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에서는 체공시간을 벌어야 데드를 칠 수 있어요
일요일엔 클라이밍장에 가서 혼자 지구력 연습을 하다 친구와 여름 휴가를 계획해본다는 원대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머리가 아팠던 나는 숙취인지 몸살일지 모를 두통으로 괴로워했다. 우선 속을 달래려고 순대국밥을 오픈시간부터 찾아갔던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 혹은 다대기의 양으로 보아 자극적인 것은 라면 끓여먹는 것 뺨 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한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오늘 이것저것 음식을 먹어대긴 했지만, 배달음식을 한번도 시키지 않는 주말을 보냈음에 스스로를 칭찬하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에는 원정을 다니는 크루들이 몰려간 암장 말고 홈그라운드에서 혼자 지구력 연습을 했다. 5.10a는 이제 무브를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고, 왕복이 가능하다. 그 모습을 본 클라이밍 선생님은 '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됐군요'라고 말하는 거다. 그래서 나의 4월 목표는 5.10b를 깨는 것. 그리고 목표를 이루면 상으로 내게 새 암벽화를 사주기로 했다. 지금의 초급 암벽화는 벨크로가 군데군데 파여있어 스타트하다 벨크로를 바로잡기 일쑤였으니까.
5.10b는 확실히 '데드'를 쳐야 하는 무브가 많다. 정확한 용어는 '데드포인트(deadpoint)'인데 동작이라기보다는 순간을 의미한다. 다음 홀드(돌)를 잡기 위해 순간적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잠시 붕 뜨는 체공시간을 벌어야 한다. 나의 리치를 넘는 거리의 돌을 잡기 위해 잠시 몸을 던져야, 나를 지탱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 내 무브의 한계를 만드는 손 하나, 발 하나를 놓아야 다음 홀드를 잡을 수가 있다.
그날 수업이 없어 암장을 지키고 있던 선생님이 지나가길래 무브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어쩌다 진로에 관한 얘기를 한참 했다. 클라이밍 선생님은 서른살로, 나보다 네 살이 적었고,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하다 코로나 때문에 귀국했는데 마침 비트코인의 대박으로 1년 정도의 시간을 벌게 되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클라이밍에 심취했고, 이론부터 적용까지 차근차근 쌓으셨던 것 같았다.(깔짝충인 나는 이곳저곳에서 기초 수업을 들었는데 이 선생님만큼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알려주는 분이 없었다. 예컨대 5.10a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홀드 회사별 홀드의 특성 등)
다음 스텝을 고민중이라며 도배 장판을 할지, 무엇을 해볼지 고민이라며 이것저것 자격증 따는 것이 취미라고 말했다. 너무 태평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선생님은 직무를 바꾸는 그 과정이 불안하지 않으신가 보네요. 저는 매번 환경이 바뀔 때마다 불안해 했거든요' 라고 말했더니, 자신은 다양한 경험을 해봐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서빙, 바리스타, 공사장 일 등 여러 직무를 거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될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과외, 알바, 군대, 대기업, 중소기업을 두루 겪었음에도 대체 무엇을 두려워 하는 것인지, 스스로 자문해보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이 중얼거리듯 '왜 불안하죠. 돈이 걱정되는 건가.'라고 말했는데, 사실 나는 이미 최소 생활비를 이미 계산해 두었다. 그것은 내 자산을 깎아 먹지 않으면서 내 생활비와 부모님 용돈을 충당하는 금액이고, 지금 내가 받는 연봉에 반절이면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체공시간이 짧아 다이노를 잘 못 한다. 점프력도 점프력이지만 내 점프력에 대한 불신이 오히려 벽에서 몸을 밀어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뛰어서 홀드를 잡는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가끔 회사 화장실에서 몰래 깡충깡충 뛰면서 점프를 연습하고 있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하려나)
언젠가 능숙하게 다이노를 구사하며 홀드와 홀드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닐 날이 오기를.
왠지 이걸 성공해야 용기 있게 새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감기로 코가 막혀도 플랭크를 하고 자야겠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