 대마도를 돌려받아야 한다. 늘 되풀이되는 그들의 엉터리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주장은 우리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흐리려는 책략이다. 이제 우리 국력도 신장되었으니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요구한 대마도 반환에 나서자. 말을 듣지 않으면 이제 실력으로라도 되찾아야 한다.
호랑이 국토의 두 발이 제주도와 대마도이고, 우리땅을 되찾는 것은 국제법상 인정되는 당연한 권리가 분명하다. 일본이 오가사와라 제도를 미국에서 되찾았듯이 말이다.
(책 앞표지)
(책 뒤표지)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 1949년 1월 8일 )
(대마도, 울릉도, 독도는 우리땅) 이 지도로 일본은 미국에서 오가사와라 제도를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