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로이드처럼 천천히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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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보이면서도 어딘가는 불안한 두 부녀의 여행을 함께하며, 여러 생각이 마음을 스쳐지나갔다. 행복하게만 느껴졌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아버지 혹은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리고 우리의 추억은 어떻게 기억되고 회자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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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헤어진 이후 처음으로 아빠와 단둘이 튀르키예 여행을 떠났다. 2주간의 짧은 여행동안 마냥 즐겁던 것은 아니였지만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그렇게 짧고도 행복했던 여행에 돌아온 후 영문도 모른 채 아빠는 내 곁을 떠난다. 그리고 현재 나는 그 시절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캠코더와 아빠기 남긴 엽서를 다시 보았다. 이해하고 싶었다. 캠코더 속 마냥 웃고 있는 내 모습과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아빠의 목소리 속에서 아버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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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던 아버지는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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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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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을 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기억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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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소피'가 아빠와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어른이 된 그녀의 옛 추억이다. 캠코더에 담겨 있던 5개의 영상을 보며 그때를 회상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렇다 캠코더 속 영상은 그 날의 사실이며, 그 이후는 그녀의 상상이다. 예를 들면 아빠와 '소피'가 수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른들 사이에서 어린이가 수구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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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생일날 '소피'는 전날의 미안함에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다가가 "우리 아빠가 오늘 생일인데 함께 노래를 불러주실 수 있을세요?"라 말한다. 모두에게 생일을 축복받았던 그날 침대에 걸터 앉아 꺼이꺼이 우는 아버지의 등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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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단지 그랬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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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로이드처럼 천천히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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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와 아빠의 여행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아빠와 투닥투닥 다투기도 하며, 서먹해지기도 했지만 여행이 끝날 때쯤 소피는 아빠에게 "조금 더 있다 가고 싶다."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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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아빠와 같은 나이가 된 소피. 튀르키예에서 아빠가 구매한 것과 같은 카펫을 쓰고 있는 소피는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소피에게서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슬픔이 배어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감정들이 폴라로이드처럼 천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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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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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인 'aftersun'은 썬크림을 이야기한다. 아빠는 외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며 자라온 인물이라 추측된다.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썬크림을 바르는 것처럼 소피를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호신술을 가르친다. 딸을 보호하려는 그의 마음이 영화 전반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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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는 뭐든지 말해도 돼 나도 다해본 거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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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사진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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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추억하고 떠올리는 것일까? 소피는 캠코더를 통해 과거를 보며 그때 있던 일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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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이유는 기록을 통해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일기를 통해 그날을 떠올리며 추측하게 되지만 현재 다양한 기록 매체로 인하여 좀 더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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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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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을 그 시절 아버지의 나이가 될 무렵 이해하게 되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자신보다는 덜 힘들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셨는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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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밤 술에 취한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다. 그때 아마 중학생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형과 함께 아버지를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항상 커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그날따라 왠지 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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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나이가 이해되는 것들을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현실보다 꿈과 희망을 꿈꾸는 나이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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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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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갓 20살이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한 해 두해 지나 20대 후반이 되면서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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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까지 하면서 우리를 키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서툴고 처음이었던 나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환히 웃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무수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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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부모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고 싶은 사람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오늘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