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와 치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끝나지 않는 아침을 사는 식물의 생명이 얼마나 다채로운 생활을 반복하는지 알고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쉬운' 마음은 어렵게 쓰면서, 지난한 단풍과 달의 생활은 그저 '아름다움'이라고 치부하는 건 왜일까. 운전 중에, 책상에서, 밥을 먹다가, 샤워를 하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심지어는 수업을 하거나 달리는 중에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어떤 집을 지어 올리는데도 무엇 하나 진척시킬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기억 극장에는 하루에도 몇 편씩 필름이 돌아간다. 관객 하나 없이. 문장을 쓰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자기 자신을 버려야 문장은 굴러다니거나 걷거나 질주할 수 있다. 문장으로 이해하거나 극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내 인생이 너무 심각해서 글을 쓸 수 없다'던 리디아 데이비스는 알고 있다. 검은 돌은 자기를 버려야 걸을 수 있다는 걸*. 어떤 이야기를 쓰면서 누구도 슬프게 묘사하고 싶지 않다. 거짓말이다. 자꾸 실패하기 때문이다. 현기증에 대해, 베일에 싸인 이야기에 대해, 걸어가는 돌에 대해 내일은 하루 종일 오래 생각해 볼 작정이다.
*장혜령의 시 <검은 돌은 걷는다>