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은 튀니지는, 우크라이나, 러시아에 의존해온 밀, 보리 수입이 급감하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례없는 8%대의 인플레를 겪고 있다고 한다. 아예 밀가루를 구할 수 없던 몇 달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수량에 제한이 있고 과일, 고기 같은 품목은 사치가 되어버릴 정도로 인플레와 식량부족은 심각하다.
최빈 개도국이 아닌, 그래도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불을 넘어가는 튀니지의 식량 상황이 이렇다. 북아프리카의 식량부족은 단기적으로는 전쟁에 기인한 것이 크지만,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식량부족은 전쟁, 전 세계 공급망 전반의 교란 상황,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 기저에는 흑해 북쪽에서 생산된 대량의 밀이, 대규모 선박으로 긴 항해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육로 운송 끝에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글로벌 식량 공급망이 자리 잡고 있다.
7.13, 오늘의 Big Read는 이렇게 확장된 식량 공급망을 바꿔볼 수 있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미국 맨해튼에서 가까운 뉴저지. 철공소를 개조해 만든 창고형 공장에는 지금, 딸기가 자라고 있다. LED 전등이 빛을 비추며, 수직으로 끝없이 쌓인 트레이 위에는 조도와 습도를 맞춰주는 로봇이 작동하고,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하얀 전신 슈트를 입은 직원들이 트레이 사이를 다니며 작물들의 상태를 점검한다.
공장에서 인공조명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수직 농법은 미국 Bowery Farming과 같은 벤처 기업들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산업이다. 그것도, 2021년에 43억 불의 매출을 달성해 19년보다 10억 불 이상 매출이 늘어난, 마치 20년 전의 태양광 산업 붐처럼 전도유망한 산업.
공장에서 자동화 공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식량이 공급되는 방식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전염병, 가뭄, 홍수 같은 외부 환경 요인이 차단되고, 해충을 죽이기 위해 제초제를 뿌릴 필요도 없고, 재배 공간 내에 공급된 습기는 제습기로 순환되어 재활용되므로 전통 작법 대비 90%의 물을 절감할 수 있는 등 장점은 많다. 대도시 인근에 공장을 짓게 되면, 수천 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농작물을 며칠에 걸쳐 운송하던 것이 몇 시간의 일로 줄어든다. 주요 투자기업들이 수직 농법 업체들에 주목하는 이유다.
물론, 상추를 키워 수지가 맞기 위해서 아직 극복해야 할 어려움도 많다. 자연 태양광이 아닌 LED 전등에 빛을 의존하고 로봇, 센서, 냉난방 설비 등 세밀하게 설계된 자동화 설비를 돌리려면 엄청난 전력(공장 운영비의 절반 정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직농업 공장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요하다. 경기 침체 분위기 속에 자본에 대한 이익에 점점 민감해지는 투자 자본들은 수익성을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자본 유치는 항상 과제일 것이다.
또한 수직 농법은 기술 산업이다. 즉, 작물 종류별로 특화된 농업 기술에 공학적 기술이 결합되어야 하는 고난도 산업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물은 40% 습도가, 어떤 작물은 50% 습도가 필요하고, 로봇이 작물마다 섬세하게 조절해 주지 않으면 재배 작물 전체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 거기에, 대규모 유통시장으로 운송할 유통망 구축도 과제이다.
녹색 대전환의 시대에 과연 수직 농법이 친환경적이냐의 질문에 대해서도, 전력을 화석연료에서 공급한다면 친환경적이라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재생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조달해야 한다는 과제도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농법이 전통적인 방식의 토양을 이용한 농업이 유지되기 어려운 오늘날의 식량 공급 방식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의 빛을 던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은 수직 농법 공장의 이야기이다. 노동력이 충분하고 땅이 넓고 주요 시장까지의 운송망의 안정성과 비용 문제가 없다면, 굳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중 어떤 요건도 현대 도시가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텅 비어 가는 농촌마을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농촌의 노동력 부족은 알려진 사실이고, 대도시가 100Km 인근인 토지는 농사를 짓기 위해 남아있지 않을뿐더러 너무 비싸졌기 때문에, 농사보다 더 수익률 좋은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즉, 아직 우리는 ‘미래’의 비전을 보고 있지만, 지금의 출산율과 대도시 인근의 높은 자산 가격,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농업 기술의 조합을 보았을 때, 세계 식량 공급망의 미래는 도시 인근 공장에서 최첨단 설비로 재배되어 운송되는 수직 농법 작물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추나 딸기, 베리류가 아닌 주요 곡물들도 지역 내 재배와 공급이 가능할 수 있고, 전 세계의 공급망 교란 때마다 식량 부족으로 죄 없이 고통받는 지역들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개도국에까지 이러한 기술이 보급되려면, 그 지역에 맞도록 특화된 작법도 함께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도시에 집중된 많은 인구들이 보다 신선하고 저렴하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받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은 미국, 그리고 농작물 재배 환경이 열악한 중동 국가들이 수직 농법에 관심을 보인다지만, 대도시 식량 공급의 상당 부분이 기존과 다른 원천에서 제공될 수 있다는 비전은 분명히 희망적이다.
같은 날짜의 지면에 실린 튀니지 주민들의 열악한 식량 상황과, 뉴욕 인근 고층 공장에서 첨단 기술로 길러진 상추는 동시대, 같은 날의 현실이지만 너무 큰 간극이 있다. 수직 농법의 미래가 이러한 간극을 좁힐 수 있을 때가, 분명 올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