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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달리기 Oct 04. 2022

여자들은 질문하지 않는다고요?

서투름에 관한 이야기(2)

<할 말 많은 편지>는 서로를 돌보고 싶은 두 20대 여성의 다정한 시선을 담아낸 교환 편지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서투름’입니다.




안녕하세요, 키키. 사하예요.


다짜고짜 질문 하나 드릴게요. 키키는 질문을 잘하나요?


‘질문’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텐데요. 사적인 자리에서 상대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질문, 상대에게 사유의 틈을 제공하는 질문이라면 물어볼 필요 없이 당신은 탁월한 축이죠. 하지만 제가 묻는 ‘질문’은 특정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경직된 자리에서 다수의 타인들에게 둘러싸인 상황, 이를테면 강연이나 행사가 끝나고 “질문 있습니까?”라는 멘트가 나왔을 때 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요.


우선 저의 답은 ‘완전 못함’입니다. 열중해서 강의를 듣다가도 교수님이 질문 있냐고 물어보면 딴청을 피우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도 손을 들지 않아요. 어쩌다 질문을 해도 종이에 할 말들을 정리하고 커닝하는 식이죠. 소심한 성격 탓이라고 설명하면 깔끔하겠지만 그보다 복잡한 마음들이 얽혀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서투름’에 대한 공포입니다. 나의 질문이 맥락을 놓친 멍청한 것,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무언가 잘못된 것일까 봐 두려운 거죠.


서툴러 보이는 일이 두려워 질문을 꺼리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요. 어떤 사람들은 그 두려움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키키가 지난 편지에서 소개한 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에는 ‘GV빌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사(Guest Visit)를 열 때 맥락이 없고 조금은 무례한 질문들을 남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예요. 좋은 영화의 여운을 해치는 악당(Villein)과도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출처: 여성신문


저자는 본인이 경험한 ‘질문 빌런’들을 소개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덧붙이는데요. 여성이 다수인 공간에서도 첫 질문자는 남성일 때가 많다는 겁니다. 남성은 악당이라 불릴만한 질문도 당당히 하는데, 여성들은 서너 번째쯤이 되어서야 손을 들어도 말끝을 얼버무리는 경우가 잦다고 해요. 여성들의 말이 자꾸 흐려지는 이유는 ‘상대의 반응을 통해 자기 말의 확신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됩니다. 내가 틀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끝없이 상대를 헤아린다는 거죠. 주저하는 마음은 불분명한 어투로 드러나고요. 가령, ‘사과는 빨갛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거죠.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사과는 푸른색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빨간색이 조금 더 보편적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어떠세요?”


이상하죠? 서투르지 않으려고 한참을 에둘러 조심조심 말하는데, 질문도 주장도 뭣도 아닌 완전히 서투른 말이 태어나버렸잖아요. 상대를 헤아리려는 마음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을 만들었고요. 서투르더라도 서로 되물으며 정확한 소통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여성들의 서투름에 관대하지 않죠. 그래서 여성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날 선 언어들로 스스로를 지키거나, 침묵하거나.


저자는 침묵하지 말고 손을 들어 질문하자는 말을 여성들에게 전하는데요. 암 그렇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몇 가지 의문이 들어요. 여성들은 정말로 질문하지 않을까요? 상대를 고려하면서 자기의 말을 고심하고 또 고심하는 행위는 여자들의 구차한 버릇에 불과한 걸까요? 서툴고 어설픈 문장들로 무수히 실패하면서, 우리는 어쩌면 ‘더 나은 말’로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성들은 질문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곱씹는 동안, 제게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어요. 당신에 대한 기억인데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키키는 이런 말을 했었어요.


“세상을 진짜로 궁금해하는 건 여자들인 것 같아요.”


당신이 어떤 맥락으로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2030 여성들이 기후위기에 가장 높은 책임감을 느끼는 세대라는 기사를 읽을 때나 타인을 향한 폭력과 혐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들의 연대 흐름을 목격할 때, 저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서툴고 불분명하지만 누구도 해치지 않으려 애쓰는 여성들의 언어도 생각났고요. 당신의 말처럼, 손을 번쩍 들어 질문하진 못해도 여성들은 충분히 세상을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상대를 헤아리며 주저하는 마음들은 더 섬세하고 넓은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상대를 눈치보며 완벽한 말을 고르느라 이도 저도 아닌 문장을 만드는 버릇은 지금  순간 저에게도 유효하네요.  글이 틀리진 않았는지, 충분히 유의미한 말로 구성되었는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지 궁색하게 궁리하느라 오늘도 어설픈 편지를 쓰고 말았습니다. 다만 분명히 하고 싶었던 말은, ‘서투름 우리를 침묵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를 재밌고 다정한 세계로 데려갈 수도 있다는 . 그러니 투박하고 서툰 질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나가보자는 . 질문으로 이어진 우리가 주고받는 편지들처럼요.


-2022.10.04. 사하 보냄.





참고한 기사들입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27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17061#home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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