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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달리기 Sep 13. 2022

사는 것이 무서울 땐 춤을 춥니다

안전에 관한 이야기(2)

<할 말 많은 편지>는 서로를 돌보고 싶은 두 20대 여성의 다정한 시선을 담아낸 교환 편지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안전’입니다.



안녕하세요 키키. 사하입니다.


우선 괜찮으신지요. 버스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나 놀라셨겠습니다. ‘무례한’과 ‘놀라셨겠습니다’라는 안일한 표현으로 그쳐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달리 해드릴 말이 없어 반복합니다. 정말 놀라셨겠어요. 사나운 기억은 따뜻한 물로 씻어내고 푹 잠드셨기를 바랍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안전’이라는 말이 얼마나 상충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든여섯 번 하고도 스물일곱 번, 그리고 백예순 세 번은 더 답할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무슨 숫자들의 향연이냐 물으신다면 2019년 여성 대상 폭력 발생 건수예요. 각각 86은 성폭력, 27은 데이트 폭력, 163은 가정폭력 검거 건수지요. 놀랍게도 모두 ‘하루 평균’ 수치입니다.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말하기 전에 이렇게 통계부터 들이대는 것은 일종의 방어 태세인데요. 가로등 없는 밤길과 잘 도착했냐는 문자를 확인하지 않는 친구가 얼마큼 무시무시하고 애타는지 이야기할 때마다 알 수 없는 ‘해명’과 ‘공격’을 마주해야 했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요.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냐.

“남자를 다 잠재적 가해자로 몰진 마.

“남자도 강도는 무섭거든?


누군가 저렇게 답하면 저는 그렇구나 하고 물끄러미 그를 봅니다. 몇 가지 통계들을 읊으며 해명에 대한 해명, 공격에 대한 공격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묻고 싶어요. 당신은 왜 무섭다는 내 말을 공격으로 듣는지, 두렵고 겁난다는 사람에게 왜 스스로를 해명하는지요. 어떻게 하면 그 공포를 같이 해결해볼 수 있을까, 그렇게 답해줬다면 조금은 덜 무서울 것 같은데 말이죠.


어떻게 하면 이 공포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혼자서 생각하는 일은 어렵고 지쳐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리 조심한들 범죄를 피할 순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무성한 공포들을 다 어떡하나, 근육을 키워서 전부 제압하고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당시 제가 듣던 수업의 교수님이 희한한 제안을 하셨어요. 바로 ‘춤을 춰라.’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 싶을 테니 설명을 덧대볼게요.


외진 골목을 걸을 때, 몸집이 있는 남성과 마주했을 때 당신의 몸은 어떤 모양인지 한 번 떠올려볼까요. 아마도 잔뜩 움츠러들거나 딱딱히 굳어있겠죠. 아무런 위협이 없더라도 몸은 제멋대로 얼어붙을 거예요. 공포라는 감정이 몸을 지배해 ‘감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감정은 일시적이고 보편적이지만, 감각은 특정한 상황과 감정이 반복되면서 학습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몸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어온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공포라는 감각이 몸에 새겨져버린 거죠.


교수님은 이 ‘감각’에 주목하셨습니다. 공포의 원인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지만 공포에 압도당한 우리의 몸은 새롭게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주눅 들고 억눌린, 시선의 아래에 있던 여성들의 몸을 자유롭게 해방시키자. 그 방식이 바로 ‘춤’이었던 거죠.


춤을 통한 해방이라니 조금 약장수 같다고 생각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시도해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 노래를 틀어두고 아무렇게나 움직여보았지요. 돌이켜보니 제 몸이 그토록 넓은 공간을 차지한 것이 처음이더군요. 평소에는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공벌레처럼 말려있었으니까요.


원하는 만큼 손을 뻗고 발을 구르고 뱅글뱅글 돌고. 우스꽝스럽게 꿈틀거리는 스스로가 황당하면서도 퍽 좋았습니다. 몸에 새겨진 공포가 사라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춤추고 있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만큼은 조금이나마 희박해졌거든요.


안전에 대해 말하랬더니 갑자기   타령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듯, 지금의 세상에서 ‘안전 ‘여성 너무도 멀어서요. 오늘도  명의 여성이 죽었는지 헤아리다 보면 내가   있는 일은 없을  같은 무력감이 찾아오죠. 어떤 날은 화가 나고 어떤 날은 우울하고 어떤 날은 불안하고.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도 지긋지긋해서 사는 것이 그만 무서워지는 지금의 당신을, 지금의 우리를 위로할 방책을 찾고 싶었습니다. 무섭고 무력해도 우리는 나아가야 하니까요. ‘모두가 평등하게 안전한 세상 포기할  없으니까요.


그런 고로 오늘 밤에는 춤을 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포와 무력을 털어내고, 우리 멀리까지 뻗어가봐요.


2022.09.09. 사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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